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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다. 글 쓰고 싶어서 응시한 대학은 낙방했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시간도 죽일 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직도 내 머리에 선명한 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이다. 출근하고 카페 앞에 쌓인 눈도 아름다웠고 문을 열면 새어 나오는 커피 향과 함께 연하게 배어 있는 은은한 담배향도 좋았다. 카페 앞의 눈을 쓸고 청소를 간단히 하면 사장님은 나에게 일을 맡기고 위층 안가로 올라갔다. 그러면 나는 읽고 있던 책을 펼쳤고 커피 한잔과 함께 독서에 빠졌다. 오전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카페에는 그랜드 피아노와 작은 디제이박스가 있었는데 오래된 L.P판이 많았다. 알지 못하는 옛날 팝송을 자꾸만 듣다 보니 귀에 익는 노래들이 생겼다. 아직도 기억하는 카펜터스, 멜라니 사프카, 존 덴버 등 가슴을 조용하게 울리는 가수들의 목소리를 따라 부를 정도다.

그 때 로망이 생겼다. 제대하고 여유가 있으면 작은 카페를 열고 매일 출근해서 커피를 내리고 책을 보면서 오후에는 친구들, 이웃과 대화도 하고 삶을 유유자적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당시 손님이 많지 않아서 책도 많이 읽었고 내가 만든 어설픈 커피 향도 잊을 수 없다. 친구들이 찾아올 때면 파르페 만들어 내어놓고 괜한 설렘으로 대화했던 추억이 있는 카페였다.

카페를 꾸려가기 위해 필요한 것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의 전경이다.
▲ 달그락달그락 어느 일요일 풍경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의 전경이다.
ⓒ 정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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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한참이 흐르고 나서 지금은 민간 연구소와 함께 '달그락달그락'이라는 청소년자치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카페와 비슷한 형태의 공간이지만 10대에 꿈꾸었던 곳과는 다른 청소년 중심의 플랫폼을 지향하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이곳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정말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벌써 7년여가 되어가고 있다.

카페, 마을 공간, 커뮤니티 공간, 청소년·청년을 위한 작은 공간 등을 만들어 운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과의 소소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자연스럽게 모이는 사람들과 소소한 즐거움과 함께 지속가능한 밥벌이까지 생각한다. 가끔은 책이 가득한 북카페를 생각하는 분들도 만난다.

조용한 음악과 커피향, 좋은 사람들, 그들과 대화 나누면서 마을에 꿈꾸는 작을 일들을 함께 만들어 가면서 시간을 누리는 삶. 거기에 청소년, 청년들이 중심이 되는 카페형의 커뮤니티 공간을 생각하는 이들까지 다양했다.

이 분들의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일까?

일단은 내가 10대에 꿈꾸었던 막연한 카페 형태의 공간으로서의 생각은 내려놓는 게 좋다. 돈이나 사업이 우선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동체와 활동을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철학과 가치에 따른 명확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공간이 유지되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위해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일반 카페와 다른 어떠한 공공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2019년 달그락을 운영하는 청소년자치연구소의 자치기구 청소년 대표들과 청소년위원, 활동가 대표들이 또 다른 5년을 준비하는 전략 세미나를 꾸준히 진행했다.
▲ 달그락의 새로운 5년을 준비하는 청소년 비청소년 대표 공동체 세미나 2019년 달그락을 운영하는 청소년자치연구소의 자치기구 청소년 대표들과 청소년위원, 활동가 대표들이 또 다른 5년을 준비하는 전략 세미나를 꾸준히 진행했다.
ⓒ 김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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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야 할 공공성 있는 이유가 없으면 커피를 주업으로 하는 일반 상업적 카페와 다를 게 없다. 당연한 일이다. 사회를 위한 공공성이 없다면 '별다방'과 같은 마케팅 전략 수립해서 커피와 음료를 팔아야 한다. 이러한 카페가 아니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커뮤니티 공간을 원한다면 반드시 마을에 공간이 만들어져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커뮤니티 공간을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상당수는 이러한 이유 없이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만들기도 한다. 공간을 만들고 나서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그 이후에 공간에 채워야 할 일을 생각하는데 이는 사람 생각하지 않고 옷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 어떻게 늘리고 줄일지를 생각하는 것과 같다. 이유 없음이란 막연하게 '청소년, 청년의 공간이 없으니 카페 형태로 꾸며 놓으면 자발적으로 그들이 올 것 같다'는 이유까지도 포함된다.

