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가 발표된 서건창(사진 좌)과 정찬헌(사진 우)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서건창-정찬헌 맞트레이드에 합의했다.

▲ 트레이드가 발표된 서건창(사진 좌)과 정찬헌(사진 우) 키움 히어로즈와 LG 트윈스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서건창-정찬헌 맞트레이드에 합의했다. ⓒ 키움히어로즈/LG트윈스


지난 2007년 5월, 동대문 야구장의 밤은 그야말로 뜨거웠다. 대통령배 쟁탈을 두고 서울고와 광주일고가 물고 물리는 접전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서울고가 선취 득점으로 앞서 나가는 듯 하다가도 광주일고가 바로 역전에 성공했고, 2~4회에서 무득점에 그친 서울고가 그대로 경기를 마감하는가 싶다가도 5~7회에 꾸준히 점수를 쌓으면서 재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 경기에서 누가 이겨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경기 종반 페이스로만 보자면, 서울고가 우위에 있었다.

서울고에는 '리드오프' 박건우(두산)를 비롯하여 안치홍(롯데), 유민상(KIA) 등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이 즐비해 있어 언제든지 추가점수를 낼 수 있는 힘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4번 타자 겸 투수 이형종(LG)이 마운드에 있어 더욱 든든했다. 8회까지 9-6으로 서울고가 리드를 잡고 있었음을 감안해 본다면, 서울고의 우승도 멀지 않을 듯 싶었다.

그러나 광주일고의 저력은 서울고의 기세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8회에 2점을 추가하며 9-8로 서울고의 턱밑까지 쫓아 온 광주일고는 9회 말 2사에서 지친 이형종을 상대로 윤여운(개명 후 윤수강)이 끝내기 적시타를 기록하면서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끝까지 팀의 리드를 지키지 못했던 에이스 이형종이 마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화재가 됐던 그 대회가 끝난 지 벌써 14년이 지났다.

2007 대통령배 우승의 주역, 서건창-정찬헌의 얄궂은 운명

마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른바 '서울고 눈물의 왕자'로 불렸던 이형종은 비록 팀을 우승시키지 못했어도 당시 대통령배 최고의 스타였다.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졌던 그에게 LG가 1차 지명권을 행사한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당시 결승전 주역에는 이형종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라인업을 지켰던 많은 이들이 대거 프로에 지명되면서 또 다른 스타 탄생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당시 MVP를 받았던 정찬헌이 2차 신인지명 회의에서 LG에 지명을 받으며 라이벌 이형종과 한솥밥을 먹은 것을 비롯하여 당시 광주일고에서 3번을 쳤던 또 다른 3학년생도 가장 늦게 LG에 입단하며 프로 입성을 알린 바 있다. 서건창이 그 주인공이다.

당시 결승무대에서 5타수 2안타로 활약했던 서건창은 광주일고의 또 다른 기둥이었다. 그러나 앞선 두 사람이 비교적 높은 순번에서 프로에 정식 입단한 것과는 달리, 서건창은 연습생 신분으로 LG에 입단했다. 당시 고교 3학년 멤버들 중 무려 세 명이 같은 팀 유니폼을 입었던 것도 어찌 보면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비록 정식 입단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프로 스카우트 팀에서는 서건창의 잠재력을 높게 보고 있던 터였다. 독립야구단 양승호 총괄단장이 고려대 감독 시절, 서건창을 직접 스카우트하기 위해 광주를 여러 번 찾을 정도였다. LG 스카우트 팀 역시 늦게나마 육성 선수(당시 신고 선수)로 서건창을 영입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두 광주일고 동기생은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정찬헌이 부상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LG 마운드의 한 축으로 성장하는 사이에 서건창은 정식 선수 등록 이후 한 타석만 소화하고 나서 바로 방출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스카우트 팀을 포함하여 적지 않은 구단 관계자들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딱 1년만 더 써 보자는 의견에도 불구하고 서건창은 LG 퇴단 이후 현역 육군 병사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또 다시 육성 선수 신분으로 키움 히어로즈(당시의 넥센 히어로즈)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는 KBO리그 최초의 200안타 달성 등 또 다른 육성 선수 신화를 썼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얘기다. 다만, 가장 정점에 올라와 있을 때 큰 부상을 당하여 몇 차례 부침을 겪었다는 점은 다소 안타까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인왕을 차지했던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평균 100안타 이상 기록했다는 점에서 비교적 꾸준한 활약을 펼쳐 준 내야 멤버라는 점에는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공교롭게도 정찬헌은 서건창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거듭났을 때 대통령배 대회 MVP다운 면모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다만, 지난해부터 루키 이민호와 마운드를 양분하면서 선발 투수로서의 경쟁력을 선보이더니, 올해에도 선발 6승을 기록하며 제 몫을 다 하기 시작했다. 대통령배 대회에서 투-타 중심으로 활약했던 두 이가 이제는 서로 다른 입장이 되어 유니폼을 바꿔 입게 된 것이다. 한현희, 안우진 등 코로나19로 인하여 징계를 받은 두 선발 요원이 이탈한 틈을 정찬헌이라는 카드로 잘 맞췄다는 점에서 키움에서도 큰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에 못지 않게 LG에서도 큰 만족감을 표하는 듯한 눈치다. 특히, 서건창의 방출을 막지 못했던 당시 스태프들은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돌아와야 할 선수가 자기 자리를 잘 찾았다"라며 그의 영입을 크게 반기고 있다.

14년 전 동대문 야구장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팀의 대통령배 우승을 이끌었던 두 3학년생들은 이제껏 줄곧 적으로 만나야 했다. 그런데, 이번 트레이드로 또 다시 투-타 맞대결을 펼치게 됐다. 서로 유니폼을 맞바꿔 입은 두 동기생들의 얄궂은 만남이 추후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보는 것도 올 시즌 KBO리그를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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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데일리안, 마니아리포트를 거쳐 문화뉴스에서 스포테인먼트 팀장을 역임한 김현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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