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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 년 전이다.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십 년 넘게 일했던 나는 한동안 쉼이 필요했고 오랜 결심 끝에 퇴사를 했다. 쉬는 동안 여행도 다니고 하고 싶었던 일도 했다.

2018년 5월 2일. 새일터로 출근 하기 전날 저녁, 주행거리 11만 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중고 자동차에 일주일 정도 생활할 옷과 침구를 가득 실었다. 새 직장이 집에서 왕복 100킬로미터였기 때문이다.

"할 수 있겠어?"
"장거리 출퇴근 쉬운 일이 아닌데"
"차라리 이사 하는 게 좋을 거야."


장거리 출퇴근을 해봤던 지인들이 쉽지 않을 거라고 했다. 나 역시 각오는 했지만 겁이 났다. 출퇴근하다가 힘들면 이사를 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일을 했던 직장은 집에서 반경 10킬로미터를 넘지 않았다. 새 직장은 왕복 100킬로미터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삶이다. 반경 50킬로미터의 세상을 살던 시간을 돌아본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사무실에서 잠을 자다
 
시설에 있는 동안 센터 아이들과 함께 나눔을 위한 희망 저금통에 조금씩 동전을 모았다. 절반 정도 채워졌을 때 도움이 필요한 시설의 가정에 기부를 했다.
▲ 희망 저금통 시설에 있는 동안 센터 아이들과 함께 나눔을 위한 희망 저금통에 조금씩 동전을 모았다. 절반 정도 채워졌을 때 도움이 필요한 시설의 가정에 기부를 했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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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자리가 바뀌면 풍경이 바뀐다'라고 했던가. 삶과 일터의 거리가 두 도시를 넘나들 정도로 넓어지니 그동안 출퇴근하면서 경험하지 않던 상황들이 생겼다.

가장 먼저 일주일 중 하루는 센터 일이 늦게 끝나거나 몸이 피곤할 땐 사무실에서 자야 했다. 오전에 기관 회의가 있을 때나 토요일 프로그램이 잡히면 센터에서 잠을 잤다. 가까운 찜질방에서 자기도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퇴근은 오후 7시지만 늘 한 시간 쯤 지나서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어 서울 시내로 들어가면 퇴근 시간만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조금 과장하면 명절에 꽉 막히는 고향을 매일 다녀오는 느낌이었다.

교통사고도 자주 목격했다. 흐름이 원활한 구간이 막히면 십중팔구는 사고 때문이었다. 차량이 도로에 전복된 채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뒤로 견인차 서너 대가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울먹이며 통화를 했다. 충격이 며칠은 갔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생리현상이었다. 특히 금요일처럼 퇴근 시간이 꽉 막히는 도로 한복판에서 생리 현상이 찾아오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경로에 주유소나 화장실이 없어서 참기 힘들면 서울 시내로 빠져야 했다. 

자동차도 고장이 났다. 한번은 분당수서간 도로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계기판 엔진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더니 차가 꿀렁거렸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꿀렁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중간에 빠질 수도 없었다. 비상등을 켠 채 사십킬로를 천천히 주행했다. 정비소에 도착했다. 다리에 쥐가 났다. 점화 코일 하나가 문제였다.  

여름 장마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월요일이 선생님 휴가라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월요일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였다. 밤에도 쏟아졌다. 고민하다 사무실에서 잤다. 사무실에서 자는 게 익숙해졌다. 화요일도 폭우가 쏟아졌다. 도로는 빗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날은 집으로 가기로 했다. 시동을 켜고 엉금엉금 차를 움직이는데 계기판에 침수 경고등이 들어왔다.

자유로를 타려는데 우비를 입은 경찰이 우회전 진입을 막았다.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핸들을 사무실로 돌렸다. 가는 동안에도 폭우는 쏟아졌고 침수 경고등은 깜빡거렸다.

일층에 식품회사가 있어서 바퀴벌레가 있다. 자주 소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은 축구 한/일전을 하던 날이었다. 밤이 되자 바퀴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스르륵. 사사삭. 불을 켜자 거실에 모여있던 놈들이 번개처럼 흩어졌다. 한 시간 남짓 바퀴벌레 세 마리를 잡았다. 승리가 가까웠다. 한일전도 이겼는데 이까짓 바퀴벌레쯤이야.

문득 소름이 돋았다. 밤사이 무의식의 심연을 헤매고 있을 내 몸을 지켜줄 무기가 필요했다. 그 무기는 24시 편의점에 있었다. 에프킬라. 육천구백 원이다. 사무실 한편 이부자리 주변으로 에프킬라를 사정없이 뿌렸다. 전에도 놈들은 내 몸과 얼굴을 더듬었을 것이다.

잠이 들었다. 스르륵. 사사삭. 스스슥. 무언가가 내 목을 더듬었다. 으아악.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섬광처럼 몸을 일으킨 후 손으로 목을 털어냈다. 불을 켜고 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배를 하늘로 까뒤집은 채 발을 버둥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놈을 향해 바퀴벌레약을 사정없이 뿌려댔다. 놈은 십 초 정도 몸서리를 치더니 축 늘어졌다.

삶의 질과 일터의 거리는 반비례한다
 
사무실에서 잠을 자고 난 다음날은 일터와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서 행정복지센터 휴게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보내며 책을 읽거나 SNS를 했다. 늘 꽝만 나오던 로또가 처음으로 네 자리가 맞았다.
▲ 아메리카노 사무실에서 잠을 자고 난 다음날은 일터와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서 행정복지센터 휴게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보내며 책을 읽거나 SNS를 했다. 늘 꽝만 나오던 로또가 처음으로 네 자리가 맞았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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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일터는 분리 되어야 한다. 사무실에서 자야 하는 날은 다음날 퇴근하기 전까지 연장 근무를 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두 시간은 공원에서 운동을 하거나, 주민센터 휴게실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공간을 분리했다.   
   
고양은 아름다웠다. 나만 내외하지 않는다면 행복할 수 있는 도시였다. 꽃의 도시답게 화원이 많았고 거리는 향기로웠다. 인구도 많고 면적도 넓다. 호수공원은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출근길에 보던 행주산성이 나를 환영했다.

센터가 있는 지역은 재개발 예정지라 건물은 허름했고 밤이 되면 휑했다. 하지만 도시와 시골을 절반쯤 섞어 놓은 풍경은 70,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촬영지가 될 정도로 정겨웠다.

인연도 생기면서 이사를 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금요일이면 사무실에서 정체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이사를 할까, 고시원을 얻을까, 고민을 하긴 했다. 하지만 전에도 직장 때문에 이사를 했다가 돌아온 적이 있었다.

2020년 4월 30일. 약속했던 2년에서 한 달을 더 채우고 퇴사를 했다. 퇴사 하던 날 후임에게 인수할 서류를 정리하고 있는데 센터 운영위원장님이 찾아오셨다. 지난 2년간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힘이 되어 주셨다. 위원장님이 그동안 타지에서 고생했다면서 화장품 한 세트를 건네셨다. 마지막 퇴근길을 배웅해 주셨다. 기분이 묘했다. 첫 출근 하던 날과 달리 짐이 가볍다.

11만이던 주행거리가 18만을 향한다. 길은 고단한 밥벌이가 아닌 가벼운 배낭을 맨 여행자의 시선으로 볼 때 낭만적이다. 지금도 밥벌이의 지난함을 위하여, 혼잡한 지하철에서, 꽉 막히는 도로에서, 생리현상을 참아가며,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네이버블로그와 다음 브런치>에도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경계인, #고양, #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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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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