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청에다가도 전화했거든. 걔 정말 도와줘야 된다고 내가 그러면서 TV에 나올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안 도와주면 내가 만약에 TV 나오는 일 생기면 가만히 안 있는 다고 내가 그랬거든." (인천의 한 모텔 주인, 4일 MBC < PD수첩 > '인천 모텔 아기 - 위기의 청소년부모'편 중에서)
 
 MBC < PD수첩 > '인천 모텔 아기 - 위기의 청소년부모'편.

MBC < PD수첩 > '인천 모텔 아기 - 위기의 청소년부모'편. ⓒ MBC

 
결국 TV에 나올 일이 벌어졌다. 언론 및 방송이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지난 4월 <인천 모텔서 생후 2개월 여아 심정지..아버지 긴급체포>(연합뉴스), <모텔서 생후 2개월 딸, 탁자에 던진 20대 아빠.. 검찰 송치>(세계일보)와 같은 제목의 기사가 포털 뉴스면을 뒤덮었다.

'또 20대 부모가 아동학대를'이란 탄식으로 댓글 창이 도배됐다.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사건(일명 정인이 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터라 비난이 거셀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반전 아닌 반전이 일어났다. 사건의 실체는 선정적인 제목과는 온도가 사뭇 달랐다. 해당 < PD 수첩 >과 < 시사IN >(<'모텔살이' 영아 아동학대 사건의 숨겨진 이야기>) 등 최근 일부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다수 방송 및 언론 보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진상은 이랬다.

27살 아빠와 22살 엄마가 지난해 6월부터 인천 부평구의 모텔 촌을 전전했다. 처음엔 유모차 속 두 살배기 아들이 전부였다. 올 2월, 아이가 하나 더 늘었다. 아이 엄마가 모텔 욕실에서 둘째를 출산한 것이다. 지난 4월 아이 아빠가 아동 학대 혐의로 체포된 것도 이 둘째가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아이 엄마는 없었다. 이들 20대 부모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빠와 엄마 모두 자의 반 타의 반 부모들과 연을 끊은 상태라고 했다. 엄마는 '심한 장애' 판정을 받은 지적장애인이었고, 그런 이유로 아빠의 부모는 결혼을 반대했다고 했다. 엄마의 지인에 따르면, 아이 엄마는 지적장애를 이유로 (엄마의) 할머니로부터 지속적으로 구박을 받았고 쫓겨나다시피 한 상태였다고 했다. 이들 부모가 모텔 촌을 전전해야 했던 이유였다.

모텔 인근에 위치한 원래 거주지에서도 나온 상태였다. 밀린 방세 때문이었다. 아기를 낳은 이후 정부 지원금을 기다렸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아빠는 택배 물류 작업 등 일용직을 전전했고, 엄마는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그럼에도 가족이 머물렀던 모텔 주인들은 한결같이 이들 부모가 착하고 예의 발랐고, 아이들을 극진히 돌봤으며, 아이를 학대할 부모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증거도 적잖았다. 엄마는 임신초기부터 특정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을 다녔다. 아이에게 분유를 먹인 시간을 육아수첩에 일자별로 기록해두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들 부모가 전전한 모텔 세 곳의 주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들 가족을 딱하게 여겼고,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고 했다. 마침 관련 기관이 나서서 아동 복지를 비롯해 이들 가족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려던 시점이었다. 비극은 찰나에 일어났다.

의외의 진상

"한 아동은 시설, 또 한 아동은 24시간 어린이집을 다 섭외를 해서 (결정)됐던 상황이에요. 그래서 월요일 날(4월 12일) 그걸 아버님한테 다 말씀드리고 화요일 날(13일) 만나서 관련된 걸 같이 다 처리하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제 그날 아침에 저희도 딱 출근해 보니까 (그런 일이). 어쨌든 결과론적인 부분이긴 한데, 그러기 전에 아마 좀 더 저희들이 적극적으로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하여튼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 같아요." (김민석 남동구청 아동복지과 주무관, 4일 < PD 수첩 >)


아이 아빠에 앞서 4월 6일 엄마가 먼저 체포됐다. 엄마가 이미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친구에게 10여만 원 정도씩 총 47회에 걸쳐 돈 1153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았다는 것이 구체적인 혐의였다.

체포된 사연도 아이러니했다. 모텔에서 엄마를 체포한 경찰이 출동한 것은 이들 가족의 주소지인 남동구청 측이 전날 실종 수사를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복지 차원에서 구청이 경찰에 요청한 업무 연락이 결국 지명 수배자였던 엄마의 체포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엄마는 세 차례나 이어진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명 수배자가 됐다고 한다.

해당 경찰청 관계자는 "수배자를 경찰관이 그냥 풀어주면 직무유기"란 답을 내놨고, 엄마의 지인은 기소가 되는 과정을 포함해 '이들 부모를 도와 줄 어른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결국 엄마의 부재가 비극을 키운 셈이 됐다. 이후 엄마는 구치소에 수감됐고, 아빠는 아이 둘을 홀로 돌봐야 했다. 아빠가 친구를 모텔로 부르면서까지 아이들을 돌본 상황은 모텔 CCTV에도 기록돼 있었다.

엄마가 체포된 이후 이들 부모의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원래 주소지 쪽 구청 측이 구체적인 도움을 주려고 했다. 앞서 육아 용품 등을 지원했던 사회복지사들은 모텔이 위치한 구청 소속이었다.

