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0 11:43최종 업데이트 21.07.1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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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 년 쉬고 1978년돈가 면사무소 앞에 35만 원 주고 전세방을 얻어 두번 째 장사를 하는데 냉장고가 없었어요. 친정 언니가 돈을 보태줘 그 놈 들여놓고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가게가 많이 생겼어요. 저 우에 연쇄점도 생기고..."

박혜진 작가는 전라남도 일대 백여 곳의 구멍가게를 답사하고 이를 <구멍가게 이야기>란 책으로 펴냈다. 그는 "장성의 달성상회 아주머니가 47년 동안 구멍가게를 하며 지닌 사연이 많고 꿋꿋하게 버텨온 시간을 자랑스러워 한다"며 내게 만나보길 권했다. 그렇게 지난 6월 말 만난 달성상회 아주머니는 평생 간직했던 사연들을 한 가닥씩 풀어놓았다.

47년 동안 구멍가게 지킨 아주머니
   

전남 달성상회 주인 아주머니 ⓒ 민병래



"손님들이 막 연쇄점으로 몰려가는 거야, 그 사람들은 돈 있으니까 가게가 부흥해가지고 막 넓어지는 거야. 그래가꼬 우리는 죽은 거야. 왜냐믄 돈이 없으니까 물건을 못 해노니까. 우리는 애기도 키워야 되고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가슴이 콱 막히대."


당시 연쇄점은 농협이 추진한 새로운 형태의 판매점이었는데 주로 면사무소 소재지에 점포를 열었다. 오늘날 대형마트가 골목시장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연쇄점은 시골 구멍가게에게 그런 존재였다.

"근데 군청의 산림과장이 호떡 장사를 해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광주 가서 호떡 하는 걸 배워왔는데 남편이 손이 안 좋아서 내가 나섰어요."

얘기를 나누는 사이 창밖에는 저녁노을이 멀리 백양사를 에돌아 그물을 펼치듯 다가왔다. 앞뜰에 있는 제비꽃과 채송화는 붉은 나비를 맞이하는 듯 노을빛에 몸을 맡겼다.

"그거를 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드라고. 기구, 도구 같은 거도 다 샀어. 재료가 열 가지가 들어가고 반죽할 때도 힘들어. 뜨끈뜨끈한 아랫목에다 밤새 담요를 덮어놓고 아침에 열어보면 들통에 밀가루가 이르케 올라와. 설탕하고 땅콩 너가꼬 똥그란 철판 같은 거로 눌러서 뒤집어 갖고 구워내믄 손에 기름이 쩔꺽쩔꺽 묻어나.

고놈 하다가 손님이 오믄 손을 닦아야 돼. 기름 묻은 손으로 장사할 수 없으니까. 우리 큰 딸 팔 개월 때 그 놈 업고 장사를 한 거야. 근데 호떡 장사를 권했던 과장님이 겁나게 맛있다고 칭찬을 해. 그래가꼬 면사무소랑 농협 직원들 점심 때 와서 먹고 가는 거야.

그 장사를 거진 일 년 간 했을 거야. 그때 호떡 한 개에 오십 원씩 할 때야. 그랬더니 호떡 하는 데가 여기 저기서 생겨나는 거야. 누가 잘 된다믄 사람들이 그걸 못 봉가봐. 우리 집 아저씨가 재료값도 안 되니 집어쳐라 그러드라고. 그서 그만 뒀어요."


영감이 장성군 토박이인데 땅 한 마지기만 있었어도 장사 안 했을 거라며 아주머니는 아저씨를 살짝 흘겨보더니 얘기를 이어갔다.

"그때 매일우유 대리점 하는 사장님이 파고당빵 대리점을 같이 했어. 우리 아저씨가 워낙 착실하니까 그 사장님이 나와서 분점일을 해라 한 거야. 그래서 영감이 짐 자전거로 배달 다니다가 얼음판에 넘어져가꼬 엉덩이뼈가 뒤트리고 손도 다치고 그랬어. 나도 매일우유에서 준 온 입고 요구르트 하고 우유 집집마다 넣어주고 그거 하고 들어와서 또 가게 문 열고. 그래가꼬 요 발톱이 다 빠져서 내가 여름에도 어디 가믄 양말을 못 벗어요."
 

아주머니의 지난 장사 얘기는 그렇게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두 분이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해마다 10만 원씩 세를 올려주기도 벅찬 세월이었다. 결국 그 집에서 9년 5개월을 살다가 방을 뺐다. 그리고 면사무소에서 한참 떨어진 달성마을에 500만 원을 주고 오막살이 집을 얻어 장사를 계속했다.

그런데 비포장길 한뎃집이어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살았다. 또 함석지붕이라 여름에 덥고 겨울엔 추웠다. 7년인가 버티고 살았을 무렵 집터로 도로가 나는 바람에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 군에서 철거 보상금으로 700만 원을 줬는데 그 돈으로는 집은커녕 땅을 사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현재 집터 주인이 68평을 싸게 내줘 1995년도에 집을 짓고 달성상회라는 간판을 올렸다.
 

