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0 10:47최종 업데이트 21.06.1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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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 pixabay

 
세상에 돈 싫어하는 사람 있을까요? 없을 듯 합니다. 천 원 내면 만 원 준다는 거래는 거절하기 어렵겠죠. 사기를 의심할 수도 있지만,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이럴 때 정말 푼돈 천 원 안 내시겠어요? 이번 주식 열풍, 암호화폐(가상화폐) 광풍은 바로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30이 불려 나왔죠.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암호화폐로 자사 전기차를 결제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가, 또 그런 짓은 안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시장은 널을 뛰었습니다. 암호화폐 대장 격인 비트코인 가격이 1억을 넘보다가, 또 반토막이 날 것 같다가 했죠. 그 와중에 손해 본 이들도 생겼는데, 언론은 2030이 함부로 돈을 걸었다가 정부에 손해를 보전해 달라는 억지부린다는 양 보도를 하더군요.


억지는 맞는데, 그렇게 보도할 일이었을까요? 일단 돈 게임을 좋아하는 건 사람들의 일반적 성향입니다. 나이와 세대에 상관없이요. 예를 들어 볼게요. 1956년에 한국증권거래소가 세워졌습니다. 해방 후 우리나라에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첫 발자국이에요. 상장된 주식은 12종이었는데, 공기업이 많았죠. 가난한 나라에서 공기업 말고 상장시킬 만한 기업이 어디 있었겠어요.

먹을 것도 없는데 주식? 아무도 안 샀을 것 같지만....

툭하면 굶던 시기에 주식이라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 같죠? 쌀 한 되 주고 고무신 한 켤레로 교환하던 시절에 종이 쪼가리가 회사의 권리라니 무슨 되지도 않는 소리야, 하면서 흐지부지됐을 것 같죠? 아닙니다. 뭘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공기업 주식이에요. 한국전력공사의 전신인 경성전기라든가 지금은 신한은행이 된 조흥은행, 한진해운으로 바뀐 대한 해운 공사 같은 회사들이 올라와 있었거든요.
  

1973년 한국은행에서 발행한 500원권 지폐(출처: 한국은행) ⓒ 한국은행

 
이런 회사의 초대 주주가 될 기회를 알면서도 놓칠 사람이 있을까요? 돈이 있다면 안 사시겠어요? 저라면 거래하러 가겠어요. 사람들이 보자기에 돈을 싸 들고 올라와 거래소 앞에서 노숙할 정도였단 말이에요. 이거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 사실은 회사 먹기에 가까울 만큼의 이익 거래죠. 사기도 아닐거고요.

이분들 당시 나이는 2030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고, 지금 살아계신다면 노인이실 거예요. 투기 열풍이 불 때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을 예로 들곤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충분히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정보가 있고, 거래 접근 가능성도 있고, 거래할 돈이 있으며,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모든 시대와 세대에 고루 존재하니까요.

그럼에도 지금 주식과 코인 열풍은 2030의 사건이 맞을 겁니다. 왜냐면 청년들에게 이런 정보가 빠르게 제공되고, 디지털금융에 익숙해서 모바일로 바로바로 거래할 능력이 있고, 부동산이나 자가용은 못 사더라도 내가 가진 푼돈으로 엄청난 수익률이 눈에 보이는 거래가 눈앞에 있거든요.

2030만이 문제다? 정말 그럴까요 
 

비트코인의 변동성은 제도권에 편입돼있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양날의 검일 것이다. (휴대폰 화면 갈무리) ⓒ 김정인

 
그렇다면 이런 기회에 사람들이 대출까지 받아가며 달려드는 건 늘 있는 일이니까 넘어가면 될까요? 2030은 언론이 무고하게 호명해낸 희생양일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다만 돈 좋아하는 건 일반적인 성향이지, 2021년의 20대와 30대만이 가지는 특성은 아니라는 뜻이에요.

1950~1960년대 한국에서 주식을 거래하던 일반 투자자들은 높은 확률로 큰 손해를 봤습니다. 증권파동이 일어나 거래소가 파산해 버렸거든요. 아직 증권시장을 운영할 역량이 되지 않는 나라에서 증시거래를 무리하게 도입한 대가였죠. 지금 암호화폐에 무조건 돈을 밀어 넣는 2030도 손해를 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시장은 제도권에 자리 잡은 시장이 아니라 폰지게임(Ponzi Game: 빚으로 빚을 갚는 행위를 뜻하는 말) 정글이니까요.

지금 코스피나 코스닥 등 한국증시에 투자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찾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퇴직금제도도 퇴직연금제도로 바뀌어서 회사들은 종업원의 퇴직금을 매달 증시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증권시장이 발달하고 있지요? 이제는 1950년대에 한국증권거래소 앞에서 돈을 싸 들고 노숙하던 사람들처럼, 손가락질하기 어렵다는 뜻이에요.

물론 암호화폐가 앞으로 제도권 안에 들어올지, 저러다가 사라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도권 안에 들어온다면 지금 울고 웃는 2030이 용감한 개척자로 평가받을 수도 있는 게 시장의 역사라는 거예요. 그러니 일반적인 특성을 한 세대의 특징처럼 몰아가는 건, 단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에 도움이 안 됩니다.

기성세대로서 사회 문제에 한 마디 얹을 권리와 책임이 동시에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무엇이 당연하고 무엇은 아닌지 가르마를 타주세요. 진짜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디테일을 챙깁니다.  