시민들이 협동조합 형태로 출자하거나 후원금을 모아서 운영해야 할 합당한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카페 운영을 통해서 수익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혹은 그런 수익을 내면서 공익적 일을 할 수 있는 뛰어난 역량이 있다면 모를까 불가능에 가깝다. 이 바닥을 경험해 본바 일반 카페와 같은 영업 전략을 세우고 집중해도 쉽지 않은 시장이다.

운영을 시작한 사람들은 최소한 '왜?'라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특히 청소년이나 청년들의 공간을 꿈꾸면서 만들 때는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청소년이 돈이 없어서 카페에 못 간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동네에 몇천 원이면 맛있는 음료와 쾌적한 환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너무나 많다. 막연히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나름대로의 가치와 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그곳은 텅 비거나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그 누군가의 헌신으로만 지속될 뿐 언젠가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당연한 귀결이다.
 
▲ 카페 전경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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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막연히 꿈꾸는 카페를 생각해 보자. 조용한 음악이 나오고 달콤한 커피향이 있는 공간, 그 곳에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자주 드나들면서 대화하고 손님들이 오며 가면서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그러한 즐거운 일을 하면서 카페 사장으로 돈까지 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멋진가?

나의 청소년기에 꿈꾸었던 공간과 겹친다. 막연한 환상에 가깝다. 카페 운영 자체가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하루에 최소한 10시간 이상은 카페를 지켜야 하는데 그 자체가 중노동이다. 거기에 손님들이 올 수 있는 공간운영과 커피와 음료의 전문성과 마케팅 까지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린다.

오래전 10대의 마지막 그 해에 내가 꿈꾸었던 공간은 카페라기보다는 개방된 나만의 '사랑방'에 가깝다. 조용한 팝송과 커피향, 인문학 서적들이 있고 내가 편할 때 찾아오는 친구들과 이웃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이런 공간을 통해서 돈은 벌기는커녕 계속해서 손님들을 환대하고 대접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커뮤니티 공간은 바로 여기에 '방점'이 있다.

나는 철저히 내 개인적인 공간으로서의 관계를 꿈꾸었지만 커뮤니티는 말 그대로 공동체적 공간이고 참여하는 이들 모두에게 이로운 '공생'이 살아날 수 있는 있는 활동이 있어야 한다. 꾸준히 모이고 소통하고 작은 모임들이 더욱 분파되어 만들어지고 느슨하게 연결될 수 있는 플랫폼 공간으로서의 거점이 된다. 참여하는 이들이 그곳을 통한 어떤 긍정적인 일들이 계속될 때 공동체는 많아질 것이고 공간은 지속해서 확대될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카페 혹은 시민과 청소년, 청년들이 모이고 함께 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원한다면 그 이유를 명확히 하면서 네트워크와 참여에 집중할 일이다. 내가 10대에 꿈꾸었던 카페는 언젠가 할 것만 같다. 돈을 벌거나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는 일 없이 이웃과 친구들에게 무조건 나누면서 함께 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아직도 눈 내리던 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서 엘피판을 올리고 커피를 마시며 앙드레 말로의 <인간조건>이라는 책을 꺼내들었던 게 나의 뇌에 각인되어 있다. 당시 읽었던 많은 책의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 나지만 카페의 은은한 조명과 내음과 함께 꾸준히 찾아 왔던 내 사랑하는 친구들의 환한 모습까지 가슴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날이 너무 따뜻한 여름이다. 그때 그 겨울이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청소년자치연구소 및 달그락달그락 소개 영상 https://youtu.be/E5T9OWb3xVs


태그:#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 #커뮤니티 공간, #카페, #청소년 플랫폼, #청년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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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입니다. #청소년자치공간 달그락달그락 #길위의청년학교 #들꽃청소년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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