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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연극은 세계의 작은 무대이다. 성장하는 아이들이 연극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며 어른이 되기도 하고 아이도 되어본다. 안전하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연극이라는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더 큰 세상을 만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규모 학교인 함양 서상초등학교의 2019년도 전국어린이연극잔치 대상 수상은 지역 어린이들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미 서상초등학교는 이전부터 전국 초등학교에서 연극으로 이름을 알린 학교이다. 함양군은 매년 경남어린이연극페스티벌을 유치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함양 관내 백전, 위성, 수동, 위림초등학교 등에서 연극을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고 배우는 학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함양의 어린이 연극은 이 기틀을 바탕으로 함양세계어린이극잔치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연극을 포함한 모든 활동이 지체되고 불완전한 지금, 함양 어린이 연극이 다시 도약할 그 날을 대비해 함양세계어린이극잔치에 앞서 함양 어린이 연극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전국에 알려진 연극교육과 사업에 대해 알아보며, 어린이 연극 시스템을 다시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 편집자말


극단 문화모임 '광대'를 창단하다
 
왼쪽부터 극단 광대의 중심에 있었던 이점수 금반초 교사,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 노정우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 조현우 지곡초 교감
 왼쪽부터 극단 광대의 중심에 있었던 이점수 금반초 교사,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 노정우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 조현우 지곡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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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연극이 함양에 자리 잡기까지는 교사들의 힘이 컸다. 교사 극단 '광대'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어린이 연극을 공연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광대는 1993년 함양에 근무하는 교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극 동아리를 바탕으로 1996년 공식 창단되었다.

광대는 연극 공연을 접하기 쉽지 않은 경남 함양군 지역민들에게 연극을 공연하고, 이를 통해 문화 수준을 높이는 등 지역 문화 발전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초창기 경남 어린이 연극 페스티벌(당시 함양청소년연극제)을 주최·주관 하는 등 함양의 아동극 활성화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전국에 알려진 연극 교육과 사업을 살펴보기에 앞서 극단 광대의 중심에 있었던 노정우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 조현우 지곡초등학교 교감선생님, 이점수 금반초등학교 교사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 어린이 연극을 포함한 함양 연극의 지난날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광대의 공연사부터 당시 어린이 연극 교육 부분까지 이들의 이야기를 두 편에 걸쳐 담아 보았다.

함양과 연극이 만나다
 
극단 광대의 중심에 있었던 이점수 금반초 교사,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 노정우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  조현우 지곡초 교감(왼쪽부터)을 한자리에서 만나 어린이 연극을 포함한 함양 연극의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극단 광대의 중심에 있었던 이점수 금반초 교사,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 노정우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 조현우 지곡초 교감(왼쪽부터)을 한자리에서 만나 어린이 연극을 포함한 함양 연극의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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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 창단에 앞서 연극이 함양에 첫발을 내디딘 시발점은 거창교사문화모임 교사극회의 청소년을 위한 문화 한마당 연극 <토끼와 포수>였다. 당시 거창교사문화모임은 1993년 5월 거창종합사회복지관에서 3회의 공연을 진행했다.

이때 배우로 참여한 당시 함양지역 교사였던 조현우 교감이 함양에서의 공연을 요구했다. 이후 같은 해 6월, 함양농협전시관에서 전교조함양지회의 초청으로 2회의 공연을 진행하면서 함양과 연극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 공연을 계기로 전교조함양지회에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전교조 함양지회 조합원과 연극에 관심이 있는 교사들이 함양교사극예술연구회를 결성했다.
      
불안한 출발

광대 공연사의 연극문화 탐색 시기라 볼 수 있는 1993년~1998년의 함양군의 문화예술 환경은 시대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굉장히 열악한 상태였다. 부족한 문화시설은 물론 외부압력 등으로 활동이 순탄치 않은 상황 속, 1993년 12월 함양군 농민회관 대강당에서 함양 교사를 중심으로 처음 제작된 연극 <상방>이 등장했다.

<상방>은 어촌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조현우 교감이 연출하고, 노정우 장학사가 배우로 참여했다. 연극을 보러 온 관객의 대부분은 초·중·고 학생들이었다. 당시 함양교사극예술연구회에는 정대영 회장과 조현우 교감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극 작업이 처음이었다.

노정우 장학사는 "1993년도에 발령을 받고 농민회관에서 연극을 했는데 그때 무대는 지금의 고운체육관보다 더 컸다"며 "초가집을 짓고 다리를 놓고 마을을 만드는 등 일주일 전부터 무대를 꾸몄던 기억이 있다"고 회상했다.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
 전진석 다볕문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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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정과 행정적 지원을 했던 전진석 대표는 "당시 조명 기구가 없어서 쇠 요강 단지에 구멍을 뚫고 전구를 꽂아 조명을 만드는 등 우리 나름대로 무대를 꾸몄었다"고 말했다.

