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먼 알반(Damon Albarn) photography credit Anna Barclay

데이먼 알반(Damon Albarn) photography credit Anna Barclay ⓒ ALPS Inc

 
나는 나 자신을 '페스티벌 고어(festival goer)'라고 소개한다. 페스티벌 고어는 열심히 뮤직 페스티벌을 '다니는' 사람들이다. 세계 각지의 뮤지션들을 만나고, 맥주를 마신다. 비트코인이나 주가의 등락보다 페스티벌 라인업에 신경을 기울인다. 탁 트인 공간에서 관객과 뮤지션이 호흡하면서 만드는 해방감은 다른 경험으로 대체할 수 없다. SNS는 물론, 오마이뉴스 지면에도 여러 차례 그 감각을 기록해왔다. 그러나 2020년 이후, 그 감각은 철저히 단절되고 말았다. 언택트 공연이 대안으로 제시되었지만, 큰 감흥을 느끼기 어려웠다.
 
군중의 풍경이 생경하게 느껴질 때쯤, 글래스톤베리의 온라인 공연 '글래스톤베리 라이브 앳 워디 팜(Glastonbury Live At Worty Farm, 한국시각으로 23일 오후 6시)'의 개최 소식이 들렸다. 소수의 인원을 모아 온라인 공연을 만끽하기로 했다. 페스티벌에서 입을법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었다. 시원한 맥주도 하나둘씩 꺼냈다. 한국 페스티벌의 단골 음식 메뉴인 '김치말이 국수'도 빠질 수 없었다.

글래스톤베리는 마이클 이비스(Michael Eavis)가 소유한 영국 서머싯(Somerset)의 농장 워디 팜(Worty Farm)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이다. 지구에서 가장 큰 노천 페스티벌로 손꼽히며, '페스티벌 고어'들의 영원한 성지다. 지난해에는 폴 매카트니와 켄드릭 라마, 테일러 스위프트 등이 50주년 페스티벌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었다.
 
지구 반대편의 공기를 전달하다
 
 하임(HAIM) photography credit Anna Barclay

하임(HAIM) photography credit Anna Barclay ⓒ ALPS Inc

  
온라인 페스티벌의 문을 연 것은 런던 출신 밴드 울프 앨리스(Wolf Alice)였다. 드론 카메라가 거대한 '워디 팜'의 평원이 화면에 담기더니, 밴드 멤버들이 밴에서 내려 고대 유적지 '스톤 서클'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각자 악기를 잡고 'Don't Delete The Kisses'를 연주했다. 엘리 로우셀의 몽환적인 목소리가 평원을 향해 뚫고 나간 지 몇 분 만에, 탄성이 터졌다. 온라인 공연에 대한 선입견이 순식간에 깨졌다.
 
스트리밍된 영상은 로드 무비와 음악 다큐를 섞어놓은 듯했다. 테일러 스위프트, 아델 등의 공연 다큐를 연출한 폴 더그데일(Paul Dugdale) 감독의 내공이 빛났다. 폴 더그데일은 자연의 지형 지물과 공연의 합일을 이뤄냈다. 마이클 키와누카(Michael Kiwanuka)의 그루비한 기타 연주는 빗소리와 섞여 귀를 간지럽혔다. 3인조 자매 밴드 하임(HAIM)의 공연에서는 바위를 비추는 주황색 석양,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어우러졌다. 시각과 청각, 바람이 살갗에 닿는 질감마저 놓치지 않았다. 가히 공감각적인 체험이었다.
 
아티스트와 음악의 성향에 따라 무대가 다르게 연출되었던 것도 볼거리였다. 조지 에즈라(George Ezra)는 농장의 여러 공간을 유유자적 걸어 다니며 기타를 쳤다. 브리스톨 출신의 록밴드 아이들스(Idles)의 등장도 압권이었다. 카메라는 무작정 차고로 뛰쳐 들어가는 보컬 조 탈봇(Joe Talbot)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 안에는 수십 대의 폐차가 널브러져 있었고, 용접공과 공룡 모양의 조형물마저 등장했다. 아이들스 특유의 과격한 노이즈 사운드는 무대의 괴기한 분위기와 조응했다.
 
단순한 온라인 공연? 무엇이 달랐나

  
 콜드플레이(Coldplay) photography credit Anna Barclay

콜드플레이(Coldplay) photography credit Anna Barclay ⓒ ALPS Inc

 
페스티벌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으는 것은 헤드라이너의 공연이다. 과거 글래스톤베리에서 네 차례나 헤드라이너를 맡았던 밴드 콜드플레이(Coldplay)는 거대한 무대인 피라미드 스테이지 앞에서 무대를 펼쳤다. 규모부터 달랐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레이저, 폭죽이 무대를 장식했다. 신곡 'Higher Power'에 이어 'The Scientist', 'Viva La Vida', 'Clocks' 등 히트곡이 크리스 마틴(Chris Martin)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콜드플레이는 관중의 부재를 수만 개의 불빛,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레이저로 대체했다. 어느새 위로의 송가로 사리잡은 'Fix You'는 단연 하이라이트. 
 
거대한 달 모양의 조형물을 띄워놓고 노래하는 데이먼 알반(Damon Albarn)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데이먼 알반은 주어진 시간 내내 침잠하는 분위기의 전자 음악을 들려 주었다. 알반의 공허한 음색,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평화로운 자연의 풍경이 독특한 조화를 이뤘다. 동어 반복과 거리를 두는 장인의 멋이 빛났다. 'Polaris', 'Lonely Press Play' 등 솔로곡을 주로 부르던 알반은 공연 막판에 'On Melancholy Hill(고릴라즈)', 'This Is A Low(블러)' 등 옛 히트곡을 부르며 향수도 자극했다.
 
페스티벌의 묘미는 다양한 뮤지션을 한군데서 볼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영국의 소울 뮤지션 조자 스미스(Jorja Smith)는 보라색 조명으로 빛나는 나무 아래에서 노래했다.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톰 요크(Thom Yorke), 조니 그린우드(Johnny Greenwood)는 프로젝트 밴드 '스마일(The Smile)을 최초 공개했다. 이들은 특수 제작된 무대에서 드러머 톰 스키너, 나이젤 고드리치와 함께 난수표 같은 매스 록을 연주했다.
 
 조지 에즈라(George Ezra)의 공연

조지 에즈라(George Ezra)의 공연 ⓒ ALPS Inc

  
2017년, 노동당의 당수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은 글래스톤베리에 깜짝 등장해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았던 적이 있다. 올해에도 시대와 공명하는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영국 래퍼 카노(KANO)는 충격적인 영상 예술과 함께 흑백 인종 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던졌다. 공연과 공연 사이에는 시리아 난민 아동을 상징하는 3.5m 인형 '리틀 아말(Little Amal)이 등장했다.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유럽 대륙을 횡단하는 더 워크(The Walk)'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난민 문제를 환기하기 위한 행위 예술이다.
 
지구 최고의 페스티벌이 방구석으로 들어왔다.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페스티벌 후기'를 기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관객의 함성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아쉬웠지만, 단절된 감각을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는 콘텐츠였다. 물론 온라인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의 현장성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아예 새로운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은 가능하다. 단순한 공연의 나열이 아니라 희소성을 갖춘 양질의 콘텐츠라면,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다. '글래스톤베리 라이브 앳 워디 팜'은 공연 예술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여섯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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