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치사회 전문서점 정치발전소에서 6월부터 10월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동네정치를 고민하는 수강생들과 함께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를 실시합니다. 동네정치의 중요성, 동네 특징과 자치구 예산 바로보기, 민원 갈등 워크숍 등을 진행할 예정이며 필자는 행사의 모더레이터(사회·조율)로 참여합니다. 정치가 삶을 바꾼다고 믿는 또 다른 동료들을 위해, 유의미한 강연을 기사로 잘 전달해보겠습니다.[기자말]
숙제를 좋아하는 학생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지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교육 1강이 끝나기가 무섭게 숙제를 내주고 말았다(관련 기사: 너두? 나두! 야 너두 동네공약 만들 수 있어 http://omn.kr/1u8wz ).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학생이었는데, 선 자리가 바뀌면 보이는 풍경도 바뀌는 걸까. '과정 진행을 위해 사전과제가 꼭 필요하다'는 논리는 적어도 프로그램 운영진 입장에서 몹시 타당한 것이었다, '수강생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극히 선생님스러운 합리화는 덤이었고 말이다.
  
서울 삼성동-대치동에 '공약 돋보기'를 대다

그리하여 안내한 첫 과제는 '우리동네 기초조사'. 참여 수강생들은 각기 서울의 기초의원 선거구 중 하나를 정해서 이곳의 인구, 역대 투표결과, 지역 정치인 등의 정보를 수집해 오기로 했다. 서울의 25개 기초자치단체에서 선거구 하나씩을 골라 넣고 추첨한 결과, 삼성1동 삼성2동 대치2동이 속한 강남구 '자' 선거구가 뽑혔다.

코엑스 빌딩과 봉은사와 강남구청, 그 유명한 은마아파트가 있는 동네는 어떤 풍경일지 2주간 각자 알아오기로 했다.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총8회). 2회차 교육은 거리두기 상향으로 인해 온라인에서 진행됐다.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총8회). 2회차 교육은 거리두기 상향으로 인해 온라인에서 진행됐다.
ⓒ 김대현

관련사진보기

   
두 번째 모임이 열리기 하루 전, 정부는 수도권 4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을 발표했다. 앞서 서점 정치발전소에서 한 번이라도 얼굴을 마주했던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진행장소를 온라인 회의 플랫폼으로 옮겼다.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비대면 온라인 모임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지만, 낯선 동네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온라인에서 원활하게 진행될지는 살짝 걱정이었다. 그러는 새 회의가 시작됐다.

지역조사로 따져 본 강남 풍경... 노른자위 그 땅엔 이런 비밀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2개 조로 나뉘어 자료를 서로에게 소개하고 의견을 나누며 논의를 이어가다 보니 3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닌 서울 강남구 이야기가 이렇게나 즐거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지역 정치인들의 선거공보물 즉석 품평회를 열어 공보물의 장단점을 따지며 웃고 떠들다가도, 지역현안을 하나하나 들추며 이 동네 관심사가 무엇인가 살필 땐 모두가 마치 선거에 나선 예비후보가 된 것처럼 사뭇 진지한 모습이었다.

