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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힐링'이라는 표현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귀에 박히도록 들어서일까. 무엇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관건이지만 물질적 풍요를 느끼고 사는 삶에도 만족이란 것이 없으니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사람들은 '멍~ 때리는 시간'을 힐링의 주 포인트로 삼는다. 바쁜 일상에서 그만큼 온 신경을 혹사당하면서 사는 일이 사람들의 몫이 됐다. 온통 걱정거리만 늘어선 지긋지긋한 장마에 지친 심신을 달래줄 '멍~ 때리기 좋은 곳' 어디 없을까, 모든 시름을 한순간이라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생일도(전남 완도군 생일면)에 가면 그 바람은 현실이 된다.

생일도에서는 누구든 마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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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마가 올해는 유독 늦게 시작한 편이다. 1961년 기상관측 이래 6월이 아닌 7월에 시작된 장마는 1982년 7월 이후, 39년 만이라고 한다. 보름 이상 늦어진 장마 때문에 여름 성수기가 걱정이다. 장마 기간을 평균 31.5일이라고 계산하면 올해는 8월 초에 장마가 끝날 전망이라고.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휴가철, 이 시기 대부분 바다를 찾는 게 사람들의 로망이다. 완도의 여름은 섬 여행이 제격인데, 섬을 다녀온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머물러 있기에 섬은 늘 그리움을 선사하는 매력을 지녔다. 시원한 갯바람을 맞으며 가슴이 탁 트이는 전망 좋은 곳을 찾는다면 올해 여름은 생일도에 가보기를 권장한다.

생일도는 2016년 가고 싶은 섬 베스트에 선정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건너섬에서 보이는 투명산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해 언론보도의 효과를 봤다. 신기하기만 했던 상상력으로 내심 가고 싶은 곳에 목록을 정했는데, 이제야 생일도를 찾았다.

백운산 길을 오르는 중에 사슴도 만났다. 하얀 얼룩이 선명한 사슴은 방문객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한참 눈을 마주치더니 숲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암자로 가는 길목에는 아침 안개가 밀려온다. 섬은 시야에 가려 숲은 새소리만 들릴 뿐이다. 백운산 중턱에 자리한 학서암(鶴棲庵). 가히 신선이 거처할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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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은 상상 속 동물, 학은 주작이다. 도가사상으로 견주어볼 때 학과 용의 수레를 타고 구름 위를 노니는 신선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구석구석 섬을 탐색하며 생일도의 관광코스를 개발한 기획력에 감탄했다.

섬에는 생일도에 어울리는 것들이 많다. 12지신 석상으로 꾸며낸 작은 쉼터마다 적힌 탄생일에 관한 깨알 같은 정보를 읽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백운산 아래로 보이는 노송의 자태가 멋지다. 선창에 도착해서 보았던 거대한 케이크에서 흘러나오던 생일송(生日頌)과 중첩되는 생일송(生日松)이다. 섬 곳곳을 걷는 동안 다시 태어나 새날을 맞이한 듯한 생각에 빠진다. 생일도에 가면 그래서 마음이 편하다.

멍~ 때리기 좋은 곳, 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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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겅, 갯돌 해변, 구실잣밤나무 군락지 3곳을 '멍~ 때리기 좋은 곳'으로 선정했지만, 생일도는 섬 자체가 호젓이 걷기에 좋다. 시끌벅적 인파가 몰리는 곳보다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제격이다.

# 멍때리기좋은 장소 1순위는 너덜겅. 일몰 해변이 있는 생일도의 끄트머리다. 작년에 문을 연 리조트가 요즘 핫하다. 리조트 건물 뒤로 난 산길이 모두 너덜지대. 가장 흔한 바위 화강석, 화강암은 지구 내부의 마그마가 굳어서 형성된다고 한다.

화강석이나 변형된 화강편마암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지질학에서는 암석이 떨어져 쌓여있는 곳을 테일러스(talus)라고 하는데, 너덜겅은 우리나라에 많다. 그 중 대표적인 밀양 얼음골 너덜겅은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것으로 유명하다. 부산 금정산 너덜겅은 넓은 면적에 암석의 풍화와 침식과정 전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고, 원형 보존상태가 우수해 자연유산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너덜겅은 학술 가치도 있지만, 체계적인 연구나 보존대책이 아직 부족한 실정이어서 아쉬움이 남기도.

# 해안도로는 섬의 동서로 갈리는데, 용출마을 가는 곳에 구실잣밤나무 군락이 있다. 구실잣밤나무는 해를 넘겨 이듬해 가을에 익는다고 한다. 새끼손가락 첫 마디만 한 작은 열매는 껍질이 우툴두툴하고 끝이 셋으로 갈라진다. 열매껍질 안에는 도토리같이 생긴 길쭉한 씨앗이 들어 있다. 날로 먹어도 밤처럼 고소한 맛이 난다. 옛날 사람들은 열매를 주워 모아 저장해두었다가 흉년에 대비했다고. 옛 기록에는 가시율(可是栗, 加時栗)이란 이름이다. 적율(赤栗)이란 이름도 같이 쓰였는데, 아마도 밤나무의 한 종류로 생각한 듯. 우리가 부르는 구실잣밤나무란 이름은 '가시 밤나무'가 변형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완도 상왕산에는 붉가시나무가 있다. 가시 때문에 붙은 이름이 아니라 흉년에 열매를 모아서 묵을 만들어 배고픔을 '가시게 했다'하여 가시나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살펴보면, 구실잣밤나무 이름의 유래가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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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바다에 자갈 구르는 소리가 선명하다. 용출마을 갯돌밭이다. 밤바다의 느낌이 살아있다. 마을 앞에 있어서 은은한 가로등 불빛에 운치를 더하고 안전하다. 주민들 생활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밤바다를 느껴 볼 만하다. 바다가 들려주는 해조음에 마음 적시며, 밤새워 바다 한가운데 떨어지는 별을 줍다가 동트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도 좋을 듯.

생일도에 찾아오려면

'1년 여행이 10년 공부와 같다'는 말은 공공연히 나오는 말이 아닐 터, 여행을 위해서 준비하는 것들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여행지에서는 다른 세계와 접하면서 새로운 것을 또 배운다. 인생은 여행이요,  끊임없는 공부인 셈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도 여행의 묘미, 그러면서 여행은 또 하나의 쉼이 된다.

생일도는 육지와 가깝기에 찾아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 갖출 것은 모두 있으니 빈 몸으로 찾아도 좋다. 오며 가며 세상의 모든 걱정거리일랑 훌훌 털어버리고 생일도를 찾을 일이다.

# 약산면 당목항에서 배를 탄다. 광주를 출발지로 보자면 승용차로 당목항까지 약 2시간 30분 걸린다. 나주~영암~강진 마량을 거쳐 연륙교를 건너 완도 고금도를 지나서 약산도로 진입하면 선착장에 도착한다. 철부선이 당목(약산)~서성(생일) 구간을 하루 8회 왕복한다. 당목항에서 배를 타면 20여 분 후 선착장에 웬만한 건물 크기만 한 거대한 생일 케이크가 보인다. 생일도다.

정지승/다큐사진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생일도, #완도, #섬, #정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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