<상방> 공연 연습은 함양읍 전교조함양지회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는데, 서상면에서 생활하던 조현우 교감과 노정우 장학사는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연습에 참여했다. 연습을 마치면 서상면으로 가는 버스가 끊어져 자동차가 있던 단원이 그들을 데려다주었다고 한다.

조현우 교감은 "새벽 0시 전후로 연습을 마치고 우리를 서상까지 데려다주고 자기는 또다시 읍으로 내려가서 자고 아침에 출근해야 하니 빠른 속도로 운전을 했다"며 "당시에는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아 차를 타면서 내내 겁이 났다"고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학교생활과 연극 연습이 매일같이 반복되는 육체적 고통 속에도 이들은 60여 일 동안 연습에 참여했다. 이들의 작품 제작에 대한 열의와 노력은 광기에 가까웠다.
  
노정우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
 노정우 함양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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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장학사는 "<상방> 준비 시기에는 조현우 선생님이 연출 실력이 없었다. 지금은 잘하지만 당시에는 능력이 안 돼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연습을 했다. 그걸 3개월 가까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 장학사는 "당시 차를 타고 놀러 다니던 친구들은 학교생활과 연극 연습을 병행하는 나보고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당시 시대는 이러한 열정을 받아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공연에 참여한 회원 중 몇몇은 전교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교육청과 학교로부터 '학생들을 선동했다'는 누명을 쓰고, 다른 지역으로 전출당했다. 그 후 함양교사극예술연구회는 동력을 잃고 활동이 중단되었다.

극단 정체성에 대한 고민

그로부터 2년여 뒤인 1996년 연극의 불씨는 다시 살아났다. 서상초등학교 사택에서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복직한 조현우 교감과 노정우 장학사 등이 연극 활동을 다시 시작하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이번에는 기관의 탄압을 피하고자 전교조 조직과는 별도의 문화예술단체를 결성하기로 합의하고, 극단 문화모임 광대를 창단했다. 그리고 바로 그해 5월 30일 위성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조현우 교감이 연출한 작품 <똥이 밥이다>가 2회 공연했다.
 
조현우 지곡초  교감
 조현우 지곡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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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이 밥이다>는 지역 사회의 열악한 농업 문제를 대변했다. 힘 있는 사람들의 삶을 해악과 풍자로 빗대고 끝없는 노력에도 항상 사회의 약자로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대변한 마당극이다.

창단 공연에 이어 1998년 7월에는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일어난 일을 소재로 만들어진 <강쟁이 다리쟁이>를 공연했다.

극단 창단에도 <똥이 밥이다> <강쟁이 다리쟁이> 두 공연 모두 연습 장소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작품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던 경찰서, 군청, 교육청 등이 학교장에게 연습 장소를 빌려주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조현우 교감은 "인적이 드문 함양공설운동장 옆 도로, 함양교회 등에서 연습을 하는 등 기관의 압력과 방해가 늘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과 함께 사회 비판 및 풍자, 거친 대사 등으로 어린이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조 교감은 "당시 극단 내부적으로 사회운동과 교육운동 사이에서 <광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생겼었다"고 말했다. 즉,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으로 공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희망의 불씨

1999년 작품 <사랑의 빛>으로 광대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연수에 참여했던 조현우 교감이 극단 연우무대에서 작품을 가져온 것이 작품 선정 배경이 됐다. <사랑의 빛>은 사회운동 작품의 성격과는 다른 교육적인 내용의 작품으로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1999년 10월 11일과 12일, 함양읍사무소대회의실에서 2회 공연을 했으며, 광대가 주관·주최하고 함양교육청, 전국교직원노동조합함양지회, 함양청소년생활문화교실이 후원했다.

공연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공연을 찾은 관객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대부분이었다. 1, 2회 공연 모두 200여 명의 관객이 찾아 읍사무소대회의실이 좁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공연 도중 관객인 유치원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공연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무대에 들어와 엉엉 울면서 배우의 손을 잡아끌기도 했다.

물론 이 당시까지 연습장소 부재와 배우 부족 등의 문제는 있었다. 특히 극단이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재원이 필요했다. 특히 작품 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으나, 전진석 대표를 비롯한 연극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후원금으로 겨우 충당했다.
 
이점수 금반초 교사
 이점수 금반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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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수 교사는 "작품 제작비가 부족해 모든 것을 단원들이 제작했다"며 "분유통에 백열등을 끼워 간이 조명기구를 만들었고, 은박지로 빛의 크기를 조절했는데 공연 중에 열을 받은 은박지에 연기가 나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사랑의 빛>은 광대의 중요한 성장 발판이 되었다고 한다.

노 장학사는 "연극으로 보면 1등으로 공을 세운 게 <사랑의 빛>이다"라며 "이때부터 함양 관객들의 규모와 관람 수준에 변화가 있었고, 극단의 중요한 전환기가 되었다"고 짚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 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세상을 경험하는 즐거운 놀이터 ‘어린이 연극,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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