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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동인천역에서 내려 신포시장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그 건너편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고전적인 모습의 건물이 보입니다. 바로 답동성당입니다.

인천 최초의 성당인 답동성당은 한국 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로서 인천교구 내 102개 본당의 주교좌 성당입니다. 주교를 두고 있고, 교구 전체의 모성당이며 교구 통할의 중심이 되는 성당이라는 것이지요.

답동성당의 시작은 18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 파리 외방교회에서는 신부 빌렘을 초대 본당 신부로 인천에 파견하였는데요, 그는 제물포에 상륙한 후 인천의 지세를 살피고 답동 언덕에 성당 터를 마련하고 부임했다고 합니다.

이후 코스트 신부의 설계로 1897년 고딕 양식의 건물이 세워졌고, 현재 건물은 5대 신부 드뇌 때 1933년 개축공사를 시작하여 1937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기존의 고딕양식 건물의 외곽을 벽돌로 쌓아올리면서 아치 형태가 많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변한 것이지요.

덕분에 답동성당은 현재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전주 전동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로 유명합니다. 실제로 가서 보면 건물이 매우 웅장하고 화려한데, 옛날에는 그 감흥이 더했을 겁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성당을 우러러 보면서 서구의 힘에 감탄을 자아냈겠지요.

지금은 비록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답동성당이지만 과거 이곳은 인천 개항장 어디서 봐도 보이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백범일지에도 1898년 인천감리서에서 수감 중이던 김구 선생님이 탈옥하던 밤의 일을 기억하면서 등장하지요. "용동 마루터기에 당도해 있었다.....하늘이 밝아오고 천주교당의 뾰족집이 보였다."

또한 답동성당은 개항지의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화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엄혹했던 군부독재시절, 답동성당은 명동성당과 마찬가지로 쫓기던 민주인사들과 학생, 노동자들을 품어주었습니다. 지금도 경내에 가면 6.10항쟁 기념비가 서 있지요.

현재 답동성당 앞으로는 공원 조성 공사 중입니다. 신포 시장에서 바라 볼 때 시야를 방해했던 건물들이 일부 철거되고 옛 모습을 일부 되찾게 되겠지요. 시간 되시면 한 번쯤 찾아가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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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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