청년들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편향돼 있다면 보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할 수는 있죠. 물가가 치솟는다고 할 때는 부동산 가격도, 주가도, 암호화폐 가격도 모두 포함되는 겁니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고삐 풀려 돌아다니는 시장에 부동산 폭등과 증시, 각종 금융상품 가격 폭등이 별개라면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요?

이 모든 현상을 합쳐서 '돈이 복사된다'고들 하지요. 맞는 말입니다. 이런 말이 주는 풍자적 효과는 뛰어납니다. 좌절과 분노를 나타내고 공감하는 데 이토록 재치 있는 말이 또 어디 있겠어요. 남의 돈이 마구 복사되고 있는 때에, 제 돈은 덩치가 귀엽기 그지없어서 시시때때로 가슴이 답답하단 말이지요.

그러나 누군가는 차분한 대응 또한 보여주어야 할 겁니다. 특히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나 기득권이라면 더 그렇지요. 청년들의 불안감을 부추기며 양극단으로 동조하는 감정적 목소리만 여기저기서 들리네요. 경제 현상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을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이 돈들을 활용해야한다면, 비교적 제도권 안에 있는 투자시장이 좀 더 편리하고 친절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또 누군가 200억을 벌면 200명이 1억씩 잃는 폰지게임 정글이 아니라, 투자를 할수록 부가가치가 커져서 모두가 이익을 나눌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해줄 수도 있겠죠. 아니면 2030이 맞닥뜨린 극심한 수도권집중현상, 저성장선진국의 노동환경, 달라진 경제공동체로서의 가족형성문화에 더 집중해 돈 문제를 풀어볼 수도 있습니다.
  

철수한 서울동부지방법원 앞, 눈이 내리던 출근길에 찍은 사진이다. 서울 2호선 구의역에 전 직장이 있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군이 사고를 당한 역이다. 아침에 지하철역에 내릴 때마다 괜히 마음이 어려웠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미래가 설렘이 아니라 막막함과 불안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 김정인

 
커다란 문제도 쪼개고 쪼개다 보면 덩치가 아주 작아집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해결할 수 있는 크기가 돼요. 이걸 잘 쪼개는 사람을 '가르마를 잘 탄다'고 합니다. 길지 않은 직장생활 경력이지만 회사에서는 가르마를 잘 타주는 상사를 만나는 게 복이더군요.  

물론 신입사원이 회사에 처음 입사를 하면 누가 일을 잘하는 사람인지 알아보는 눈이 없습니다. 무작정 반항적으로 굴게 되기도 하죠. 하지만 시간문제입니다. 하루하루는 쌓이기 마련이고 신입사원도 업무에 참여하며 조금만 지나도 어디서 일이 돌아가고, 어디서는 일이 안 되는지 느끼게 됩니다. 더 살다 보면 어느새 일을 맨 처음 알려준 상사의 방식대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지금 암호(가상)화폐나 주식 열풍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큰 사회적 이슈를 누구 한 명이 법안 하나 제출해서 잡을 수 있겠어요? 잔소리 몇 번 듣는다고 불나방이 불 아닌 물에 뛰어들겠어요? 그보다는 큰돈이 너무 위험한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상황에서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주세요. 암호화폐는 금융시장에서 이런 것이며, 주식투자는 어떤 시선으로 해야 하며 이런 조건은 이렇게 대응하고 저런 문제엔 저런 장치를 도입해야겠다는 논의를 나눠주세요.

자극적 반응만 확대재생산, 참아주세요... 차분한 대응을 기대합니다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인 감정적인 반응만 골라 확대재생산하거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문제를 더 엉키게 하지는 말아 주세요. 그건 공감도 아니고, 네 감정을 계기 삼아 나의 감정을 표출하고 싶은 호들갑이죠. 아니면 일을 쉽게 쳐내고픈 게으름이거나요. 요사이 잘못된 반응이 피드백을 먹고 자꾸 커지다가 결국에는 자연스러운 것,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는 모습을 자꾸 만나게 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북돋아야 하고, 무엇에 반응하지 않아야 하고, 무엇은 강화해야 할까요? 사회적인 문제를 대할 때 가져야 할 원칙은 무엇이고 가치지향적인 선택은 무엇일까요? 직장 상사에게, 학교 선배에게, 뉴스에서 만나게 되는 정치인에게 이런 고민이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2030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느니, '투기에 눈이 돌아갔다'느니 혹은 이렇게라도 해야 살아남는다느니 호들갑을 떠는 데에는, 일의 가르마를 타려는 노력이 느껴지지 않아요. 프로젝트가 소위 '깽판' 나기 직전인데 곁에서 호들갑 떠는 상사가 얼마나 밉상인지 생각해 보세요.

지금 이 청년들도 수십 년 후에는 중년이 되고, 기성세대가 됩니다. 그때에는 그때의 위험한 시장이 열리겠지요. 그러면 그때의 기성세대는 그때의 청년들에게 무슨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 지금의 기성세대가 보여주었던 태도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세상이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좁아진다면 바로 잘못된 경로의존성을 빚어내는 이런 태도 탓일 겁니다.

어렵더라도, 우리 모두에게 두고두고 좋은 선택을 해나갈 순 없을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김정인 님은 밀레니얼의 금융·경제 미디어 <어피티> 이사입니다. 경제뉴스와 재무정보를 실생활에 와 닿는 콘텐츠로 만들어 매일 아침 직장인들에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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