하지만 홀로 남은 아빠는 엄마의 부재 속에서 고된 육아와 빈곤을 참지 못하고 돌보던 둘째 아이를 벽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곧바로 119에 신고했지만 아빠는 '아동 학대' 혐의로 체포, 구속된 상태다. 아빠의 잘못된 행위는 명백해 보인다. 법원 또한 그에 합당한 처벌을 판결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이들 가족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이런 사고는 없었을 것 같다"는 공무원의 인터뷰에 고개를 끄덕일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일 MBC < 100분 토론 > '코로나 19시대, 아동·청소년 문제 해법은?' 편에 출연한 전문가들 역시 해당 사건에 대한 다각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주요 이슈로 해당 사건을 내세운 제작진도, 출연진 모두 기존 '아동학대' 사건과 해당 사건과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청소년 부모의 실태에 이르기까지
 
 MBC <100분 토론> 한 장면.

MBC <100분 토론> 한 장면. ⓒ MBC

 
"(이들 부모에게) 다 도움을 주려고 노력을 했다. 각자 자기 입장에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선행을 베풀려고 도움을 주려고 했고, 엄마 아빠도 어려운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그 중간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단계와 문이 있었는데 아이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또 이 아이들은 가난했다. 이런 취약 계층은 어느 순간 절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복지제도가 많아지고 경제소득이 많아지고 부의 공평한 배분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런 취약 계층을 돕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울러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교수는 아동학대 사건의 '사건화'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꼭 '형사사건'화하지 않더라도 아동과 관련된 사건이나 신고가 전상 상의 기록에 남아 국가에서 관리되도록 시스템화 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비범죄화'되는 순간 시스템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상 문제에 대한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같은 맥락에서, 이 교수는 아동학대 관련 법률이 10년 동안 수없이 개정된 점을 꼬집었다. 이미 민간 영역에서 해왔던 관련 업무를 지자체 등에서 처리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돼 왔음에도 최근 들어 아동학대 사건은 물론 사망 사건이 늘어나고 있음을 지적한 셈이었다.

반면 정익중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범죄화보다 복지 시스템 상 지원이 먼저라고 반박했다. 범죄화가 광범위하게 되는 순간 아동학대 부모들이 도리어 숨어 버리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명제를 강조한 정 교수는 지역 사회와 관계 기관과의 긴밀한 협조 및 협력을 강조하는 한편 학대 아동들에 대한 조기 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었다.

이들 전문가들은 아동보호 체계 전반의 시스템 상 허점에 대해 대체로 동의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출신인 장하나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 활동가가 지난 2월 발의 이후 국회가 외면 중인 아동학대진상조사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아동학대진상조사특별법이) 발의되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다. 보궐선거나 당 내 선거 등으로 인해 국회가 들여다보지 않고 있어서 분노하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도 면밀히 봐야 한다. 공적으로 진상조사를 해야 하고, 법적으로 권한이 있는 사람들이 따져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진상 조사는 누구를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 이번 사건에서 지명수배자인 엄마를 선처하자거나 경찰을 처벌하자는 것도 아니다. 19개월, 2개월 아이를 보호하는 아동인권을 최우선에 놨다면 체포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메뉴얼의 문제를 바꾸는 문제다. 지금처럼 '모텔 살인'이란 제목의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국민들이 공분하지만 진상조사가 되지 않으면 메뉴얼이 바뀌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특별법에서 진상조사가 강조되는 이유다." (장하나 활동가)


의외의 사건이 환기한 시스템 상 허점

어린이날 직전 방영된 < PD 수첩 >은 '인천 모텔 아기' 사건과 함께 사회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청소년 부모'의 실상을 다뤘다. < 100분 토론 >은 인천 사건을 비롯한 아동학대 사건과 더불어 코로나19로 인한 학습 격차 및 청소년 범죄 등 아동 및 청소년 복지 전반을 다뤘다.

그럼에도 두 프로그램 모두 인천 사건을 첫 머리에 내세웠다. 넓게 보면 결론은 공통된다고 볼 수 있다. 청소년 부모를 둘러싼 아동 복지 측면의 사각지대 말이다. 모텔 주인들도, 경찰도, 공무원들도 모텔을 전전했지만 아이 둘을 버리지 않았던 부모들을 도와주려고 했다. 하지만 시스템의 허점은 엄마를 구속시켰고, 아빠를 궁지에 내몰았다. 애초부터 이들을 모텔로 내몬 것은 가난이었고, 어른들이었다.

< PD 수첩 >과 인터뷰한 청소년 부모들 모두 도움의 손길이 절실했으나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야 했음을 고백하고 있었다. 낮은 출생률이 전 사회적인 문제인 지 오래지만 정작 아이를 낳은 청소년 부모들은 사회적 편견에 내몰리는 것도 모자라 빈곤과 싸울 수밖에 없는 형국이라고 할까.

인천 모텔 사건의 경우, 결과적으로 부모 모두 범죄에 노출됐다는 점 또한 의미심장하다. 청소년 혹은 청소년 부모들이 절벽으로 내몰린  때, 혹은 시스템의 허점이 반복될 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경우를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아동학대를 저지른 범죄자 부모들에 대한 처벌 강화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고, 이에 동의하지 않을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여전히 시스템 상 허점이 도처에 널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아동 학대 관련 범죄에 대한 양형 강화도, 관련 복지 시스템 개선도, 아동학대진상조사특별법 국회 통과 역시 이러한 시스템 상 허점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애초 아동학대 사건으로 알려진 인천 사건이 던져준 숙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 가족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속된 아빠는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로 재판을 앞뒀다. 법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해 풀려난 엄마는 인천의 한 한부모가족시설에, 21개월인 첫째는 인천의 한 보육시설에 입소한 상태라고 한다. 

중태에 빠졌던 생후 2개월 둘째 딸은 최근 의식을 되찾고 자력으로 호흡 중이라는 다행스러운 소식이 전해졌다. 모텔을 전전하면서까지 자식들을 양육하려 했던 이들 부모는 결국 아빠의 한순간 범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상 허점을 알린 이들 가족은 과연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100분토론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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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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