2012년 1월 달성상회 외부모습 블럭으로 1995년경 지었다. ⓒ 박혜진제공



  

2012년 1월 달성상회 내부모습 1995년 지어졌다. ⓒ 박혜진제공



시골청년의 순정에 마음을 준 서울아가씨

백양사에서 느리게 다가왔던 노을은 저녁이 깊어지자 창가에 걸터앉았다. 어둠은 때가 되었다는 듯 사부작거렸다. 문득 아주머니는 서울에서 어떻게 장성까지 내려와 구멍가게 일을 하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장성에서 양장점을 하는 아주머니 부탁으로 일을 도우러 왔는데 이틀째가 되었을래나 우리 아저씨가 짐바리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어요. 그때 우리 아저씨가 대뜸 '저기 흑다방을 가자'고 하더라구. 뭔가 이상해서 얘기를 나눠보려고 다방에 앉았는데 '나를 사귀면 어떻겠느냐'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양장점 아주머니와 우리 아저씨가 사돈 집안이어서 소개해 줄 마음이었더라구요. 안 되겠다 싶어 서울에 올라가려고 다음 날 저녁에 백양사역으로 나갔는데 구판장 하던 우리 남편이 마침 담배를 타러 나왔다가 딱 마주친 거야. 그러더니 역 앞에 눌러앉아 못 가게 막아, 참 기가 막혀서...

다음 날 몰래 완행열차를 타고 올라갔는데 우리 아저씨 편지가 구구절절로 왔어요. 한 이십 통인가 편지가 오가다가 어느 날 우리 영감이 올라온 거예요. 우리 집 앞 여인숙에 방을 잡더니, 허락받을 때까지 안 가겠다는 거야. 나도 애가 타더라구요. 그서 내가 한 사람 살리는 셈 치고, 내 맘 하나 희생하면 된다 허고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으니 김밥을 싸서 날라다 주고. 그러다 여까지 내려와서 이르케 산 거예요."
 
 

달성상회 내외분 47년간 서로 의지하며 장사를 했다. ⓒ 민병래


 시골청년의 순정과 결기로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서울 애기씨의 시골 생활은 험난했다. 아주머니가 시골 생활은 처음이니, 큰 동서가 바깥에서 농삿일을 챙겼다. 결국 집안 살림은 자연스레 아주머니의 몫. 겨울에는 찬물로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했다. 끼니 때는 장작불 피워 밥 짓고 급기야 백 포기가 훨씬 넘는 김장을 하다가 유산까지 하고 말았다.

"그래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친정으로 올라가겠다 했더니 우리 영감이 궁동마을에 새마을가게를 하나 얻어주더라고. 시골에서는 점방이라고 하는데 막걸리도 팔고 그랬어. 막걸리를 주전자에 가득 채워 줘야 되는데 나는 쪼끔 살랑살랑하게 줬어. 그니까 서울 큰 애기가 인심이 야박하다는 둥 말이 이르케 퍼진 거야. 그래서 손님들 오시믄 오셨냐 가셨냐, 뭣을 드릴까 그라고 친절허니 팔았어요. 그래도 서울 사람이라 접촉이 안 되는 거예요. 하지도 않은 말이 번지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첫 장사를 접고 말았어요."

아주머니의 얘기에 푹 빠져있는 틈에 여우비가 다녀갔는지 물기 먹은 채송화 냄새와 소나무 향이 그윽하게 방안을 감쌌다. 귀를 쫑긋 세웠던 노을은 밤이 깊어지자  자취를 감췄고 집 마당에는 밤바람이 어슬렁거렸다.

"1995년인가 오막살이 집에서 이사와 여기에 블록으로 지었던 가게집이 츠음엔 깔끔했어요. 그런데 모 심고 와서는 장화 신고 흙발로 그냥 들어오는 거예요. 그걸 나무라면 싫다 하고 먹다 그냥 가고. 비우 맞추기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이놈으 장사를 내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되고 오직하믄 여기다 장판을 깔아놨겠어요. 흙 떨고 들어오라고. 근데 그것이 석 달 열흘이 안 가요. 그서 컨테이너박스 쬐끄만 거 하나 갖다 놓고 따로 해보까 생각도 했어요. 안채는 그런대로 애기(기숙사에 있는 고등학생 두 딸)들이 오믄 좀 쉬게 깔끔하게 해놓고 살고 싶었어요." 

달성상회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아저씨는 옆에서 고개만 끄덕이고 있다. "원래 저렇게 말이 없어 재미가 없다"라고 아주머니는 타박하며 몇 모금 물을 마셨다.

"여기가 달성이 유명한 데예요. 우리 첨에 올 때 텃새 부리고. 외상 먹고 외상값도 안 주고. 그래가꼬 손님들하고 같이 싸우는 거야. 손님들이 소주병 깨고 그러믄 소리 지르고 같이 쌈도 하고. 아구발이 세야겠드라구요. 당신 또 이러면 가만 안 있는다, 나도 내 뒤에 사람 있다, 내가 여기 와서 장사하니까 사람 우습게 보지, 나 요런 장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이래 가면서 했어요. 우리 아저씨도 멱살 잡고 업치락 뒤치락하고."

