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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식을 만드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졌다.
 비건식을 만드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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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비건을 지향하게 되면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남편이었다. 함께 한 십여 년 동안 우린 분위기 좋은 카페나 레스토랑보다 순댓국과 소주, 양꼬치에 맥주를 즐겨 먹었다.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겠다는 것뿐 소박한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은 건 아닌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하루에 몇 번씩 검색을 해봐도 외식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이따금 동네를 벗어나 멀리 원정을 갔지만 예쁘고 아기자기한 곳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또 밥집이 아닌 술집을 찾긴 쉽지 않았고, 있다 해도 너무 멀어서 마음 편히 즐길 수가 없었다.

애주가 커플인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지런해졌다. 버섯과 가지로 탕수육을 만들었고, 채식 만두를 빚어 전골을 끓였다. 동물성 원료가 들어가지 않은 소스와 재료로 마라샹궈를 볶아보고, 들깻가루를 듬뿍 넣어 순대 없는 순대볶음'맛' 요리를 만들기도 했다.

하다 보니 센스가 더 장착되었다. 굳이 비건 술집을 찾지 않아도 동네 빈대떡집에서 감자전을, 호프집에서 은행과 황도를, 중국집에서 가지튀김과 오이무침을 주문하기도 했다(동물성 식품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확인했으나 혼입 가능성이 있으며 식당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 사이, 편의점에서도 비건 과자와 육포까지 출시돼 신제품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해졌다. 여전히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아서 도돌이표 그리듯 반복되는 메뉴들이 지겨울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과 우리의 크고 작은 변화들 덕분에, 나의 비건 지향 일상은 여전히 즐겁고 지속 가능하다. 

B급 플렉시테리언 남편의 기행 

이 모든 것은 남편의 협조 덕분에 가능했다. 내가 뭘 먹을지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지만 그가 집에서도 굳이 동물성 식품을 먹어야겠다고 고집한다면 서로 힘든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플렉시테리언'이라 말하며 집에선 철저한 비건식을 즐겼으니 나로선 퍽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가끔은 어이가 없기도 했다. 이따금 고기를 먹는 플렉시테리언을 채식인의 분류에 포함하려면, 적어도 '가급적' 먹지 않겠다는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남편은 집에서만 채식을 했을 뿐, 현관을 나서면 예전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콩나물국밥집에 가서 굳이 보쌈 정식을 시키고, 카레를 주문하면서도 돈가스 토핑을 올리질 않나, 비빔국수를 먹을 때도 고기만두를 곁들이려고 하니, 급기야 내 입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당신은 플렉시테리언 아니야! 그냥 육식주의자라고!"

그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서는 비건식, 밖에서는 육식을 즐기며 스스로를 플렉시테리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더 자주 '아내가 비건을 지향하고 있다'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이 남자,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해할 수 없던 남편 덕분에, 요즘 나는 신기한 일을 목격하고 있다. 우선, 남편에게 채식에 관해 물어오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것이다. 고기를 끊고 싶지만 막상 뭘 먹어야 할지 캄캄하다는 지인에게 남편은 콩국수와 산채비빔밥, 청국장과 파스타 등 무궁무진한 메뉴를 안내한다.

한 번은 동료들과 피자를 먹으며 젖소도 임신을 해야만 우유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놓치기 쉬운 사실에 다들 놀라워했고 그에 관한 영상을 돌려보기도 했다는 것. 덕분에 누군가는 유제품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고 하니, 괜히 반갑기도 하다. 

또한, 내 변화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친구들마저도 오히려 남편의 식단에 흥미를 갖고 자세히 물어오기도 한다. 어떤 것을 먹고 있는지, 몸의 변화는 없는지, 지겹지는 않은지 등등. 더 놀라운 것은 그 끝엔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시도가 따라온다는 것이다.

쉬운 채식전도사, 격하게 응원한다 

나는 늘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했지만 숨길 수 없는 꼬장꼬장함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니 다들 나의 채식은 본인과 무관하다고 여긴 한편, 태연하게 고기를 먹으며 '플렉시테리언'을 주장하는 남편의 말엔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게 아닐까.

나 자신도 바꾸기 힘든 마당에 남을 바꾸겠다는 건 무리라고 여겼다. 그러니 동물을 덜 괴롭힐 수 있기를 바라면서도 타인의 변화를 바랄 수는 없어서 늘 소극적이었다. 그저 내가 육식에 동참하지 않는 것만으로 작은 위안을 삼았을 뿐. 문득, 더 멀리 바라보고 싶어진다. 

개인이 자신의 생활을 바꾸겠다는 결정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동시에, 고기를 먹는 채식 전도사(?)가 늘어나는 것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변 사람들이 채식을 더 가볍게 인식하며 시도할 수 있고 그것이 더 큰 주변으로 확장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보쌈을 먹으며 플렉시테리언을 주장하는 것, 미울 게 없다. 

간혹 누군가 남편에게 채식이 힘들지 않은지, 비건 아내와 사는 게 어떤지 물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남편은 전혀 힘들지 않으며 즐겁다고 말한다. 그럴 수밖에. 말장난 같지만 힘들게 채식을 한 적이 없으니,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쉬운 채식을 몸소 전파하는 이 남자, 이제 격하게 응원하고 싶다.

태그:#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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