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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한쪽에서 일어난 한 행위가 결국 지구 다른 쪽에서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나비효과'를 나는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1991년 4월에서 6월은 소위 '분신 정국'이었다. 그때 나는 영국에 유학 중이었다. 당시 영국 언론은 이런 한국의 상황을 연일 보도했다. 1990년 나는 무작정 영국으로 건너와 영국 장학단체들에 장학금을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991년 5월 어느 날 한 장학단체에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해 6월 나는 그 단체로부터 신청한 장학금보다 10배가 많은 장학금을 받았다.

400만 원을 신청했는데 4천만 원이 나왔다. 너무나 놀라웠다. "무슨 착오가 생긴 것인가? 신청 액수보다 10배나 많이 주다니!" 지도교수도 놀라며 무척 반가워했다. 그는 이제껏 장학금을 신청한 것보다 10배나 준 경우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그 장학단체의 사무처장을 만났다. "아니 어떻게 신청한 장학금의 10배를 주나요?"라고 놀라움에 물었다. 나이 지긋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단체에서 당신의 장학금 신청서를 검토하는 기간 중 한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의 분신 뉴스를 접했습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이 한국에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당신이 노력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장학금을 10배로 준겁니다." 

나는 놀라웠다.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젊은이들의 분신 때문에 내 삶이 큰빚을 졌다. 그 후 나는 그 장학단체 등의 도움으로 영국에서 학·석·박사 학위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도움을 받는다. 1991년 4월부터 6월까지 분신으로 생명을 잃은 젊은이들을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나비효과'처럼 지구 반대쪽에 있던 나를 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분들에 대해 무거운 부채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한때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수많은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만나며 그분들의 눈물과 억울한 한을 보았다.

내가 책을 쓰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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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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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요 내용은 내가 지난 2019년 11월부터 <오마이뉴스>에 쓴 '김성수의 한국현대사' 라는 제목으로 약 1년 동안 연재한 기사들이다. 처음에 기사를 쓰게 된 이유는 당시 여상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국회 법사위 위원장이 제2기 진실위 활동 재개에 딴지를 거는 것에 말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전두환 정권 시기에 판사였던 그는 지난 1981년 고문에 못 이겨 '간첩'이라고 자백한 어부 김정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려 생명을 빼앗아 놓고, 나중에 무죄로 밝혀졌는데도 피해자에게 사죄나 위로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SBS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이 여상규 의원에게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다, 책임은 느끼지 못하나?"라고 전화로 묻자 뜻밖에 버럭 화를 내며 이렇게 답한다.  "웃기고 앉아 있네, 이 양반 정말."

나는 끓어오르는 마음의 분노를 겨우 가라앉히며 <오마이뉴스>에 '믿을수 없는 판결 내린 판사 여상규'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관련기사 : 믿을 수 없는 판결 내린 판사 여상규 http://omn.kr/1lpi7)

뜻밖에 이 기사에 대한 여론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포털사이트에 이 기사가 톱으로 올라갔고 방송국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왔다. 그리고 <오마이뉴스>에서도 '김성수의 한국현대사'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연재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왔다. 처음에는 고사했다. 주중에는 영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와 더불어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일을 하고 있어 짬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코로나19로 인해 세계가 팬데믹을 맞았다. 항공표까지 받았지만 한국 출장이 취소되고 영국에서의 내 개인 일정도 다 취소되어 '집콕' 신세가 된 나는 결국 <오마이뉴스>에 '김성수의 한국현대사'를 연재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책은 코로나19가 없었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19의 또 다른 '나비효과'로 세상일은 정말 새옹지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내가 노무현 정부시절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할 당시 발간된 보고서 중 극히 일부를 일반인들이 읽기 쉽게 소개하고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원래 내가 연재했던 기사는 두 종류였다. 하나는 민간인 학살 사건, 다른 하나는 인권침해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민간인 학살 사건의 다수는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시기에 일어났다. 민간인 학살 사건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저서는 성공회대학교 김동춘 교수의 <전쟁과 사회>다. 한편 인권침해 사건의 다수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기 재일교포, 어부 등을 고문 끝에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들이다. 내가 알기로 우리나라에서 '(조작)간첩'을 가장 많이 만나고 연구한 학자는 한홍구 교수다.

이 책에서는 내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사 중 인권침해 사건의 일부 내용만 추려서 실었다. 민간인 학살 사건에 관한 기사도 후속 책으로 낼 예정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권침해 피해자들은 양심적인 학자, 민주화운동학생, 재일동포, 어부 등이다. 양심적인 학자와 민주화운동 학생은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자신의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들에게 본보기로 손봐줘야 할 대상이었다. "너희들 함부로 입 놀리면 이렇게 되니, 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어!"라고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단칼에 잠재우는 수단이었다. 현재 러시아의 푸틴 정권과 미얀마 군부정권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재일동포와 어부는 자신을 방어할 논리나 든든한 인맥이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 정권의 위기 때 또는 선거철마다 이들을 고문 끝에 간첩으로 조작해 대국민 발표를 하며 군부정권을 공고하게 유지하고 강화하는 '북풍용' 소모품으로 거침없이 사용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 자신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인생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은, 지금도 과거 인권침해 사건의 가해자들은 국회의원도 하고 변호사도 하며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살며 큰소리치고 사는데 피해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병든 몸과 맘을 이끌며 간신히 어둠속에서 연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역사, 아니 현실에 대해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인간사에 정의가 바로잡혀서 강물처럼 흐르지 않으면 결국 불의와 부패가 넘쳐나온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도록 내게 끊임없는 영감과 힘을 준 민간인 학살 희생자, 인권침해 피해자 그리고 그 수많은 유족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민주주의 나무는 인간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지만 이제는 이 땅에, 아니 이 세상에 더 이상 억울한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조작된 간첩들 - 침묵하지 않을 의무

김성수 (지은이), 드림빅(2021)


태그:#조작된 간첩들,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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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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