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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이 금지된 나라에서 우리는 우리가 겪는 차별의 일상을 어디에,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차별, 지역 차별 등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차별의 경험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청년의 현실을 진단하는 자들의 목소리가 아닌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직접 말하기로 했습니다. 5월 25일부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이 시작됩니다. 5월 17일부터 '차별금지법 나만 필요해?' 기획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바라는 우리가 바꿀 세상을 제안합니다.[기자말]
동성애자인 나한테 비혼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였다.
 동성애자인 나한테 비혼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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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결혼한다고? 이거 배신 아냐?"

친한 친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다. 보통 아주 친했던 친구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느끼는 배신감은 이제 그 친구가 더 이상 나의 철없던 그 단짝이 아니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온다. 하지만 내가 표현한 건, "야 나는 동성결혼이 안 돼서 결혼 못 하는데 너만 하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박탈감이었다. 참고로 난 게이다.

요즘 결혼을 안 하는 게 추세라지만, 이상하게도 내 주변 이성애자 친구들은 결혼을 꿈꾼다. 28살 정도 되니 또래의 청첩장을 받는 게 꽤 흔한 일이 되었다. 당연히 축복해주고 싶지만, 나도 언젠가 청첩장을 건네주고 싶다고 생각하면 살짝 우울해지기도 한다. 나한테 비혼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니까. 청첩장을 받는 날이면 어제까지만 해도 하하호호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꽤 멀어 보인다. 나랑 사회적 위치 자체가 다르다고 느껴져서.

'남자로 재탄생', 이 술 모임의 정체
 
나를 남자로 재탄생시키겠다며 모인 이들은 나에게 잔을 들 때 새끼손가락 들지 못하게 하고, 목소리도 굵게 내게 하는 등 이상한 요구를 해왔다.
 나를 남자로 재탄생시키겠다며 모인 이들은 나에게 잔을 들 때 새끼손가락 들지 못하게 하고, 목소리도 굵게 내게 하는 등 이상한 요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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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오랜만에 만난 형이 있어서 둘이 술을 먹게 되었다. 조금 얼큰히 취한 형은 나에게 역시 사람은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면서, 아이도 낳고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왜 넌 연애도 안 하냐, 여자랑 성관계는 해봤냐면서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 형은 예전부터 나에게 잔 들 때 새끼손가락 드는 거 남자답지 않다면서, 내가 새끼손가락을 올릴 때마다 때리던 사람이었고, 말투가 여성스러워 여자들이 널 안 좋아하는 거라고 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알기로 이 형은 아직 결혼을 못 하고 있는데,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형하고 술을 먹다 보니 예전 일이 생각났다. 이 형을 포함한 세 명의 형이 나에게 술을 사주겠다고 따로 불러냈다. 나에게 요즘 주변에 좋아하는 여자 없냐고 캐묻고, 어떤 여자를 좋아하냐는 게 질문이었다. 알고 보니 이 술 모임의 콘셉트가 나를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남자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이들은 나에게 잔을 들 때 새끼손가락 들지 못하게 하고, 목소리도 굵게 내게 하는 등 이상한 요구를 해왔다.

어떤 여자를 좋아하는지 답하지 않으면 집에 보내주지 않을 거 같아서 당시 "나는 우리 증조할머니 같은 여자가 좋다"라고 답변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우리 증조할머니는 자애로우시고 항상 나의 비빌 언덕이었으니까. 그랬더니 한 사람이 "얘 사실 트랜스젠더인 거 아니야? 여자 같고,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야? 더러워. 야 그러면 결혼은 고사하고 기업에서도 너 안 뽑아" 이러면서 깔깔 웃어댔다.

이런 경험들이 누적되다 보니 내가 커밍아웃하지 않은 이성애자 형, 남자친구들과 노는 게 힘들어졌고 자연스럽게 그 무리로부터 멀어졌다. 그 시기쯤 또 다이나믹 했던 것이, 주변에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커밍아웃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여자인 친구에게 단둘이 있을 때 술 마시며 커밍아웃을 하고 힘듦을 토로했더니 갑자기 울먹거리면서 "왜 하필 너야?"라고 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자기는 게이라고 하면 미소년일 줄 알았는데 내가 못생겨서 싫다는 것이었다. 웃겼는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슬펐다.

또 한 번은 남자인 친구에게 커밍아웃했더니 말이 없어졌길래 왜 그러냐고 물어봤다. 무척 곤란해 하다가 "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자기를 좋아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한 것이다. 자존감이 높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남자답다, 여성스럽다, 게이 같다. 이런 표현들 속에 위계가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무례한 것인데도, 으레 사람은, 남자는, 여자는 그래야 한다는 일반화된 개똥철학이 나를 참 힘들게 했던 거 같다. 사실 그게 다 차별일 수도 있는 것인데. 되려 군대에서 커밍아웃했을 땐 "게이 같지 않아서 좋았다"는 말을 들어봤다. 게이 같음이 뭐길래.

나도 청첩장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차별은 별 게 아니다. 성관계를 좋아할 것이라거나 이성애자일 것으로 생각하고, 트랜스젠더를 비웃고 왜곡하고, 외모에 대한 선입견을 갖고, 게이는 남자라면 다 좋아하리라 생각하고. 물론 이런 일시적이고 개별적인 언행이 사회적 규제 대상일 순 없다. 그러나 이런 개별적이고 미세한 차별들이 모여서 사회의 규범과 분위기를 형성하고, 결국 공적 영역에서 차별을 발생시킨다.
  
최근 국방부는 성전환수술을 이유로 고 변희수 하사를 심신장애로 규정하여 강제전역 시켰다. 이는 성소수자의 노동권을 심대하게 침해한 일이기도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가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질병이나 장애의 목록에서 제외했던 2018년 결정과도 대치된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국회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동성애는 하느님 섭리에 어긋난다", "우리 사회가 동성애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풍토에 빠지지 않도록 막겠다"는 등 차별을 선동하고 있다. 그리고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은, 누군가의 '공정성'을 무너뜨린다. 그 무너진 공정성은 사람을 아프게 하기도, 죽이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동성결혼 청첩장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어려운 코로나 시국에 기어코 결혼하고, 애도 낳겠다는 내 친구들에게 진심 어린 축복을 전하지만, 너희들 결혼 사정 만큼이나 내 결혼 또는 내 성정체성을 둘러싼 사회 환경 개선에도 관심 가지고 축복하고 지지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전한다.

사람이 다 똑같은 청년기 또는 생애주기를 경험하는 건 아니겠지만, 차별과 혐오는 우리 삶의 간격을 앞으로 더 벌려놓을 거다. 차별과 혐오를 멀리하고, 우리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해 보자. 오늘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IDAHOBIT)이다.

※나도 말하고 싶다, 겪었던 이야기!

📢방법1. 자신의 SNS에 해시태그(#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와 함께 경험 적기
📢방법2. 구글 설문지에 경험 적기!
https://forms.gle/HVaSZUqgABSgUxqW7
📢[#차별금지법_나도필요해] 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국민동의청원 10만행동>을 목표로 각자의 차별경험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심기용님은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날, #IDAHOBIT
댓글4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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