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9 07:10최종 업데이트 21.07.0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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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 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시대 '6411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노동자와 노회찬 ⑤에서 이어집니다)  
 

1996년 11월 25일 한겨레신문 미디어(8면)면 박스기사. 매일노동뉴스 소식이 실렸다. ⓒ 한겨레PDF /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국내 유일의 노동전문일간지 <매일노동뉴스>를 발행하다

1999년 11월 11일 고려대 노동대학원이 창립 5주년을 기념해 매일경제신문사와 공동으로 제정한 '제1회 노동문화상'에 <매일노동뉴스>(대표 노회찬)가 노동언론 부문 수상을 했다. 선정 이유는 이렇다. 


"노사관계 뉴스를 시기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해 1993년 전문지로서는 드물게 일간지 형태로 창간됐다. 매일노동뉴스는 산업사회의 노사간 갈등이 제도의 시행이나 일회적인 행정조치보다는 노사간 신뢰와 대화를 중시했다. 이 언론은 일간 노동정보지 발간은 물론 ▲각종 노동정보를 분류한 주간노동 정보은행 발간 ▲노동전문 데이터베이스 운영 ▲여론조사시스템인 노동뉴스 여론조사 등을 운영하면서 노동뉴스의 체계적인 정리와 신속한 정보전달에 노력했다. 이에 따라 노동계는 물론 노동부·노동 분야 학계 등에서 긴요하게 참고하는 매체로 자리잡았다."

노회찬은 1993년 5월 18일부터 2003년까지 10년간 국내 유일의 노동전문일간지인 <매일노동뉴스>의 발행인·대표를 역임했다. 노회찬은 매일노동뉴스 발행으로 부채를 많이 지게 돼, IMF 외환위기 때는 이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재출간된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일빛, 2004)이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부채의 상당 부분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노회찬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80년대 노동운동 현장에서 헌신했던 사람들이 새로운 정세 속에서 노사관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만든 것이 매일노동뉴스"라며 "그 운동의 정신과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은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는 "노사문제 해결의 관건은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며 "기업주는 노동자를 생산의 도구로만 여길 게 아니라 동반자로서 협력을 요청하면 합리적 대안을 찾는 게 어렵지만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회찬은 매일노동뉴스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매일노동뉴스 주요 행사에는 가능하면 꼭 참석하려고 했다. 매일노동뉴스 지령 4000호 기념식 및 <현장을 가다> 출판기념회(2009.1.5.)에 참석한 노회찬은 이렇게 회상했다. 

"신문을 창간할 당시 나중에 경영이 어려워져도 매일 나올 수 있도록 '매일'이라는 글자를 꼭 넣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매일노동뉴스가 나무에서 숲이 되기까지 많은 관계자와 독자의 애정이 있었다."

주요 노동 사건의 대법원 판결 지연 실태를 공개하다
: "대법원의 '노동 사건 모르쇠' 현상은 박근혜 정부 적폐의 흔적"

 

2017년 10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 참석한 노회찬. ⓒ 노회찬재단

 
2017년 10월 1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노회찬은 "대법원 판결 지연의 폐해가 큰 5대 노동 사건"을 선정해 발표한 뒤, "대법원이 중요 노동 사건에서 판결을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 넘게 미루며,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회찬은 "대법원 판결 지연의 폐해가 큰 5대 노동 사건"으로 ▲2010년 최저임금법 개정에 따라, 택시기사들이 법으로 정한 최저임금을 청구한 사건 ▲2008년 성남시 환경미화원이 휴일근로와 연장근로의 중복할증을 주장한 사건 ▲'노조 파괴' 유성기업 노동자들이 불법직장폐쇄 기간 동안 지급되지 않은 임금을 청구한 사건 ▲재능 학습지 교사들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를 청구한 사건 ▲금호타이어 불법파견 사건을 꼽았다.

노회찬은 "2016년 대법원의 민사본안사건 평균 처리기간은 4.4개월이었다"며, "이번에 선정한 사건들은 명백한 법적 근거가 있거나, 대법원의 판단이 다수 노동자의 권리보장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5개 사건 모두에서 한 번도 변론기일을 열지 않은 채, 판결을 미루고만 있다"고 지적했다.

노회찬은 "이같은 '노동 사건 모르쇠' 현상은, 노동권 문제를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색깔론의 문제로 보았던 박근혜 정부 적폐의 흔적"이라며 "대법원은 이제 구태에서 벗어나 신속하게 노동자의 권리 구제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닫는 글 : 노회찬, '노동자의 벗'으로 남다

2018년 7월 23일 노회찬이 떠난 직후 그를 '노동자의 벗'으로 호명하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몇 가지를 골라 소개하면 이렇다.  