서울 삼성동 대치동을 다방면으로 분석해 온 수강생들의 설명을 종합해 보니 '강남 노른자위 땅'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지는 듯했다. 무엇보다도 현대차 비즈니스센터(GBC) 개발, 영동대로 지하화, 아파트 재건축과 같은 키워드가 눈에 띄었다. 수강생들의 분석은 그랬다. 이 동네는 소위 '개발 호재'라 불리는, 부동산 가치를 단숨에 띄울 토건사업에 대한 기대가 몹시 큰 곳으로 보였다.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프로그램에서 추첨한 결과 은마아파트가 있는 강남구 '자' 선거구가 뽑혔다. 수강생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니 이곳엔 재건축 등 개발 호재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복지나 교육인프라 개선 등 논의는 찾기 어려웠다. 사진은 2018년 5월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모습.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프로그램에서 추첨한 결과 은마아파트가 있는 강남구 "자" 선거구가 뽑혔다. 수강생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니 이곳엔 재건축 등 개발 호재에 대한 기대는 컸지만, 복지나 교육인프라 개선 등 논의는 찾기 어려웠다. 사진은 2018년 5월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아쉬운 점도 있었다. 복지 확충이나 교육인프라 개선과 같은 논의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치동 학원가를 품은 이곳은, 민간시장에 의해 공급되는 교육서비스가 공공교육체계를 훌쩍 넘어서는 힘을 지녔음을 방증하는 것일까. 서울 강남구청에서 2004년부터 운영하는 '강남 인강'이, 과연 이 지역에서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2018년 6월 치른 지방선거에서 당시 강남구 후보자들이 낸 공약을 평가하는 시간도 가졌다. 도로의 특정 지점을 명시하며 교통난을 해소하겠다는, 매우 구체적인 공약을 낸 후보가 두루 호평받았다(바른미래당 이재민 후보, 현 국민의힘 강남구의회 구의원). 내놓은 공약이 구체적·현실적이어서 실제로 유권자의 삶에 와닿을 뿐 아니라,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추상적인 언어로 일관하거나 지역과 무관한 정치쟁점만을 나열한 후보의 공약에는 다들 고개를 젓는 분위기였다(대한애국당 안병희 후보). 그 순간만큼은 '우리 동네에서 이런 공약은 만들지 않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와이파이를 타고 서울 각지에 공유되는 듯했다.

좋은 공약의 쓸모, 유권자인 내가 알아봐 줄게
  
수강생들의 첫 과제는 '우리동네 기초조사'와 과거 지방선거 후보자 공약평가. 왼쪽은 가장 호평을 받은 이재민 바른미래당 후보 공보물(현 국민의힘)과 가장 박한 평가를 받은 안병희 대한애국당 후보 공보물(오른쪽).
 수강생들의 첫 과제는 "우리동네 기초조사"와 과거 지방선거 후보자 공약평가. 왼쪽은 가장 호평을 받은 이재민 바른미래당 후보 공보물(현 국민의힘)과 가장 박한 평가를 받은 안병희 대한애국당 후보 공보물(오른쪽).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련사진보기

 
이날 지난 지방선거 득표율과 여러 공보물을 번갈아 살펴보고 나니 이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유권자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공약은, 선거의 결과와는 큰 상관이 없나?'

지역 시민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는 후보가 실제 선거에서도 좋은 성적표를 받아든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이 생각을 나눴더니, 다들 공약만들기 프로그램에서 '공약무용론'이 거론되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면서도 생각 자체엔 동감한다는 의견들이 이어졌다.

우리동네 공약을 만들어보겠다며 모인 수강생들마저 공약의 쓸모에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라면, 좋은 공약은 어떤 의미로 유권자 대다수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것일까.

흔히들 공약으로 겨루는 '정책선거'가 되어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막상 선거철이 되면 어떤가. 후보들 간 각종 폭로전과 네거티브로 언론은 도배되기 십상이고 유권자는 '그러면 그렇지'하며 외면하는 선거가 되고는 한다. 흑색 선전은 기가 살고 책임 있는 약속은 풀이 죽는 선거판에서, 공약은 너무나 쉽게 설 자리를 뺏긴다.

새삼 한 번 더 깨달았다. 동네 공약은 더 치열하게 고민되어야만 하고, 그 쓸모를 알아보는 유권자에게 선택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6월~10월까지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가 진행된다. 모집 포스터.
 6월~10월까지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가 진행된다. 모집 포스터.
ⓒ 정치발전소

관련사진보기

 
변변한 공약 하나 내놓지 않고 선택받기를 바라는, 자신이 속한 정당 힘에만 기대려는 뻔뻔한 공직후보자들을 우리 동네에서 걸러내려면 나부터 안목이 필요하다. 누가 이 동네를 속속들이 알고 시민들 마음을 헤아리는지 잘 판별해낼 수 있는 유권자의 눈 말이다.

4개월간 이번 공약만들기를 통해 연마하다 보면 나중엔 정말로 '좋은 공약 알아보기'도 보다 수월해질 것이라 믿는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좋은 공약 내놓는 사람이 없다면, 동료들이여. 그때야말로 지금 '공약만들기'에서 함께 갈고 닦으며 배운 궁극의 기술을 사용할 적기다!

태그:#공약만들기, #정치발전소, #지방선거, #삼성동, #대치동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당인 겸 청년마을활동가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럴 수 있지"와 "오히려 좋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