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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1년 6개월,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급변한 상황을 맞닥뜨린 곳은 병원 현장 아닐까 싶은데요. <오마이뉴스>는 보건의료노조와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해 발표한 '보건의료노동자 노동실태 조사' 내용을 네 차례에 걸쳐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 이전기사 : 의료현장 만성적 인력 부족... 코로나 후 더 끔찍해졌다 http://omn.kr/1up63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심산기념문화센터에 설치된 드라이브스루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가 시행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심산기념문화센터에 설치된 드라이브스루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코로나19 검사가 시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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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면허 범위 밖 다른 직종의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가 잦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2021년 보건의료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전체 보건의료노동자의 절반가량(45.8%)이 "본인의 권한ㆍ책임을 벗어난 타 직종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지 않아 의료법 등 관계법상 본인 직종의 일이 아닌 사실상 "남의 일"을 하고있는 셈이다. 특히 간호사의 경우 절반 이상(55%)이 "타 직종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답했고, 이에 따라 "업무량이 정해진 근무 시간 내에 다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절반의 가까운(46%) 간호사들이 호소했다. 간호사 중에서도 3교대 근무자, 야간근무 전담자들일수록 상황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의료기관에 업무(직무) 범위가 명시된 문서(업무분장표, 직무기술서 등)가 '없다'고 응답한 비율도 14.8%로 나타나 문서화된 업무 분장 자체가 없는 기관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무면허 불법의료행위의 주요한 원인으로 작동하며 낮은 업무(직무) 숙지로 인해 의료ㆍ안전사고, 고유업무와 상관없는 업무지시, 부당노동행위, 조직 구성원 간의 업무를 둘러싼 갈등 등 다양한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업무 범위를 나눈 문서가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 중 23.5%는 "문서에 명시된 대로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해 기준이 있는 경우에도 네 명 중 한 명이 본인의 면허상 업무를 벗어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군별로 살펴보면, 간호직(26.7%)뿐만 아니라 의료기술직(24.3%)도 명시된 업무 범위를 벗어난 업무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직장생활 만족도 낮고 번아웃, 의료서비스 질도 떨어진다"

간호사들은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지 않을수록 직장생활 만족도와 업무 만족도, 의료서비스 질이 낮아지고 '번아웃'이 유발되기 쉽다고 답했다. 조사에 따르면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다"라고 답한 간호사에 비해 "체계적이지 않다"고 답한 간호사들의 직장·업무 만족도는 크게는 20%까지 차이를 보였다.

얼마나 업무 구분이 체계적인지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질도 달라졌다.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라고 평가하는 간호사들의 경우 32.5%만이 "의료안전사고 위험이 증가했다"고 인식하는데 반해, "구분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간호사들은 60% 이상이 의료안전사고 위험이 증가한다고 답했다. 또한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지 않을수록 친절도가 떨어지며, 의료상담 서비스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응답도 2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직무소진(번아웃) 상황에도 차이가 관측됐다. 전체적으로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라고 평가하는 간호사들에 비해 업무 구분이 체계적이지 않다고 평가하는 간호사들의 번아웃 상태가 더 심각했다. 간호사의 번아웃 상태는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상황이지만, 업무 구분 체계성에 따라 '집중하는데 어려움(19%)'과 '자주 그만두고 싶다(15.3%)'는 항목에서 차이가 드러났다.

즉 업무 구분의 비체계성은 업무 중 집중을 어렵게 하고, 그에 따라 이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타 직종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답한 간호사들 중 68.1%가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데에 비해, "타 직종 업무를 수행한다"는 간호사는 82.6%가 이직을 고려한다고 답해 약 15% 더 높은 비율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었다.

보건의료노조-보건복지부 노정교섭 진행 중

의료현장에서의 직종간 업무 범위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개인의 책임과 권한을 벗어나는 업무가 늘어나고, 이는 무면허 불법의료행위가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업무범위 명확화는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오늘날 보건의료 현장은 업무를 면허 범위 내에서 적절히 관리, 수행할 수 있는 여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보건의료노동자가 자신의 업무 성격, 범위를 명확히 알고 있음에도 다른 직종의 일을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결국 불법의료의 근절과 의료서비스 질을 높여내기 위해서는 의료기관 내 각 직종별 업무 범위를 제도적으로 명시하고, 이를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는 일이 필요하다. 면허가 부여한 책임과 권한을 벗어나는 불법의료행위를 근절하는 한편, 의료법 2조의 간호사 '진료보조업무'와 같이 범위가 명확하지 않은 업무에 대해서는 법 개정을 거쳐 업무 범위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도록 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해야 한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나순자)은 보건의료노동자의 노동실태를 파악하고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위해 매년 정기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1년 정기 실태조사는 지난 3월 12일부터 한달간 전수조사에 준하여 실시하였고, 2020년 12월말 기준 조합원 77,092명 대비 43,058명의 높은 유효 응답률(55.9%)을 보였다. 이는 2020년 조사 시 보다 7,444명 증가한 규모로 조사의 신뢰성, 타당성, 대표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본 조사는 <임금현황>, <노동조건>, <의료서비스의 질>, <조직운영 및 조직문화>, <노동안전보건>, <코로나19 환경 평가> 등 총 6개 영역의 구조화된 37문항에 대해 자기 기입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최종 보고서에는 전국 141개 사업장 총 43,058명의 유효 응답이 사용되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 0.25%이다.  본 실태조사는 보건의료노조의 위탁을 받아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가 수행하였으며, 최종 보고서 제출에 따라 그 결과를 아래와 같이 총 4회에 걸쳐 발표한다.

① 코로나19에 대한 보건의료노동자들의 평가와 대안 : 8/3(화)
② 업무분장과 의료서비스의 질 : 8/5(목)
③ 간호사 근무형태별 노동실태… 3교대근무를 중심으로 : 8/10(화) 
④ 코로나19 시대 보건의료노동자들의 노동안전 실태 : 8/12(목)

태그:#보건의료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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