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각자 마실 술을 준비해서 화면 앞에 모였는데, 기분이 묘했다
 각자 마실 술을 준비해서 화면 앞에 모였는데, 기분이 묘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친한 형들과 줌에서 모임을 했다. 각자 마실 술을 준비해서 화면 앞에 모였는데, 기분이 묘했다. 원래는 석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 각자 삶에서 짊어진 무게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발생하고선 얼굴을 못 본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근황을 나눴다. 애써 웃어보지만, 얼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숨길 수 없었다. 이제 마흔도 훌쩍 넘어 오십에 다가가고 있다. 결혼도 했고 직장도 다니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건만, 여전히 삶은 퍽퍽했다.

갑자기 C형이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 아빠, 직장인으로 여러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면서도 정작 나의 필요는 채우지 못해 슬프다고 했다. 있는 힘껏 살고 있음에도 어디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한숨 쉬는 C형의 말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처음에 활기 넘쳤던 분위기도 밤이 짙어질수록 점점 까맣게 물들었다.

모임을 마치고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여러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마흔은 세상에 흔들리지 않아 불혹이라는데, 외줄 타기를 하는 어름사니처럼 위태롭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마음은 약해지는데 어디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곳이 마땅치 않다.

집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회사 동료들은 각자 가면을 쓴 채 그만큼만 보여준다. 주로 나누는 이야기는 회사, 주식, 코인이 전부이다. 왠지 나를 드러내면 약한 모습 같아 숨기기 급급했다. 그래서였을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도 관계는 늘 거기서 거기였다.

살기 위해 글을 쓰다

마흔이 된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숨이 막혔다. 갑자기 살아온 인생이 덧없이 느껴졌다. 그저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다. 뒤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삶의 목표는 가족과 회사가 전부였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 뒤론 넋 나간 사람처럼 집과 회사를 오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마흔앓이였다. 나중에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다들 나처럼 심한 정신적 공황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흔이 그런 나이였다.

공허함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랬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어도 그때뿐이었다.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수시로 심장이 쥐어짜듯 아팠다. 이러다 큰일 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태껏 변변한 취미 생활조차 없었다. 그때 문득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블로그가 떠올랐다.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가보았더니 여전히 텅 빈 채 남아있었다.

글쓰기 버튼을 누르고 지금 느껴지는 감정을 적어보았다. 아니 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배설과도 같았다. 처음엔 한 단어, 한 문장도 적기 힘들었지만, 점점 글에 속도가 붙더니 거침없이 울분을 토했다. 누군가에게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내 안에 이렇게나 쌓인 것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쏟아냈다. 그간 눌렀던 감정을 글에 담아 풀어내니 막힌 혈이 뚫린 듯 시원했다. 아마 상담을 받더라도 이렇게나 시원하게 말할 순 없었으리라.

그때부터 매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글쓰기였다. 하루에 일어난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속상한 일 모두 적었다. 블로그뿐 아니라 일기장까지 사서 틈날 때마다 썼다.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니 모든 것이 글감이었다.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 아내와의 다툼, 나이 듦의 슬픔은 글로 풀어냈고, 예쁜 아이의 모습, 지나가는 아름다운 꽃, 반가운 사람과의 만남은 글에 남겼다.

글은 무한 확장성이 있었다. 블로그에 홀로 글을 쓰다, 우연히 온라인 '매일 글쓰기' 모임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글벗을 만나 2년째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코로나로 인하여 사람들을 만나기 힘든 요즘, 글쓰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비록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오롯이 글로 일상을 나누고, 그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으며 랜선 이웃 이상의 큰 의미가 되었다. 이제는 허무할 틈도, 외로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바쁘게 지낸다.
 
출판사와 계약 후 올 7월에 출간한 "로또에 당첨되어도 회사는 잘 다닐 거지"
▲ 로또에 당첨되어도 회사는 잘 다닐 거지 출판사와 계약 후 올 7월에 출간한 "로또에 당첨되어도 회사는 잘 다닐 거지"
ⓒ 신재호

관련사진보기

 
주중엔 직장인으로 최선을 다하고, 주말엔 '실배'란 필명으로 글을 쓴다. 요즘 유행하는 부캐가 나에게도 생겼다. 그저 취미로 시작했는데, 유심히 내 글을 지켜보던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작년 가을에 출판 계약을 맺었다. 6개월간 열심히 글을 썼고, 올해 드디어 책이 세상에 나왔다. 마흔을 살아가는 웃픈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주변에서 축하도 많이 해주었는데, 그보다도 글을 쓰고 싶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아 놀랐다. 이미 다들 어딘가에 풀어 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주저하고 있었나 보다. 그럴 땐 일단 시작해보라고 힘을 준다. 첫 시작은 어렵지만, 실행했을 때 일어날 기적 같은 일을 몸소 체험했기에.

저널테라피 : 일상을 적는다,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비단 나의 개인적 경험뿐 아니라 글쓰기의 치유적 효과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 중 '저널테라피'라고, 미국에서 처음 시작되어 국내에서는 2000년대부터 각광 받기 시작한 치료 기법이다.

문학치료 전문가 이봉희 교수는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하여 나의 내면에 있는 목소리를 해방해 미해결된 분노, 두려움 등의 감정을 명료하게 바라보게 되고, 점점 해소된다고 했다. 심리적 외상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이 스트레스 질병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치료 기법을 미리 알지 못했지만, 마흔에 마주한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글을 썼던 과정들이 '저널테라피'와 닮아 있어 놀랐다. 어딘가에라도 풀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감정들이 글을 통해 구체화되었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힘이 생겼다. 정말 글을 통해 치유되었다.

여전히 나는 매일 일상을 글로 적는다. 이제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다. 마흔에 글쓰기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깊은 늪에 빠져 여전히 허우적대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글이 있기에 어떤 일이 닥쳐도 두렵지 않다. 힘들면 힘든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글에 실어 보내면 되기 때문이다.

혹여나 내가 그랬듯, 심한 마흔앓이 중이라면 주저 말고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개인 SNS, 일기장, 회사 노트 어디든 상관없다. 어렵다면 일단 생각나는 한 두 문장을 적으면 된다. 그 일이 반복되면 글 근육이 쌓여 자연스레 감정을 풀어낼 날 이 반드시 올 것이다.

마흔앓이는 정도에 차이일 뿐이지 누구든 피해갈 수 없는 통과의례이다. 그 과정에서 글쓰기는 헛헛한 마음을 달래 줄 좋은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이다.

글을 읽고 마음이 동했다면, 컴퓨터를 켜고 일단 써 보자. 어느 순간 몹시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마흔, #마흔앓이, #정신적공황, #글쓰기, #치유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소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일상이 제 손을 빌어 찬란하게 변하는 순간이 행복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