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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마트폰 중독자다. 눈 뜨자마자 핸드폰 잠금 화면에 뜬 알림을 확인했다. SNS에서 지난 새벽 올려진 게시물을 챙겨 보는 습관도 있었다. 늦은 밤 유튜브에서 여러 채널을 드나들며 하루를 마무리하곤 했다. 코로나 이후, 이 중독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스마트폰 사용량도 늘었다고 한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스마트폰 사용시간은 하루 평균 약 1시간 55분으로 2019년 대비 16분 증가했다. 비단 스마트폰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대면 수업과 재택근무가 시행됨에 따라, 노트북과 태블릿 등의 전자기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하루 한 시간만이라도 휴대폰과 컴퓨터를 끄고 사랑하는 이의 눈을 보며 대화하라."

에릭 슈미트 전 구글 회장은 이 한 마디로 '디지털 디톡스'를 강조했다. 즉, 스마트폰 단식이다. 과연 한 시간만이라도 스마트폰과의 단절이 가능할까?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하루 한 시간이 아닌, 하루 24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 두기로 했다.

오전 11시, 공중전화 찾아헤매기

지난 일요일 아침, 집을 나섰다. 엄마 심부름을 가기 위해 시장으로 향했다. 엄마의 단골집부터 반찬가게로 보이는 가게들은 다 돌아다녔다. 안타깝게도, 무더운 더위에 절임 배추 내 놓은 곳 하나 없었다. "엄마, 배추 없는데 다른 거 사갈까?" 당연한 듯 전화를 걸어 절임 배추가 없다는 소식을 전하려 했다.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잠시 고민했다.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가려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문득 생각난 공중전화. 동전이 필요했다. 가까운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 6개와 봉투 하나를 샀다. 동전으로 두둑한 주머니를 매만지며 공중전화를 찾아다녔다.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공중전화가 원망스러웠다.

하늘은 숨 막히는 더위라고 봐주지 않았다. 20분 정도 돌아다녔을까, 역 앞에서 가까스로 공중전화를 발견했다. 공중전화는 2종류였다. 동전용과 카드용. 카드가 되는 줄 알았다면, 동전을 구하지도 않았을 터인데...  
 
2021년 7월 25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20분을 돌아다니다 겨우 찾은 공중전화박스
▲ 신림역 부근 공중전화박스 2021년 7월 25일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20분을 돌아다니다 겨우 찾은 공중전화박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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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과 카드 모두 사용 가능하다.
▲ 신림역 부근 공중전화 동전과 카드 모두 사용 가능하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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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용 공중전화는 수화기를 들고 동전을 투입하면 이용할 수 있다. 10, 50, 100원짜리 동전만 가능하다. 동전을 넣고 전화번호만 입력하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지만, 3번 정도 실패했다. 동전은 반환되기 일수였다. 전화번호를 정성껏 눌렀더니, 입력시간이 초과되었다며 거절당하기도 했다.

수화기는 뜨거웠고, 공중전화박스는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듯 먼지 투성이였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엄마가 받았다. 들뜬 마음으로 공중전화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공중전화는 단호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며 동전을 더 넣을 것을 재촉했다. 점심 먹게 1시에는 들어오라는 말을 남긴 채, 통화는 종료됐다. 그런데 핸드폰이 없으니 몇 시인지 알 길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렸다. 머리와 등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다.

오후 3시, 정리·독서·다이어리
 
핸드폰도 없이, 다이어리를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여백 가득한 7월의 다이어리 핸드폰도 없이, 다이어리를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신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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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청소, 책, 다이어리. 이 세 가지를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내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바로 "밀린 숙제"다. 핸드폰을 꺼두니, 이 밀린 숙제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질러진 책상과 화장대를 치우느라 약 2시간이 걸렸다. 몇 년 전 사 놓고서 책장에 구석구석 끼워 놓았던 책들을 꺼냈다. 하루 만에 2권을 완독했다. 오랜만에 다이어리도 펼쳤다. 6월부터 내 삶은 기록되지 않았다. 여백을 채우는 일은 꽤 어려웠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과 일정을 참고할 순 없는 일이었다. 마치 오픈북이 아닌 시험에서 기억으로만 답을 쓰는 기분이었다.

