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p.31)

<사람, 장소, 환대>에서 저자 김현경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사람'으로 인정받음으로 존재 가능하다. 타인의 인정을 통해 '사람'이 된 우리는 '사회' 안에서 자리를 갖는다.

사회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절대적 환대'를 전제로 한다. 어떤 이유도 묻지않는 환대, 태어나는 순간 '사람'으로 인정해주고 자리를 빼앗지 않는 절대적 환대는 '사람의 신성함'을 바탕으로 한다. 현대 사회는 이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모든 존재를 절대적으로 환대하고 있을까.

환대받지 못하는 존재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지은이)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지은이)
ⓒ 현대지성

관련사진보기


소설 <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 오수원 옮김, 현대지성)에는 과학 기술에 도취된 주인공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이 인간의 유골을 모아 회생시킨 인간 괴물이 등장한다. '광기 어린 열망'에 사로잡혀 '창조라는 목적' 하나만 바라보았던 프랑켄슈타인은 그 일의 결과나 의미는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피조물이 완성되자 흉측한 외모에 두려움과 혐오감이 앞서 그를 외면한다. 

버림받은 괴물은 정처없이 떠돌다 사람들에게 모습을 들켜 폭력을 당하고, 간신히 한 가족의 헛간에 숨어 지내게 된다. 거기서 가족의 모습을 훔쳐보며 인간의 고귀한 성품을 발견하고 언어와 지식을 배우며 자기 존재에 대해 질문하기도 한다. 추한 외모 때문에 외따로 숨어 지내야 하는 처지에 괴로워하며 관계에 대한 열망을 품기도 한다. 그는 선한 마음으로 가족들을 돕고 자신을 드러내지만 고귀한 그들조차 적대와 냉대로 그를 거부한다. 

자신을 만든 이에게 버림받고, 선의로 다가갔던 사람들에게도 거부당하면서 괴물은 인간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힌다. 지독한 절망과 고독으로 인한 불행이 자신을 악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가 자신과 같은 동반자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가족과 친구, 연인을 살해해 복수하고 프랑켄슈타인 또한 증오와 복수심에 불타올라 괴물을 뒤쫓다 죽음을 맞는다. 

익히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나면 '괴물'의 이야기에 새롭게 주목하게 된다. 소설에서 '괴물'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을 버리자 '그'는 집을 빠져나와 몸을 숨기고 인간 사회를 관찰한다. 눈을 떠 빛과 세상의 존재를 감지하고, 서서히 곁에 있는 존재의 특성을 알아가며 자아를 형성해간다. 이는 출생 후 아기가 자라 어린이가 되고 성인이 되는 과정을 축약해 놓은 듯하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디서 왔을까? 내 목적지는 어디일까?"(p.164)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도구 사용법을 배우며 언어를 익히는 '그'는 인간에 가깝다. 고독이라는 실존의 문제로 고통스러워하고 불행을 느끼는 그는 누구보다 인간답다. 타인에게 연민을 느끼고 유대와 사랑을 갈망하며 사회 안에 속하고자 하는 욕구는 사람의 본성을 닮았다.

하지만 추하다는 이유로 버림받고, 무자비한 냉대와 폭력을 경험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순수했던 이가 증오와 복수심에 찬 무시무시한 존재로 뒤바뀐다. 그는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 '사람'이 되길 갈망한 그에게 단 한 명의 환대도, 하나의 자리조차 내어주지 않은 사회가 그를 '괴물'로 만든 게 아닐까.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배경

복제 인간이나 인공 지능 등 과학 발전의 명암을 다룰 때 종종 거론되는 <프랑켄슈타인>은 놀랍게도 200년 전 메리 셸리라는 열 아홉살 소녀에 의해 쓰여졌다(집필 시작은 19세, 완성은 20세). 당시는 고전주의가 낭만주의로 대체되던 격동의 시기이면서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기술과 이론이 탄생하던 변혁기였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억압으로 여성들은 극심한 편견과 통제 속에 생활했다.

메리 셸리의 부모님은 급진적 정치 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책을 많이 읽었던 메리 셸리는 성장하면서 급진적 사회 의식을 지니게 되었고 전기, 화학, 해부학, 생리학 등 과학 지식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성장기는 불행했다.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의 죽음이 메리의 출산에 기인하면서 '어머니를 죽인 아이'라는 낙인이 따라다녔고 의붓 어머니에게 냉대와 홀대를 받았다.

아버지 고드윈은 유부남 퍼시 셸리와의 연애를 반대했고, 메리가 그와 함께 사랑의 도피를 떠나자 그녀와 절연했다. 메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지만 자유 연애를 옹호하는 연인 퍼시 셸리는 불성실과 무책임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소설 속 버림받은 '괴물'의 고통과 절망에는 저자 메리 셸리의 감정이 숨어 있다. 프랑켄슈타인에게 버림받은 괴물은, 부모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버려지는 처절한 고통을 경험한 저자의 분신같다.

거기에는 가부장제 속에 억압당하고 버림받는 여성들,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강요당하는 사회 속 약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 소설에는 그러한 고통에 맞서기 위한 메리 자신의 노력과 또 다른 선택이 담겨 있다. 

희생과 연대, 절대적 환대라는 다른 선택

프랑켄슈타인과 '괴물'의 이야기 밖에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북극에 대한 호기심으로 항해를 떠나는 월턴 선장의 이야기다. 월턴 선장과 선원들이 탄 배가 얼음산에 둘러싸여 꼼짝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월턴은 프랑켄슈타인을 만난다. 

광기어린 열망으로 인간의 회생에 몰두했던 프랑켄슈타인처럼 월턴 또한 북극에 대한 맹목적 열망으로 항해를 고집했고 선원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의 회한에 잠긴 고백을 들은 월턴은 배를 돌리기로 한다. 개인의 욕망을 버리고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희생과 연대를 선택한다. 이는 '괴물'처럼 버려졌지만 증오와 복수가 아닌, 다른 선택을 하겠다는 저자 메리 셸리의 다짐처럼 다가온다. 

현대 사회에 만연한 '혐오'의 감정은 나와 다른 사람, 특히 보호받아야할 약자를 구분짓고 적대시한다. 단지 다름과 추함을 이유로 누군가를 혐오하고 사회 밖으로 내몰기도 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 어린 아이들, 환대받지 못하고 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학대로 죽음에 이르는 일을 우리는 수시로 목격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처럼, 사회에서 내쫓기고 버려진 어떤 이들은 저항의 몸짓조차 그려내지 못하고 사그라들기도 한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붙이는 이 사회가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인간은 누구나 사고나 질병에 의해, 나이듦으로,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거나 약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누구도 혐오와 차별, 정상과 비정상의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우리 모두를 끌어안아주는 것은 희생과 연대, 그것을 넘어서는 '절대적 환대'를 원칙으로 하는 사회일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괴물'을 환대해 주었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책장은 덮였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프랑켄슈타인 - 현대판 프로메테우스

메리 셸리 (지은이), 오수원 (옮긴이), 현대지성(2021)


태그:#프랑켄슈타인, #절대적환대, #환대하는사회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은 목소리로 소소한 이야기를 합니다. 삶은 작고 작은 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