진보정당 외길 30년…노회찬 '노동자의 벗'으로 남다. (한겨레, 2018.7.24.)
'노동자의 벗' 노회찬…늘 '우리'였던 정치인생 (CBS노컷뉴스, 2018.7.24.)
평생 '노동자 벗'이었던 노회찬 (YTN뉴스, 2018.7.24.)
노동자·약자의 벗…대한민국 정치의 큰 비극 (경남신문, 2018.7.24.)
'노동자·서민의 영원한 벗'…경남에 남은 노회찬 발자취 (연합뉴스, 2018.7.24.)
노동자의 벗, 노회찬 의원 잠들다 (금속노조, 금속노동자, 2018.7.27.)
노동자의 벗, 고 노회찬 국회의원 영결식 국회서 엄수 (민주노총, 노동과 세계, 2018.7.27.)
'노동자의 벗' 고 노회찬 의원 영면에 들다 (tbs뉴스, 2018.7.27.)
'노동자·소수자·약자의 벗' 故 노회찬 의원 오늘 영결식 (MBC 100초브리핑, 2018.7.27.)


노회찬을 정치인으로 뒤늦게 알게 된 사람들은, 노동운동가로서의 그의 모습이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정당 대표의원' 노회찬의 삶과 철학 그 기저에는 노동과 노동운동이 스며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절(메이데이) 범국민대회 (2010.5.1.). ⓒ 노회찬재단

 
"기숙사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으로 책을 보아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야간 일 끝내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에게 이 조그마한 책자가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위 글은 수배생활 중이던 1985년 최형기라는 가명으로 '인간해방·노동해방'의 신념 속에 '대중의 힘에 기반을 둔, 독재 타도의 혁명을 꿈꾼 노동운동가'이자 '용접공 노동자' 노회찬이 쓴 <노동자와 노동절>(석탑)의 머리말 마지막 단락이다. 노회찬은 이 책을 힘든 노동의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 온 노동자들이 읽기를 바랐다. 노회찬은 책에서 메이데이의 참뜻을 이렇게 요약했다. 
 
"고난에 찬 노동운동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선배 노동자들의 위대한 희생을 추모하는 날"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생활상태의 개선을 위한 대열에 앞장 설 것을 굳게 다짐하고 그 확고한 신념을 표명하는 날"
"노동운동에 대한 일체의 탄압, 그 음모와 폭력의 장본인들에게 정기적으로 경고하는 날"
"전 세계 노동자는 같은 처지에 있는 한 형제이며 굳게 단결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날, 그리고 그 단결을 과시하는 날"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의 조세희 작가가 말한 세상의 수많은 '바보'들, 그리고 목소리를 빼앗긴 '투명인간'들과 함께 어깨동무하면서 노회찬이 이루고자 한 꿈이었다. 2016년 3월 11일 20대 총선 창원 선거운동본부 사무실 개소식에서 노회찬은 이렇게 밝혔다.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선진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꿈입니다. 노동이 존중될 때 선진복지국가는 그만큼 빨리 실현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과 함께 노동 존중 사회를 만드는데 이 몸 바치겠습니다."

노동과 복지, '노동존중사회'와 '선진복지국가'의 관계에 대해, '노유진의 정치카페'(2014.7.4.)에서 노회찬이 나눈 말 가운데 몇 개를 추리면 이렇다. 
 

노회찬. 사진은 2014년 7월 11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당시 모습. ⓒ 권우성

 
"복지의 부담을 분산시키는 것도 필요하죠. 바로 재정 문제인데요. … 재원을 확보하려면 세금을 확 걷어야죠. 물론 저는 세금을 걷는 걸 찬성하지만, 세금을 더 걷어서 복지를 확대하는 게 유일한 해법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복지는 일종의 2차 분배잖아요. 그러면 1차 분배에서 개선할 점은 개선해서 복지 수요 자체를 줄여야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최저임금을 올리는 건 1차 분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해고해서 실업자로 만든 다음에, 실업수당을 2배로 주겠다, 기초연금을 올리겠다고 하는 조치는 1차 분배의 잘못을 2차 분배로 메꾸는 거죠. 이렇게 되면 2차 분배의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지속 가능한 복지를 위해서도 1차 분배에 대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제일 나쁜 의사는 병 주고 약 주는 의사예요. 병 자체를 줄인 후에 필요한 환자들에게 약을 공짜로 주든 2배로 주든 해야죠. 한 손으로는 고용 정책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복지를 늘리겠다고 하니까 이 약속은 지켜질 수 없어요."

"앞으로 여야 어느 당이든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할 거예요. 그래서 어느 게 진짜고 가짜인지 정확하게 감별해야 한다는 거죠. 일단 더 많은 복지만 약속하면 가짜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좋은 노동, 제대로 된 고용과 함께 복지를 이야기할 때 건강한 해법이 나올 수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마음에 담고 살았던 노회찬, 그의 빈자리"
 

노회찬. 이 사진은 '노회찬의 약속' 공약집에 쓰였다. ⓒ 노회찬재단

 
7월 23일 그날, 노회찬이 홀연히 떠나자 민주노총과 한국비정규노동센터와 한국노총은 추모 성명을 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황망한 죽음을 애도합니다 :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투신사망이라는 비보가 황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항상 노동자들과 함께 해온 진보정치의 대표 정치인이었기에 비통한 마음 더욱 금할 수 없습니다.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바라며 유가족에게 삼가 애도와 조의를 표합니다.

