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숙명의 한일전에서 석패하며 결승 직행에 실패했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아쉬운 집중력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고우석의 실수가 뼈아팠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야구 대표팀은 4일 오후 7시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야구 준결승 일본과 경기에서 2-5로 패했다. 하지만 금메달을 향한 기회는 아직 남아았다. 한국은 5일 오후 7시 미국과의 패자 부활전을 통해 다시 한 번 결승행을 노린다. 한국이 만약 미국에도 지면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을 벌인다.

잘싸웠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 승부였다.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홈팀 일본에 열세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선발 투수로 나선 고영표가 5이닝 동안 공 91개를 던져 6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고, 타선에서는 이정후와 김현수가 멀티히트 경기를 펼치며 분전했다.

한국은 경기 초반 일본 선발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공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5회까지 안타 2개 생산에 그치며 0-2로 끌려갔다. 한국은 6회초에 드디어 타선이 깨어나며 선두타자 박해민이 안타와 상대 수비 실책으로 2루까지 진루했고, 강백호와 김현수의 적시타가 터지며 2-2로 동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후속타자 오재일과 오지환이 삼진을 당하며 좋은 흐름을 역전까지 이어가지는 못했다.

팽팽하던 승부는 8회에 갈렸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일전마다 항상 '약속의 8회'로 불렸지만 아쉽게도 이번 경기에서는 행운이 일본 쪽이었다. 구원투수 고우석의 결정적 실수가 승부의 흐름을 바꿨다. 8회 말 한국 마운드를 지키던 고우석은 1사 1루 상황서 타석에 들어선 곤도 겐스케에게 더블플레이를 유도해내는 듯했으나, 1루 베이스 커버에 들어갔다가 포구할 때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저지르며 타자 주자가 세이프됐다. 타이밍상 여유있는 아웃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고우석의 집중력 부족이 더 아쉬웠다.

고우석은 이어 라카미 무네타카에게 고의 사구를 내준 뒤 가이 타구야에게 볼넷을 헌납하며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다. 결국 고우석은 야마타 테츠토를 만난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얻어맞고 2-5로 다시 점수차가 벌어졌다. 누가 봐도 흔들리던 고우석을 교체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한 김경문 감독의 판단에도 의구심이 남는 순간이었다.

한국은 9회초 마지막 공격에 나섰으나 결국 점수차를 만회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이로써 한국은 한국은 2015 프리미어12 준결승전에서 마지막 승리 이후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부터 2019 프리미어12, 그리고 이번 도쿄올림픽까지 프로 선수들끼리 맞붙은 한일전에서 5연패를 당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패배 후 일부 선수들에게 쏟아진 비난이다. 고우석을 비롯하여 이날 4번타자로 나섰음에도 삼진만 4개를 당한 양의지, 역시 6회에 결정적인 찬스를 놓친 오재일, 그리고 이들을 끝까지 믿고 기용한 김경문 감독 등을 향하여 분노한 누리꾼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선을 넘는 비난은 다른 문제다. 올림픽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포털사이트에서 선수 응원용으로 개설한 댓글창에는 한일전 패배 이후 몇몇 선수들에 대한 인신공격성 욕설로 뒤덮였다. 오죽했으면 해당 포털은 결국 응원페이지에서 해당 선수들을 향한 댓글 기능을 중단시켰을까. 그럼에도 일부 누리꾼들은 선수들의 개인 SNS나 소속구단 홈페이지에 몰려가 악플을 남기고 있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한국보다 선수의 플레이에 대한 언론-전문가들의 비판이 더 신랄하고 가혹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종-성별-가족-정체성 등 사회적 문제를 결부시키거나 개인의 금기를 건드리는 것에는 민감하다. 국가대표라는 이유로 스포츠맨십이나 프로의식과 전혀 상관없는 이유로 불특정다수의 무분별한 감정의 배설까지 무조건 감당해야 할 필요는 없다.

도 넘은 비난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은 야구대표팀만의 이야기 아니다. 메달권을 기대했던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8강전에서 멕시코에게 3-6으로 참패하며 일찍 탈락했다. 경기 후 상대의 유효슈팅을 거의 막아내지 못했던 골키퍼 송범근을 비롯하여 설영우, 강윤성, 황의조, 정태욱 등 부진했던 많은 선수들이 대중의 비난 공세에 그대로 노출되기도 했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최근 도쿄올림픽에서 터키를 꺾고 4강에 진출했다.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역시 주장이자 에이스인 '배구여제' 김연경이었지만 또다른 수훈갑은 박정아였다. 대표팀 주전 레프트로 활약 중인 박정아는 5년전 생애 첫 올림픽이던 2016리우데자네이루 대회 네덜란드와 8강전(1-3 패배)에서 4득점에 그치고 무려 16개의 범실을 저지르는 부진으로 탈락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박정아는 이후로도 국가대표에 꾸준히 발탁되었고 2020도쿄올림픽에서는 팀의 해결사로까지 환골탈태했다. 8강 진출의 분수령이었던 조별리그 일본전(15점), 4일 터키와 8강전(16점)에서 모두 고비마다 중요한 득점을 올리며 한국의 4강행에 크게 일조했다. 2경기 모두 세트스코어 3-2의 짜릿한 승리였는데, 특히 박정아가승부처마다 주눅들지 않고 공격을 성공시키며 김연경에 쏠려있던 부담을 크게 덜어줬다는 평이다.

5년 전 그녀를 무차별적으로 손가락질하던 비난 여론이 하루아침에 찬사로 바뀌어 '클러치 박'이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생긴 것은 격세지감이다. 한번의 부진으로 선수의 존재 가치를 폄하하고 부정하던 악플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올림픽 같은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대표팀의 성적이 곧 국가의 위상'이라는 민족주의적 정서까지 겹쳐지며 선수들에 대한 기대와 압박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이웃나라이자 또 다른 스포츠 강국인 일본과 중국도 이번 대회 자국의 유력 종목에서 기대에 못미친 몇몇 자국 대표선수들에게 도를 넘은 비난이 쏟아져 후폭풍을 겪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그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누구보다 많은 노력과 경쟁을 거쳤고, 앞으로도 자신의 종목과 국가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은 인재들이다. 한 번 경기에 졌다고, 실수를 했다고 해서 매국노, 역적같은 비난까지 감수해야 한다면 앞으로 누가 과연 국가대표를 하고 싶을까. 팬들도 프로에 대한 그리고 국가대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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