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8.30 12:53최종 업데이트 21.08.30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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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치명률, 즉 코로나 확진 후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요? 나라마다 다 다르고 백신접종 진행에 따라 계속 변하고 있지만 코로나 발생 이후 전 세계 통계를 보면 8월 27일까지 2.08%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페루, 멕시코, 수단 같이 7%를 넘어 가는 나라도 있고, 한국이나 핀란드 같이 1%가 채 안 되는 나라도 있습니다. 
 

인구 백만명 이상의 나라 중 싱가포르의 치명률이 가장 낮습니다. 한국도 세계 평균의 절반 이하로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 이봉렬

 
그렇다면 치명률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인구 100만 명 이상의 국가를 대상으로 살펴보면 내전을 겪고 있는 중동의 예멘이 25%로 가장 높습니다. 그럼 가장 낮은 나라는 어디일까요? 동남아시아의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0.08%로 가장 낮습니다. 세계 평균과는 비교 자체가 어렵고, 한국의 0.92%에 비해서도 10분의 1 수준입니다. 놀라운 수치입니다.

코로나 치명률 가장 낮은 나라의 비결

이 통계에는 다른 나라의 사례와는 다른 변수가 하나 있습니다. 전체 확진자 6만 6928명 가운데 82% 정도인 5만 4815명이 이주노동자 기숙사에서 나왔다는 겁니다. 싱가포르에는 30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가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제공하는 기숙사에서 집단 거주하고 있습니다. 한 명이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기숙사 전체에 빠르게 전파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대신 대다수가 젊고 건강했기에 대부분이 가벼운 증상만 보였고 무증상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집단감염이 발생한 이주노동자 기숙사 모습. 5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젊고 건강한 이들이라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 이봉렬

 
그렇다면 이주노동자를 통계에서 제외하면 싱가포르의 치명률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0.08%에서 0.45%로 다섯 배 이상 증가하지만 그래도 아직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세계 최저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낮은 치명률을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이 있지 않을까요?

작년 6월 25일 싱가포르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싱가포르의 코로나19 치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Why Singapore has relatively low Covid-19 death rate)"라는 기사에서 의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싱가포르 엑스포(Singapore Expo), 창이 전시장(Changi Exhibition Centre) 등 대규모 전시 시설을 환자 격리 시설로 개조한 후 증세가 미미한 환자, 병원에서 치료 후 회복기에 있는 환자들을 격리 수용한 후 증상에 따라 치료를 진행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중증환자는 싱가포르 국립전염병센터(NCID, National Infectious Diseases) 등 전문시설에서 바로 바로 치료를 해서 사망자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백신 도입도 치명률을 낮추는 데에 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코로나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고, 환자가 발생하더라도 치료만 제대로 받으면 독감 수준의 치명률이라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7월 한 달만 놓고 보면 치명률이 0.25% 정도로 상당히 낮은 수준입니다 (국립중앙의료원 내부 분석 결과).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코로나를 독감처럼 관리하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른바 '위드 코로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방역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위드 코로나' 체제로 코로나 대응 방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지사도 이낙연 전 대표의 발언을 "용기 있는 말씀"이라며 "현실적 대안을 모색하는 제안"이라며 치켜세웠습니다.

과연 그래도 될까요? 저의 대답 대신 '위드 코로나'의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싱가포르의 현재 상황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싱가포르 월별 코로나19 사망자 수. 8월 들어 사망자 수가 급증했습니다. ⓒ 이봉렬

 
위드 코로나 가능하려면

싱가포르 보건부는 지난 27일,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가 세 명 더 늘었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이로 인해 8월 한 달 간 사망자 수는 18명이 되었고, 이는 코로나 발생 이후 한 달 단위로는 최고치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은 달이 절반이나 되고 사망자가 나오더라도 세 명이 최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8월 들어 뭔가 큰 변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지난 23일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코로나 사망자가 급증하는 이유와 이것이 미래에 끼칠 영향"(Why the surge in Covid-19 deaths in S'pore, and what it means for the future)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델타변이와 노인들의 감염을 사망자 급증의 주된 이유로 꼽았습니다.

델타변이가 우세종이 된 후로는 백신을 맞은 사람도 감염되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싱가포르의 백신 완전접종률은 80%를 넘겨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하지만 최근 4주간 코로나 확진자 중 완전접종자의 수가 1211명으로 1차 접종 완료자 392명,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 480명을 더한 수보다 더 많습니다.
 

코로나 관련 싱가포르 최대의 클러스터가 되어 버린 주롱항 수산시장의 모습 (코로나 발생 전 사진) ⓒ 이봉렬

  
최근 싱가포르에서 가장 많은 감염자가 발생한 곳은 주롱 항구에 있는 수산시장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시작된 코로나가 수산물 배달 차량과 함께 싱가포르 곳곳의 재래시장으로 퍼졌는데 그곳을 주로 이용하던 노인들이 집단 감염되어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노인들의 사망 사례가 이틀에 한 번꼴로 나오고 있습니다. 8월 사망자 18명 중에 14명이 65세 이상 노인이었고, 평균연령은 83.5세였습니다. 델타변이 바이러스의 빠른 감염 속도가 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특정 장소와 만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델타변이 이후 백신은 아무 소용이 없고 코로나에 감염된 노인들은 계속 사망하게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 발생 이후 전체 사망자 55명 가운데 백신 접종을 마쳤음에도 코로나로 사망한 경우는 만성 신장 질환과 고혈압의 병력이 있던 90세 남성의 사례가 유일합니다.
 

백신 접종률이 80%를 넘기면서 코로나 확진자 가운데 백신 맞은 사람의 수가 가장 많습니다. 대신 중증으로 가는 경우는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에 비해 적습니다. ⓒ 싱가포르 보건부

   
지난 한달 간의 통계를 보면 백신을 맞은 사람의 98.8%는 가볍게 앓거나 아예 무증상이었고 1.3%만이 산소 호흡기가 필요한 중증이었습니다. 하지만 백신을 맞지 않은 경우에는 7.1%가 중증을 앓았고 2.1%는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백신을 맞으면 사망을 포함해서 중증으로 가는 경우를 확실히 줄일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 때문에 백신 접종률 80%를 넘긴 싱가포르지만 아직도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백신 접종을 권하고 있습니다. 예약도 필요 없이 아무 때나 가까운 접종센터에 가면 바로 접종이 가능하도록 해 놓고 계속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싱가포르에서 방역은 확진자 수 감소보다 코로나로 인한 중증환자 및 사망자를 줄이는 게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싱가포르 국립대의 알렉스 쿡 교수는 앞서 소개한 <스트레이츠 타임스>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답을 합니다.

(백신 접종을 받기 전에 싱가포르가 델타 변종에 감염되었다면) "끔찍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를 효과적으로 봉쇄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것을 통제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마도 수천 명이 사망했을 것입니다."

백신접종률 80%가 아닌 상황에서 델타변이가 퍼졌다면 지금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었을 거라는 이 발언이 한국이 지금 상황에서 '위드 코로나'로 가도 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 생각합니다.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위드 코로나'가 꼭 필요하지만, 노인 세대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위드 코로나' 보다 먼저 백신 접종률 80% 달성이 선행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8월 29일 현재, 한국의 백신 완전접종률은 28%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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