철거보상비 700만원을 받아 1995년도에 새로 지은 가겟방에서 겪은 이야기를 할 때는 아주머니 표정에서 어떤 비장감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거쳐온 아주머니의 마음살이는 어땠을까?.

"근데 여기 들어와서 친구도 없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놈으 거 열어 제끼고 있어야 되지, 영감은 말이 없지, 우리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오래됐지만 여기 와 살면서 친정어머니 아버지한테 한번 못 갔어요. 내가 뭣하게 진짜 이른 데로 시집 와가꼬 불효자식이 되었는지 그게 항시 걸려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365일 가게를 열어야 하는 처지, 두 딸 키우며 기껏 놀러간 게 가까운 남창계곡이나 백양사였고 친정에도 한 번 못 가 본 세월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길을 쏘다니다가도 가게로 돌아올 때는 목구멍에 머리카락이 스멀스멀 기어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하루 두 시간을 자기도 힘든 날이 계속되었고 위에 좋다는 양배추즙을 달고 살았다. 그 어려운 세월을 아주머니는 아저씨와 성당에 다니며 우리 애기들 키워야 하니 저 좀 살려주라고 기도하면서 버텨왔다.   
 

2012년 6월의 모습 지금은 담배가게만 하고 있다. ⓒ 민병래

 

2012년 06 두 딸이 새로 지어준 집 새롭게 집을 짓고는 진열대와 매장은 없애고 담배장사만 한다. ⓒ 박혜진제공



그새 깊어진 밤기운은 집안을 감싸고 마당에 내려앉은 별빛 몇 줄기가 아주머니가 고이 가꾸는 골드베리, 패추리아와 소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담배가게만 하는 이 집은 어떻게 새로 지었을까?

"우리 애기들이 잘 컸어요. 조기 오막살이 살 때 방에 비가 샜어요. 그래서 그릇 갖다 받히고 부엌에 물 떨어지믄 부엌에도 또 다라이 하나 갖다 받혀놓고. 우리 큰 애기 유치원 다녔을 때야. 엄마 왜 비 다 새는 집으로 왔냐고 그러는 거야. 저녁에 양치하고 세수시키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추우니 또 투정하고 그렇게 키웠어요. 그래도 대학교도 잘 가고, 등록금 모자라 파고당빵 보증금 빼서 줬는데 장학금도 받고 이제는 돈도 잘 벌어요. 둘이서 쑥덕쑥덕 하더니 2012년에 새 집을 여기다 지어준거야, 냉장고하고 소파도 들여주고."  

세월에, 공간에 스며든다는 것
 

달성상회 주인장 내외 두 분은 47년 동안 구멍가게를 하며 서로를 의지했다. ⓒ 민병래



오랜 얘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아주머니는 없는 반찬이지만 김치해서 저녁을 먹고가라며 붙잡는다. 처음 시집 왔을 때는 전라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몸이 홀쭉해졌는데 지금은 남도 김치 선수가 되셨다나.

아저씨가 특히 아주머니의 만두라면 입이 떡 벌어지는데 그 비결이 만두 속으로 갈아 넣은 이 김치에 있다고 자랑한다. 딸들은 호떡 장수할 때 익힌 반죽 솜씨로 빚어주는 도너츠, 서리태 갈아서 설탕 넣은 콩물 덕에 미인되었다고 따님들은 인정하지 않는 주장을 했다. 

박서영 시인은 '업어준다는 것'이란 시에서 '업어주는'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아주머니와 구멍가게는 시인의 말대로 "등을 내어주고 업어주며 서로의 몸에 스며들어 숨결을 느끼고 심장의 고동을 들은" 오랜 친구였다.

2012년 새 집을 지을 무렵, 동네에는 이제 몇 가구 남지도 않고 노인들뿐이어서 매장(?)이 필요 없어졌다. 하지만 아저씨, 아주머니는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담배가게는 유지할 셈이다. 평생의 벗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도 들려줄 얘기가 많다는 두 분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하는데 허기질 때 먹으라며 아주머니는 찐 감자를 내어준다. 마당에서 꽃들과 수작하던 별빛이 자동차 시동소리에 놀라 외로이 매달린 담배표지판 주변을 감싼다. 마치 마지막으로 남은 달성상회의 상징을 지키는 수호천사라도 되는 듯.

<못다한 이야기>

- 이 글을 쓰는 데 박혜진 작가가 2012년에 두 차례에 걸쳐서 인터뷰한 녹취가 큰 도움이 되었다. A4 18매 분량의 글에는 아주머니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아울러 달성상회 주인장의 큰 따님은 여러 차례에 걸친 이메일 질문에 성실하게 답해주고 초안을 꼼꼼히 검토해줬다. 두 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 달성상회를 비롯, 전라남도 구멍가게 주인장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구멍가게 이야기>(책과 함께)에 풍성하게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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