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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기부한 미술품은 노동자들의 목숨 값입니다."
- 28일 박창진 정의당 부대표

삼성이 고 이건희 회장 유산의 상속세 납부 방안(이달 말 2조 원, 향후 5년간 10조 원, 합계 12조 원 납부)을 발표한 28일 '노동자들의 목숨 값'이란 박 부대표의 일침에 새삼 삼성의 흑역사를 되돌아봤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무노조 신화를 이어가려고 가혹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해고했던 삼성, 이를 위해 2014년 정보경찰과 짜고 전대미문의 고 염호석(당시 삼성전자서비스 양산센터 분회장)씨 시신 탈취 사건을 벌였던 삼성, 22살 황유미씨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는데도 기어코 산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삼성. 그렇게 노동자들의 고혈을 흡착해서 이뤄낸 막대한 재산이 삼성가의 유산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화제를 모은 삼성가의 국보급 미술품은 어떠한가. 언론은 일부 국보급 가치가 있는 작품들을 삼성가가 어떻게 소유하게 됐는지 아예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미술품들은 2008년 1월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팀이 삼성 에버랜드 물품 창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찾아냈다. 2만여 점의 미술품 사회 환원이 그 자체로 가치 있고 또 막대한 규모인 것은 맞지만 미술품 소유 과정에서 세금 탈루 등 위법은 없었는지, 또 이번 기부 결정에 세금 감면 등 다른 의도는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당시 미진했다는 평가를 받는 특검 수사 결과와는 별개로 찾아낸 차명 계좌와 차명 주식만 무려 4조 5000억 원 규모였다.

결론적으로 삼성가의 상속세 납부는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내는 것뿐이라는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의료사업 1조 원 기부만 해도 그렇다. 2009년 8월 배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이 확정됐던 이건희 회장. 그해 12월 이명박 정부는 특별 사면을 확정했고, 삼성전자는 차명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하며 양도 소득세 등 세금 납부를 약속한 바 있다.

그 당시 평가한 세금 탈루액이 1조 원 정도였다. 당시 사회 환원을 공언했던 삼성은 이제야 13년간 미뤄온 숙제를 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채이배 전 의원은 KBS <사사건건>과 한 인터뷰에서 "주식 수로 본다면 지금 그게 9조 원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연 이게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킨 것이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재용 사면론을 띄우려는 몸부림

허나 현재 언론 보도는 어떤가. 29일 자 주요 일간지 1면과 사설은 <삼성가의 역대급 사회공헌, 실행이 중요하다>(서울신문), <이건희 '마지막 보국'… 재산 60% 사회환원>(세계일보), <이건희의 선물, 기부 역사 새로 쓰다>(중앙일보) 등 목불인견 수준의 '삼성어천가'로 도배가 돼 있었다. 때 아닌 '이건희 찬송가'가 울려 퍼졌고, 영문 모를 '국민통합'이란 수사까지 등장했다.

너무나도 자명한 의도에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다. 그저 법대로 상속세를 내는 것뿐 인데도 삼성가가 마치 유산의 60%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들이 포털을 뒤덮었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국가가 걷는 전체 상속세 3년 치에 해당하는 사상 최고액"(MBC 보도)이라는 12조 원 상속세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재산 형성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 삼성이 저지른 각종 불법과 위법, 탈법의 흑역사 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1.1.1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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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이번 상속세 납부를 전후해 수감 중인 '이재용 띄우기' 역시 극에 달하는 형국이다. 지난 24일 <웃돈 줘도 못 구하는 화이자 백신...이재용은 어떻게 뚫었나>란 제목의 <머니투데이> 기사는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확인되지 않는 업계의 풍문을 부각해 정부가 확보한 화이자 백신 추가 물량의 숨은 공신이 바로 이재용 부회장이라는 식이었다.

물론 이런 논조의 기사가 처음일 리 만무하다. 정부의 백신 정책을 때리며 백신 불안을 부추기는 동시에 삼성과 이 부회장의 역할론을 부각하는 양수겸장 기사들은 지난해부터 보수 경제지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양산돼 왔다.

결론은 천편일률이라는 말로도 부족해 보인다. 해당 기사 말미에 "이 부회장의 부재가 다시 한번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상황"(익명의 재계 인사)이란 말을 배치한 위 기사처럼 은근슬쩍 이재용 사면론을 드리우는 식이다. 심지어 보수 경제지들은 최근 재판에 출석한 이 부회장의 몸무게까지 근심하고 나섰다. 언론만 보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삼성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랬던 이재용 사면론이 이번 상속세 납부 국면을 전후해 훨씬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이 4.7 보궐선거에서 압승한 것도 한몫했다. <동아일보>는 지난 23일 자 사설에서 "박근혜 이명박 이재용 사면… 文, 미래 위해 결단하라"며 문재인 정권을 압박하고 나섰다. 실제 삼성이 두 전직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사면을 한데 엮는 것을 환영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재용 사면론을 띄우려는 언론들의 몸부림은 오늘도 계속되는 중이다. 이 같은 여론 조성의 목적은 무엇일까. 지난 1월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내년 6월 출소를 앞둔 이 부회장에 대한 특별 사면이 당장 이뤄지리라 믿는 이가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향후 이 부회장의 삼성 바이오로직스 분식 사기 재판이나 프로포폴 투약 혐의 수사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라 보는 것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향후 이뤄질 재판이나 수사를 위한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여론전 말이다.

공정과 편향 사이
 
이제 재계와 미국 내 상위 1% 부자들이 공정한 몫을 부담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 우리는 땀 흘린 노동에 보상하지 부 그 자체에 보상하지 않겠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1%, 1년에 40만 달러 이상 버는 사람들의 연방정부 소득세율을 조지 W 부시 대통령 이전의 세율인 39.6%로 되돌려 높여 놓겠습니다."
- 28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의회 연설 중

의미심장하게 삼성이 막대한 상속세 납부를 약속한 바로 그날 바이든 대통령은 1% 부자 증세를 공언했다. 이처럼 부유층의 증세는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한 전 세계가 피할 수 없게 된 상생의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언론도 이를 주요하게 다뤘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이런 공약을 실천하겠다고 나섰다면 어찌 됐을까. 당장 보수야당과 보수 경제지들이 베네수엘라 운운하며 망국적 결정이라 총공세를 펼치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우리 언론의 이중적 잣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바로 상속세 납부를 사회 환원으로 둔갑시킨 것도 모자라 이재용 사면론을 전면에 부각한 삼성 보도라 할 수 있다. 이도 모자랐는지, 일부 언론들은 이제 OECD와 비교해 상속세율 자체가 높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전형적인 '부자편향', '재벌편향' 논조가 아닐 수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29일 삼성전자는 2021년 1분기 매출 65.39조 원, 영업이익 9.38조 원의 실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8.2%, 영업이익은 45.5%가 증가했다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1분기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운 것이다.

말만 하면 '공정'을 강조하는 한국 언론들의 자나 깨나 '삼성 걱정', '삼성 망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레토릭을 포함해 이제 좀 적당히 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재벌=재벌 총수'란 낡은 공식도 좀 극복하시고.  

태그:#삼성,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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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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