차근차근 숙제들을 해결하니 벌써 오후 9시. 몸을 움직여야만 했다.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요리라도 해볼까, 부모님과 수다를 떨어볼까, 평소 안 하던 일에 나를 맡기고 싶었다. 집안을 30분 정도 서성였다.

"어지러우니까 가만히 좀 앉아있어. 차라리 핸드폰을 해!"

보다 못한 아빠가 말했다. 침대에 누워 봤지만 소용없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실상 그렇지 않았다. 전제가 틀린 것이다. 나는 침대에 '핸드폰을 하면서' 누워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핸드폰이 없으니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졸리기만 할 뿐이었다.

오후 9시, "차라리 핸드폰을 해!"

연락 두절인 나를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루라도 SNS에서 멀어지면, 유행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불안했다. 주말 동안 끝내야 할 과제도 있었다. 하지만, 손으로 직접 쓰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편으로는 여유로웠다. 해방이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에 쩔쩔매던 내가 자유를 찾았다. 누군가의 카톡을 계속 기다리지 않아도 됐고, 누군가에게 항상 답장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났다. 대신 부모님과 소통할 기회가 생겼다.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내가 거실에 나와 오랜 시간 머물렀다. 식사 시간도 길었다. 30분이면 끝나는 저녁식사가 1시간을 넘겼다. 코로나19 속, 이런 휴가도 나쁘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 핸드폰을 켰다. 많은 연락이 왔을 것이란 예감에 초조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카톡도 SNS도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핸드폰 껐는지도 몰랐어. 해보니까 어때?"

친구들의 반응은 놀라울 정도로 평범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 파업에 임했지만 세상은 그대로였다. 난 잠시 '디지털 디톡스'란 휴양지에서 쉬다 온 것 뿐이었다.

24시간 끝, 핸드폰을 켰더니... "사실 껐는지도 몰랐어"

사실 2019년,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을 강타할 때, 핸드폰을 강제로 사용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도쿄 인근 니가타라는 곳에 있었다. 며칠 전부터 뉴스에서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생활용품과 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난 그저 테이프 2개를 사서 창문을 칭칭 감았을 뿐이었다.

태풍의 눈이 도쿄에 들어와 니가타를 통과해서 가는 바람에 우리집도 정전이 되고 말았다. 방이 어두워도 핸드폰 플래시를 켤 수 없었다. 무엇보다 배터리를 아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풍보다 핸드폰을 충전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큰 공포로 다가왔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때였다.

지금도 그렇다. 코로나 이전에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친구들을 만나 밥을 먹었고, 술을 마셨다. 코로나 이후는 어떤가. 사적 만남은 제한됐고,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도 없다. 지금 당연하게 쓰고 있는 핸드폰도 일본에서처럼 어떤 이유로든 쓸 수 없는 상황도 분명히 존재할 거다.

지금 당장 핸드폰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핸드폰과 거리두기를 24시간 동안 실험해 본 이유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도 이젠 옛말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손발이 고생한다.

고작 하루 체험해 봤을 뿐인데, 특히 40도를 육박하는 더위에는 더욱 그랬다. 필요한 게 있으면 무조건 발로 뛰어야 했고, 기록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조건 손으로 적어야 했다. 편리함을 두고 몸을 써서 고생할 때마다 내 자신에게 묻고 답했다.

"왜 사서 고생하니?"
"고생이 아니라 발견인 거야.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다 보면, 소중한 게 무엇인지 영영 알지 못할 테니까."

태그:#스마트폰과거리두기, #디지털디톡스, #코로나19, #스마트폰디톡스, #공중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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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주희입니다. 쉽고 재밌는 기사로 다가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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