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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혁이나 언론지원이냐. '미디어바우처'를 둘러싼 범여권과 언론계의 엇갈린 시선이다.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관련 법안은 미디어바우처 집행 결과를 정부광고 분배에 활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부수 조작으로 문제가 된 ABC협회의 심사를 대신해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정부광고 집행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반면 이전부터 포털사이트 독점 체제를 극복할 방안으로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논의해온 언론계는 정부광고와 별도로 이 제도 운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기존 언론계 논의] 바우처가 곧장 언론 수익으로

 
지난 4월 2일 포털 사이트에서 많이 본 기사 1위를 기록한 MBN의 오보.
 지난 4월 2일 포털 사이트에서 많이 본 기사 1위를 기록한 MBN의 오보.
ⓒ 포털사이트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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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언론에서 신뢰도가 떨어지는 외신의 '가나 인육 케밥' 소식을 인용해 기사를 내놨다. 이 기사는 포털사이트 메인에 노출됐고 '많이 본 뉴스'의 수위권에 들기도 했다. 그러자 다른 언론들이 이 내용을 따라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보다 앞서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조두순이 마트에서 소주를 구입하고 있다는 내용의 사진과 글이 올라왔다. 이를 한 언론이 그대로 받아썼고 이 기사가 포털사이트에 걸리자 수많은 언론이 '복붙'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진에 나와 있던 이의 가족이 직접 반박에 나서면서 이 역시 허위사실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례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사 유통 창구가 포털사이트로 대표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일원화됐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신문과 방송이 플랫폼으로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이에 따라 가장 큰 수익원이던 광고가 급감했고 자연스레 언론의 콘텐츠 품질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언론은 기획보도나 탐사보도와 같은 고비용 콘텐츠 대신 포털사이트에 특화된 속보나 선정적 기사, 베껴쓰기(어뷰징) 등을 중심으로 독자와 만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언론계 나름의 자성도 있었다. 또한 그러한 자성과 함께 지원책으로서 요구해왔던 것 중 하나가 미디어바우처 제도다('바우처'란 말이 익숙치 않으면 '쿠폰'이란 말로 대신해도 큰 문제는 없다). 정부가 국민에게 바우처를 발급해 이를 마음에 드는 언론에 후원한다면 안정적 수익 구조를 도모하고 포털사이트 독점 체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취지다.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2010년부터 로버트 맥체스니, 브루스 애커먼 등에 의해 제안돼왔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은 '미디어 정책 리포트(김선호 연구위원)'를 통해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디지털 플랫폼 중심의 미디어 생태계에서 저널리즘의 지속 가능성과 품질을 높이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지원 정책"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리포트는 "(이 제도는) 저널리즘 품질 향상과 뉴스 신뢰도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바우처를 기부받기 위해 경영상의 투명성과 윤리강령실천이 언론사에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더 많은 바우처를 기부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8~2019년 경기도의회는 처음 이 제도의 가능성을 검토해보기도 했다. 경기도의회가 한신대 산학협력단(강남훈·김진오·이준형)에 의뢰해 나온 '경기도 언론 공공성 확대를 위한 언론기본소득 실현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엔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기본소득의 개념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기본소득의 정당화는 전통적으로 크게 네 가지 방향(생활권·자유권·평등권·재산권)에서 추진돼 왔다. 그러나 언론주권자 배당(미디어바우처 제도 - 기자 주)을 정당화하기 위해선 다섯 번째 방향(참정권)의 정당화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 ... 대의민주주의 제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대리인은 언론이다. .... 언론으로 하여금 보통 사람들의 뜻에 따르도록 하는 방법의 하나는 언론주권자 배당이다. 주권자들의 뜻에 따르는 보도를 하면 할수록 언론은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소수의 언론 소유자나 광고주의 뜻에 굴복할 필요가 없어진다. .... 주권자들의 정치 참여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려면 대리인들을 통제할 수단을 가져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언론주권자 배당이다."

[김승원 의원 법안] 바우처 정부광고 기준으로 설정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미디어바우처법은 국민이 직접 진행하는 언론사 평가에 따라 정부 광고 집행 규모를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미디어바우처법은 국민이 직접 진행하는 언론사 평가에 따라 정부 광고 집행 규모를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
ⓒ unsplash,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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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바우처 제도가 대중의 입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서부터다. 김 의원은 지난 5월 '국민참여에 의한 언론 영향력 평가제도의 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놨다. 두 법안을 아울러 통상 미디어바우처법이라고 한다.