누구보다도 먼저 험난한 진보·민중정치의 길에 나섰습니다. 언제나 민주노총과 함께 해왔고 불모의 땅에 노동정치·민중정치, 진보정치의 씨를 뿌리고 싹을 틔웠습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보수양당이 독점해온 대한민국을 바꿔보겠다는 진보정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승리와 진보정치 대통합을 위해 한 발자국 더 가야할 때 황망히 먼저 가신 것이 너무나 애통하고 원통합니다.

자타가 공인한 진보정치의 입이었습니다. 자본에겐 단호했지만 노동자, 민중들에겐 부드러웠습니다. 삼성 X파일을 폭로하며 의원직을 걸고 권력 위의 권력 삼성과의 전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과 같은 진보정치 대표 정책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었고, 진보정치가 수구보수정치와 어떻게 다른지 몸소 실천했습니다. 진보정치의 부침이 있어왔지만 고인이 걸어왔던 족적과 만들어 온 공은 허물을 덮고도 남는 대중적 진보정치인이었습니다.

다시 노동정치, 진보정치를 하나로 모아야 할 때 앞자리에서 큰 역할을 하셔야 하는데 이렇게 먼저 가시니 남은 자의 몫이 더욱 아득합니다. 민주노총은 고인이 생전에 함께 해왔고 일구고자했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바로 세우고, 진보정치의 승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고인의 영전에 드립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애통한 죽음에 다시 한 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평안히 영면하소서."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2018.7.23)

"노 전 원내대표가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었던 말씀은 'KTX 여승무원들 문제가 해결되고, 삼성 백혈병 노동자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 보이는 것에 대해 정말 반갑다'라고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진보정치의 토대를 쌓고 싹을 틔우는 과정에 너무도 안타깝고 정말 참담한 심정입니다. 마지막까지 노동자를 마음에 담고 살았던 노회찬 의원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민주노총도 진보정치의 꽃을 활짝 피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김명환(민주노총 위원장) (2018.7.24.)  

"[추모] 고 노회찬 의원이 남긴 소중한 뜻 이어가겠습니다 : 비통하고 황망합니다. 노회찬 동지. 그는 노동자였습니다. 무엇보다 노동운동가였습니다. 척박한 한국정치의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불굴의 신념과 의지로 진보정치를 꽃피운 주역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생전 줄곧 비정규 문제 개선과 해결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젊은 날부터 삶을 마감하는 때까지도 그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사회,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 진전과 실현을 위해 힘쏟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서면 발언도 KTX 승무원 복직과 삼성백혈병 조정합의 관련 내용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평생 삶이 보여주었던 뜻을 좇아 산 자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삼가 깊이 머리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한국비정규노동센터(2018.7.24.) 

"노동자의 벗, 노회찬 의원을 기억하겠습니다 : 노회찬 그 이름이 진보정치였습니다. 그리고 노동정치였습니다. 한국노총은 늘 기억하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이 사랑한 정치인, 노회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한국노총(2018.7.25.)


7월 26일 추모문화제에서 KTX 해고승무원 김승하는 마음을 담은 추모사를 노회찬에게 전했다. 

"안녕하십니까 KTX 해고승무원 김승하입니다. … KTX 승무원의 해고 투쟁, 4526일, 그 시작과 끝에 함께 해주신 저희들에겐 항상 따뜻한 삼촌 같으셨던 분, 노회찬 의원님은 늘 소수 약자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노회찬 의원님은 강자와의 싸움에 망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머와 품위도 잃지 않으셨습니다. 님은 우리를 지키려고 평생 살아오셨으나, 우리는 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하고 죄송합니다. 이제 의원님이 남기신 뜻, 세상의 모든 약자들이 모여 펼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님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 항상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모습 기억하고, 그 뜻 이어가겠습니다. 대신 그곳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사랑합니다."


노회찬이 마석 모란공원에 영면의 안식처를 찾은 지 사흘째 되던 2018년 7월 30일 민주노총 트위터에는 '사법농단 특별법 제정 공청회' 포스터와 함께 글이 올라왔다. 

"오늘 2시 국회에서 사법농단 특별법 제정 공청회가 있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입니다. 정리해고, 통상임금, KTX승무원 관련 판결 등 노동자들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사법농단으로 고통받아 왔습니다. 민주노총은 시국회의의 일원으로 참여합니다."

"사실 오늘 공청회는 노회찬 의원실과 함께 준비하던 행사입니다. 노회찬 의원의 빈자리가 큽니다. 항상 약자와 피해자의 편에 섰던 사람. 노동자의 벗이었던 고인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던" 노회찬... 그의 빈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노회찬의 약속' 공약집에 실린 빈 의자의 모습. ⓒ 노회찬재단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다음 기사인 '닫는 글'은 7월 13일(화)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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