영화 <미나리> 포스터

영화 <미나리> 포스터 ⓒ 판씨네마(주)

 
그림체가 닮았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어린 시절, 도시에 살던 정이삭 감독이 외진 아칸소 시골로 이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 속에서 감독의 삶을 반영한 캐릭터는 '데이빗'(앨런 김), '모니카'(한예리)와 '제이콥'(스티븐 연)의 아들이자 '앤'(노엘 조)의 남동생이다.
 
제이콥은 10년 간 캘리포니아에서 "매일 같이 병아리 똥구멍만 쳐다보며 뼈 빠지게" 모은 돈을 척박한 (그래서 이전 주인이 자살했다고 동네에 소문 난) 땅과 바퀴 달린 집과 교환한다. 모니카는 제이콥의 무모함과 아직 어린 자식들이 걱정스럽다. 데이빗에게는 심장질환이 있는데, 주변에선 보육 시설도 병원도 찾기 어렵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두기엔 벌이가 아쉽고, 일을 더 잘하고 싶은 성취욕도 있다.
 
결국 모니카는 모친 '순자'(윤여정)의 도움을 구한다. 해후의 순간, 한예리 배우의 연기가 기가 막힌다. 삶이 막막하던 중 기댈 수 있는 사람을 만나 반갑고 벅차오르지만, 한 편으로는 의연히 잘 지내는 척하고 싶은 복잡한 심정, 억눌러보지만 새어 나오는 눈물, 그 순간을 그려내는 배우의 역량에 나도 그만 그렁그렁해졌다.

<미나리> 배우들은 연기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서로 '그림체'가 닮아있어 어울리는 모습이 흐뭇하고 보기 좋았다. 스티븐 연의 서툰 한국어가 거슬린다는 관객도 있던데 나는 오히려 서툰 말투와 하얗고 섬세한 생김새가 'K-가부장성'의 실감 나는 재현을 저해해서 다행이었다. 예를 들어 황정민이나 송강호 배우가 검붉은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고집부리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 영화를 (두 배우 모두 좋아합니다만) 아름답게 기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데이빗의 귀여움도 즐거웠다.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는 어른들 때문에 짜증 나서 삐쭉댈 때, '스트롱 보이'라는 칭찬이 내심 좋으면서도 숨길 때의 그 귀여움은 소비되기 위한 상품으로 느껴지지 않는, 또래의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미나리의 가증스럽지 않은 선량함

<미나리>는 예상을 빗나가는 영화이기도 했다. 데이빗이 교회에 갔을 때 앞자리 앉은 백인 아이가 뚱하게 쳐다보는 장면에서 나는 '아… 이제 시작인가' 싶었다. 그리고 대뜸 "너 얼굴 왜 그렇게 납작해?"라고 묻기에 '역시나' 싶었는데, 그냥 다르게 생겨서 신기해서 물어봤을 뿐이었다고 만나서 반갑다며 집에 놀러오라고 초대까지 하더라. '칭챙총' 거리는 애도 있었는데, 잔뜩 경계하며 지켜봤다가 앤이 '고모'가 한국말이라고 설명하자 멋있다고 감탄하는 장면에서는 맥이 탁 풀렸다. 그 뒤 데이빗이 초대받은 집에 가서 순자에게 배운 대로 화투를 치고, 함께 웃으며 양치하는 장면으로 감독은 거듭 나를 안심시켰다.
 
미국에서 십수 년 살며 편견이나 차별로 인한 모욕감을 느낀 적이 없진 않을 테고, 세밀한 감정을 포착하고 그려내는 데에 재능 있는 감독이 이를 그려내지 않음에는 분명 의도가 있을 것이다. 문제를 생생히 재현하고 고발하는 창작물도 의미 있지만, 어떤 문제가 해소되는 풍경을 보여주는 일 또한 필요하다는 판단 아니었을까? 
 
무지로써 무례를 범한 대상과 직접 부딪히며 친구가 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무지로 인한 무례와 의지를 가진 폭력은 다르게 대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 미칠 '선한' 영향을 고려한 선택으로 느껴졌다. 이것은 대책 없이 순진해서 현실의 문제를 가리는,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착함'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순자에게 생각지 못한 일이 닥치며 이야기의 활력이 떨어진 점은 다소 아쉽다. 스스로 몸을 온전히 가누지 못해 '모종의 사건'을 일으키고, 망연히 사라지기 위한 발걸음을 옮기는 순자와, 약한 심장에도 불구하고 달려가 순자를 붙잡는 데이빗은 눈물을 글썽이게 만들지만, 거기에 도달하기까지 좀 지치는 구석이 있었다. 중간의 10분 정도는 줄여도 좋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 후 제이콥의 고집이 한풀 꺾이고, 가족들은 서로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화목해진 듯 보이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밝은 미래를 약속한 건 아니다. 대출을 성공적으로 갚고 농장 일로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 순자의 행방과 건강은 어찌 될지 영화는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 나는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다. 터만 잘 잡으면, 웬만하면 잘 자라는 '원더풀' 미나리처럼 데이빗 가족들도 미국에서 성공했을 거라고, '데이빗'이 예일대에 진학한 엘리트가 되고 오스카 6개 부문 노미네이트된 작품을 만든 감독이 된 게 그 증거라고 말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컷

영화 <미나리> 스틸컷 ⓒ 네이버영화

 
잊지 말자, 에밀 모세리

OST를 담당한 에밀 모세리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시작부터 몰입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음악 덕이다. 모든 트랙이 주옥같지만 새로운 터전에 대한 기대감을 북돋는 'Big Country'와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불안한 미래에 대한 어수선한 마음 또한 공존하는 무드를 표현한 'Garden of Eden'이 특히 훌륭하다. 오스카 음악상 꼭 수상하시길.
 
음악이 빛을 발한 데에는 감독의 연출 '지분'도 있다. 특히 달밤의 풍경 위로 1980년대 가수 은희의 <사랑해>가 흐르는 연출이 격조 높다고 느꼈다. '천만영화'였다면 온 가족이 둥글게 일어나 어깨를 들썩이며 다 함께 노래하는, 흥이 넘치는 장면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절제된 연출은 일견 영화를 심심해 보이게 한다. 이것이 영화 <미나리>를 극장에서 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정적으로 보이는 풍광 아래 수많은 사건과 갈등, 감정의 격랑이 있다. 그것을 담은 색감과 빛이 아름답고, 음악이 훌륭하며,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좋은 건 크게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극장의 커다란 스크린과 입체적인 음향은 세세한 감정 전달에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난 뒤, 일렁이는 당신의 감정을 말해 달라. 우리가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더 자주 세밀한 감정을 얘기하고 들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서윤 님은 <불만의 품격>을 쓰고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21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
미나리 최서윤 영화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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