이 법의 특징이 있다면 국민의 미디어바우처 집행에 따라 언론에 부과되는 정부광고비가 일부 결정된다는 것이다. 우선 1년 간 신문사 등 소수의 인쇄매체에 쓰이던 2500억 원 정부광고비를 미디어바우처 집행 결과에 따라 다수 언론에 배분한다는 것이 김 의원의 구상이다(다만 매출액 기준에 따라 그 이상인 언론사는 총액의 0.5%, 그 외 언론사는 1%까지만 받도록 제한). 향후 방송을 포함한 1조 원 규모의 정부광고비까지로의 확장 적용 가능성도 열려 있다. 

앞서 언론계가 논의해온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지원'의 성격이라면 김 의원의 법안은 '개혁'의 성격이 강하다. 법안 발의의 결정적 이유도 이른바 'ABC협회 사태'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 조중동이 받아간 2020년 정부 광고비 254억 원의 비밀 http://omn.kr/1sl5q)
  
ABC협회는 종이신문의 유료 부수를 공식 심사하는 국내 유일의 조직이다. 이곳의 심사에 따라 광고비가 책정되므로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광고 역시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그동안 ABC협회가 발표해온 종이신문 유료부수 결과가 지난 3월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났다. 즉 대부분 종이신문에게 과도한 광고비를 책정됐던 셈이다. 

결국 일부 언론사가 사과할 만큼 비판이 거세지면서 언론개혁을 추진 중이던 여당의 움직임이 바빠졌고, 김 의원의 법안 발의로까지 이어졌다. 김 의원의 법안이 통과된다면 기존 ABC협회 기준에 따른 상위 20위 언론사의 정부광고비는 절반 수준으로 줄고, 특히 상위 5곳(동아일보·중앙일보·조선일보·매일경제·한국경제)의 경우엔 1/6 수준까지 줄어든다는 분석도 나온다. 

"독자적인 재원 확보" vs "국민 눈높이 생각해야"  
 
더불어민주당 김승원(오른쪽 두번째 부터), 장경태, 유정주 의원이 5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디어 바우처법 발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승원(오른쪽 두번째 부터), 장경태, 유정주 의원이 5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미디어 바우처법 발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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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바우처 제도를 지원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언론계는 개혁에 중점을 둔 김 의원의 법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주된 내용은 '미디어바우처 제도를 정부광고와 연결시키지 말고, 따로 이 제도를 운영할 재원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신문협회는 지난 1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김 의원 법안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냈다. 의견서에는 "어떤 매체를 선정해 효율적으로 정부광고를 집행할 것인지 결정하는 권한은 정부에 있다"면서 "미디어바우처 수급액의 비율대로 광고를 집행할 경우 광고가 도달하고자 목적한 독자를 가진 매체에 집행할 수 없거나 광고효과가 낮은 매체에 예산이 집행돼 세금이 낭비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김승원 의원실, 전국언론노동조합, 지역언론학회가 공동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언론과 독자의 소통을 위한 미디어바우처 제도' 토론회에선 김 의원 측과 언론계의 논쟁이 첨예하게 맞붙였다.

이준형 전국언론노조 전문위원은 "미디어바우처 제도는 시민들의 보편적 미디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어야 한다. 미디어바우처 제도가 ABC협회 체제의 영향력 평가를 대체하기 위한 방법이거나 언론사 지원을 위한 보조금일 수 없다"라며 "정부광고의 집행 목적은 언론사를 상대로 한 광고비 분배가 아니라 정부 정책에 대한 대국민 홍보 및 공고"라고 지적했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도 "미디어바우처를 통한 후원의사 표시는 언론의 품질이나 신뢰성에 대한 지표이지 광고매체로서 영향력을 나타내는 지표가 아니다"라며 "바우처 후원 그 자체가 신뢰받는 언론에게 재정적 혜택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 (기존 정부광고비가 아닌) 독자적인 재원확보 방안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승원 의원실의 문경식 보좌관은 "(ABC협회 심사에 따른) 정부광고 집행 기준이 공정하지 않았다"라며 "정부예산은 공정하게 써야 하고 이를 위해 기준을 만들어야 하는데 (김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그 공정한 룰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국민들의 눈높이는 (지금 소비되는) 정부광고가  정당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면서 "정부광고비와 미디어바우처를 분리하자는 건 따로 예산을 만들자는 건데 그랬다간 (법안이) 좌초할 수밖에 없다"라고 덧붙였다.

태그:#미디어바우처, #언론, #김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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