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경기청년유니온 기획 '누구나 청년을 좋아해'는 마치 누구나 청년을 좋아하는 것 같은 우리 사회를 깊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청년을 위한다'고 하는 경기도 내 비청년들의 왜곡된 시각이나 '청년을 위한다'고 홍보하는 일터에서의 실제 경험, 또는 현장에서 목소리 내는 청년들이 겪는 탄압(?)과 문제의식 등 언론에서 취재하지 않은 다양한 주제로 두 달 동안 연재할 예정입니다.[편집자말]
자료사진
 자료사진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지금은 아침 여덟 시입니다.
나올 때는 이미 어두워진 뒤일 겁니다.
태양은 오늘 당신을 위해 빛나지 않을 겁니다.
- 엘리오 페트리의 영화 <천국으로 가는 노동계급>(1971) 중에서


청년을 위해 일한다는 그 직장으로 취업하기 전까지는 햇빛, 환기, 외부 방음 등이 그토록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경험해본 결과, 업무 공간이란 내가 단지 머무르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생과 일은 떼어 놓을 수 없고,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가 매일 출근해서 보내는 시간과 공간이 모여서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첫 출근 날은 약간의 기대감과 긴장감 사이의 지점에 있었다. 하지만 내가 출근하여 보게 된 곳은 면접을 본 깔끔한 장소가 아닌 어느 지하실이었다. 그것도 관리가 되지 않는 좁은 지하 사무실. 그 지하실에서 따닥따닥 붙어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은 전부 청년들이었다. 그곳에 처박힌 채(?) 한 주, 두 주, 한 달의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일하고 있는 지하 공간이 왜 답답하게 느껴지는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첫째, 인원에 비해 공간 자체의 면적이 터무니없이 좁았다. 여유분의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이곳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는커녕, 일상적인 업무를 할 때도 서로 어깨를 부딪혀가며 지내야 했다. 장점을 어떻게든 생각해보자면 앉은자리에서 고개만 돌리면 옆 사람을 볼 수 있는 덕에 의사소통(?)은 손쉬웠달까.

둘째, 순환되지 않는 공기. 지하실이니 공기의 질이 좋을 리 만무했고, 버겁게 돌아가고 있는 소형 공기 청정기와 작은 환기구는 그 매캐한 공기를 순환시키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숨을 쉬기 위한 공기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져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공기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좀처럼 없지만, 그 공간에 있다보면 공기의 소중함에 대해 매 순간 생각해보게 된다. 공기 순환이 안 되어 악취 또한 심각했다. 이 냄새를 한 번 맡아본 방문자들은 '비위가 약하다면 즉시 토할 정도의 냄새'라고 평했다.

셋째, 지하 공간이라면 피해 가기 힘든 곰팡이. 나는 귀신의 집에나 나올 법한 곰팡이가 사무 공간을 뒤덮어버리는 것을 목격했다. 곰팡이는 물품을 가리지 않고 잊을만하면 끊임없이 나타나 존재감을 과시했다. 마치 나를 잊지 말라는 것처럼.

어쩌다 한번 지하실에 오는 비청년 관리자(그들은 깔끔한 지상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했다. "그래도 뭐... 일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인 거죠." 공간이 열악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나는 젊으니까, 취업이 안 되는 세대니까 이 정도도 감지덕지하라는 것일까? 본인이 일하는 공간이 이렇더라도 저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자꾸만 던지게 되었다. 청년들이 취업하기 어려운 것은 맞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우리도 똑같은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일상이 가능한(건강을 해치지 않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다.

지하에서 서서히 식물과 함께 메말라갔던 경험

청년을 위한다고 내세우고 인정받는 이 직장, 하지만 '청년'들을 위한다고 할 때, 거기서 '노동자'인 청년은 빠진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차피 우리는 '노동자'이니 청년으로서의 발언권은 없다고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안에서 우리가 지르는 비명은 메아리쳐 사라져 버린 채, 그 일터는 우리의 실적을 발판 삼아 외부에서 큰 상을 받았다고 한다. 나에게 청년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고민해보게 해 준 공간이 잘했다고 상을 받다니 씁쓸했다.

내가 지하공간에서 체감하는 이 차별적인 시각은 업무 공간뿐 아니라 온갖 청년 지원 정책에서도 구석구석 발견된다. 청년이니까 비좁은 공간, 열악한 공간에 살거나 일 해도 괜찮고, 청년이니까 적은 돈을 받아도 괜찮고, 청년이니까 무급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하라는 어른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허락되지 않는 환경. 하지만 우리도 같은 인간인걸요. 당연히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급받고 맑은 공기로 숨 쉬고 싶죠.

이런 지하 생활에 대해 잘 모르는 가끔 오는 외부인들은 별생각 없이 이곳에 새로운 생명을 선물한다. 그리고 통풍도 되지 않고 햇볕 한 점 들지 않는 이곳에서 식물들은 서서히 죽음을 맞이한다. 어쩌다 이 지하 공간에 방문한 관리자들은 이건 '높으신 분'이 주신 선물이니 잘 간수하라고 했다는데. 병든 식물의 모습이 그 공간에서 착취당하는 우리의 모습 같아 마음이 씁쓸했다.

식물에게조차 미안한 그 공간에서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 정도를 보냈다. 관리자의 말처럼 일자리에 그저 감사해야 할 청년들의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청년이니까 좀 열악한 곳에서 일해도 된다'는 바로 그런 시각 때문에 지하에서 서서히 식물과 함께 메말라갔던 우리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앞으로는 더 이상 비좁은 지하실이나 보온도 안 되는 얇은 컨테이너 박스를 알록달록하게 꾸민 뒤 청년들은 이 안에서도 살고, 창업하고, 성공한다고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어른들이 더는 없길 바라며.

덧붙이는 글 | 청년 정책과 관련된 일터에서 겪은 부조리함을 중심으로 모이게 된 경기청년유니온(조합원 뿐 아니라 비조합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에서 쓴 글입니다. 이름이 밝혀지면 겪게 될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실제 이름 및 개인을 특정하여 밝히지 않았습니다.


태그:#지하생활, #청년은다괜찮아, #청년노동자, #업무환경, #청년노동
댓글

청년의 노동현장을 조명하기 위한 일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의 경기지부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