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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문제의 발언은 저녁 식사 시간에 일어났다.
  남편의 문제의 발언은 저녁 식사 시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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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저녁상을 다 차리고 식구들이 모여 앉았다. 차려진 음식을 보더니 남편이 입을 연다.

"와! 엄마가 매일 이렇게 잘 차려주니, 아빠가 살이 안 찔 수가 있겠어?"

남편은 내가 해 준 음식에 대해 '맛있다' '고맙다'는 칭찬을 자주 한다. 나도 안다. 해 준 음식 앞에 놓고 맛이 어떻다는 둥 타박하는 것보다는 백 배 낫다는 것을.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는 어쨌든 '착한 남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너희들도 나중에 엄마처럼 남편에게 잘해주는 좋은 아내가 돼서 예쁨 받고 살아. 알았지?"

경악했다. 그리고 내 머릿 속에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딸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줄도 모르고 '돈 많이 벌어주는 남편과 왜 이혼을 해? 호강에 겨워서...'라고 말하는 석균(신구 분)의 모습이 갑자기 스쳤다. 남편이 얼마나 보수적인지, 얼마나 트렌드를 모르는 답답한 사람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건 그 이상이었다. 황당한 나는 이내 남편에게 쏘아붙였다.

"딸래미들 앞에서 그게 할 소리야?"

연이어 큰 아이가 반박하듯 말한다.

"난 결혼해도 살림은 남편과 딱 절반으로 나눠서 할 거야."

아이의 표정에서 결연함이 느껴졌다. 남편은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는 얼굴이었다.

경험이 만든 생각은 항상 옳을까

얼마 전,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한 남성 배우의 7년 전 인터뷰가 갑자기 논란이 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향후 결혼해서 좋은 가장,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한 뒤 '아내가 직업이 없이 아이를 돌봤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성인이 되어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극단적으로는 범죄자가 될 수 있는데, 물론 자신도 좋은 아빠가 되려 노력하겠지만 아이 옆에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고. 또한 그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라고 그 생각의 이유를 밝혔다.

이 인터뷰는 '가부장적이다' '편부모 아이에 대한 편견이 드러난다'라는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그저 이상형을 말했을 뿐인데 너무들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반응도 있었다.

내가 이 배우의 인터뷰에서 가장 씁쓸했던 부분은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세상을 본다. 부모나 선생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 분위기 모든 것을 토대로 생각을 만들어간다. 그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교육'이 된다.

그런데 그건 1차적인 교육이다. 그는 엄마 없이도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는 경우도 많음을 그리고 나가서 일하는 사람이 엄마가 될 수도,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것이 아빠가 될 수도 있음을 혹은 조부모 등 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음을 간과했다. '좋은 아빠'의 역할 또한 그렇게 획일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걸 깨닫고 인지하는 데는 2차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경험에 의해 생긴 인생관도 다시 배워야할 일이 생긴다.
  경험에 의해 생긴 인생관도 다시 배워야할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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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배워야 한다

내가 시어머님에게 "애 아빠는 살림을 하나도 안 하려고 해요"라고 흉을 보면 어머님은 "그래서 네가 힘들지?"라며 나를 위로해주신다(남편이 '착한 사람'인 것처럼 우리 어머님도 '좋은 시어머니'다). 그러다가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이해하렴'이라는 뜻이다.

"나 젊었을 때는 아들을 부엌에 보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거든. 분위기가 그랬어. 그래서 아들들에게는 살림을 하나도 안 시키고 내가 다 했어. 그래야 하는 줄만 알았지. 그래서 쟤가 저렇게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니까."

어머님 말씀을 듣고 보면 남편이 딸들에게 한 말은 자신의 경험과 교육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줄 아는 것이다.

자, 여기서 한 가지. '어릴 때 교육받은 대로, 다 그런 줄 알고 하는 말과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해도 이해해줘야 하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나의 대답은 노(No)다.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고쳐주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경험으로 인해 잘못된 교육이 이뤄졌다면 좀 더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개념을 갖기 위한 또 다른 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이번 계기로 남편과 성역할에 대해 심도있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느껴온 가정 내 역할 불균형을 문제 삼으면 서로 불편할까봐, 정확히는 남편이 불편해 할까봐 망설였던 것이 후회됐다. 하지만 이런 토론이 더 늦으면 딸 둘 키우는 부모로서 그리고 함께 노후를 맞이할 동반자로서 앞으로도 계속 적지 않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거대 언어처럼 느껴지는 '페미니즘'이란 사실 '모든 것에 대한 차별을 금하는 생각'이라고 한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 벌어지는 가정 내 다양한 차별과 불균형 그것부터 인지하고 함께 대화하는 데서 그 시작을 찾아봐야겠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가정, #남편, #페미니즘, #성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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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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