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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단비는 초록빛이 짙어져 푸르름을 더해주고 있다. 오늘 아침 내린 비는 단단한 대지에 촉촉함을 선사하고 어린 새싹을 무럭무럭 키워냈다. 조용하고 우직한 땅에서 얻은 양분에 수분을 적셔주어 씨를 뿌린 밭에서는 파릇파릇한 초록 잎이 돋아났다. 옥수수와 상추가 자라나고 오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고추 모종에 꽃이 피었고, 대나무밭에서는 죽순이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었다.

며칠 전 아침 일찍 지인으로부터 '죽순을 수확했는데 요리할 줄 알면 가져다줄까?'라는 메시지는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확인했다. 답을 하지 못했고 그날 오후 약속이 있어서 만났을 때 죽순을 주지 못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크고 좋았는지 설명했다. 2~3일 안에 죽순을 따서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헤어졌다.

자연이 준 귀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죽순을 수확해서 손질하기 전의 모습입니다. 껍질을 벗기면 뽀얀 죽순의 새살이 보입니다.
▲ 죽순을 수확한 모습 죽순을 수확해서 손질하기 전의 모습입니다. 껍질을 벗기면 뽀얀 죽순의 새살이 보입니다.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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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일찍 메시지가 도착했다. 며칠 전에 얘기했던 죽순을 따러 밭에 나왔는데 시간 될 때 들르라고 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출출할 시간이라 간식거리로 고구마를 구워 지인이 운영하는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에 들어서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마자 지인의 남편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죽순을 담은 비닐봉지를 가져와 죽순 손질하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하나둘 까기 시작한 게 모두 다 손질했다.

나는 가져간 군고구마를 꺼내놓고 같이 먹자고 했다. 고구마를 먹는 내내 죽순을 손질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잘못하면 떫은맛이 나니 쌀뜨물이 최고라며 소금을 조금 넣고 데치면 아주 맛있게 데쳐진다는 설명도 잊지 않았다.

비가 와서 텃밭에 채소가 금방 자랐다며 상추와 오이, 깻잎까지 듬뿍 넣어주셨다. 이게 바로 친환경 유기농 채소였다. 귀한 선물을 한아름 받아들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어떻게 요리할지를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쌀을 씻어 쌀뜨물을 준비하고 밥을 안쳤다. 냄비에 담아 놓은 쌀뜨물을 가스 불에 올려놓고 소금을 한 줌 넣었다. 물이 끓을 동안 죽순을 씻고 가늘게 썰어서 쌀뜨물이 담긴 냄비에 넣었다. 다음은 상추와 오이, 깻잎을 꺼내 손질하고 씻어서 물기가 잘 빠지도록 담아놓았다. 남편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급해져 손놀림이 빨라졌다.

우선 깻잎김치에 필요한 양념장을 만들고 잘 어우러질 동안 깻잎에 남아 있던 물기를 털어냈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곱게 겹친 다음 두 세장을 양념장에 묻혀서 예쁘게 그릇에 담았다.
 
텃밭에서 따온 깻잎에 양념장을 묻혀 깻잎김치를 담근 모습입니다.
▲ 깻임김치 텃밭에서 따온 깻잎에 양념장을 묻혀 깻잎김치를 담근 모습입니다.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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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은 어른 손바닥만 하게 큰 것부터 갓난아기 손바닥만 한 작은 것까지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예쁘게 생긴 것도 쭈글쭈글한 것도 있고 한쪽 모퉁이가 벌레 먹은 모양까지 제각각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상추를 씻어 물기를 털어낸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볼에 담았다. 집에 있던 빨간색, 노란색 파프리카와 블루베리를 곁들이고 소스를 올려 샐러드를 만들었다.  
 
상추에 파프리카와 블루베리를 넣어 만든 새콤달콤 샐러드
▲ 상추파프리카샐러드 상추에 파프리카와 블루베리를 넣어 만든 새콤달콤 샐러드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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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이무침을 하기 위해 진초록색의 오이를 씻고 가시를 제거한 후 반으로 갈라 반달썰기를 했다. 양파와 마늘과 고춧가루, 액젓을 넣고 매실청과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버무려 접시에 올린 후 깨소금을 살짝 뿌려주었다.
 
텃밭에서 금방 따온 오이를 손질해서 새콤달콤하게 묻히면 입맛이 돋아납니다.
▲ 오이무침 텃밭에서 금방 따온 오이를 손질해서 새콤달콤하게 묻히면 입맛이 돋아납니다.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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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순은 헹구고 소쿠리에 담았다. 물기가 빠지는 동안 그릇에 전분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튀김옷을 만들었다. 튀김옷에 물기가 빠진 죽순을 넣고 옷을 입혀 기름을 넣은 팬에 노릇노릇하게 튀겨냈다. 오늘의 저녁 상차림은 땅에서 나온 유기농 채소로 만든 건강한 밥상이 되었다.
 
쌀뜨물과 소금에 데친 죽순을 튀긴 모습입니다.
▲ 죽순튀김 쌀뜨물과 소금에 데친 죽순을 튀긴 모습입니다.
ⓒ 김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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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사랑으로 채워진 저녁 밥상 

텃밭을 가꾼 지 3년째 되어간다는 지인은 매일같이 이른 아침에 텃밭에 나가 채소를 수확해서 나눠준다고 했다. 바쁜 생활 속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무료급식 자원봉사와 청소년 봉사활동, 시화 엽서 나눔 봉사활동 등으로 하루를 25시간으로 살아가는 부부는 텃밭에 나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삼사월에 심은 채소가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서 비 온 뒤라 더욱 쑥쑥 자라나서 매일매일 수확한 채소를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맛에 힘들다는 생각보다 행복감이 커 그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몸은 힘들지만 자연에서 얻은 채소를 이웃과 지인들에게 나누는 기쁨이 두 배로 크다고 했다.

어릴 적 마당 한쪽에 텃밭 다섯 도랑이 있었다. 이른 아침 아버지는 텃밭에서 한참 동안 벌레도 잡아주고 풀도 뽑고 물도 주었다. 밥상에는 밭에서 갓 수확한 상추, 고추, 오이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입맛이 없을 때, 우리 가족은 밭에서 바로 뜯어온 상추를 뜨끈한 밥에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둘러 비비면 한 그릇은 뚝딱 해치웠다. 여름 더위에 땀 흘린 후 풋고추를 따서 젓갈을 얹어 숟가락 가득 담은 밥 위에 올려 드시던 아버지의 밥그릇이 생각났다.

지금 사는 곳에 텃밭과 아버지가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저녁 상차림으로 건강과 행복을 함께 나눌 수는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와 브런치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태그:#땅의 선물, #텃밭가꾸기, #채소수확, #채소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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