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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첫 번째 글에서 저는 현재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갈등의 내재화가 두려운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 우선주의적 사고의 위험성, 국방비 부담의 증가, 사회학적 상상력의 부재 등입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사례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네이버 길찾기 서비스에서 평양을 입력할 수 없는 현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관련 기사: 길찾기에 '평양' 입력 하기... 이게 이상해 보이나요).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독자들의 다양한 반론이 가능합니다.

제기할 수 있는 반론들

크게 세 가지의 반론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이 같은 갈등은 필수 불가결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일정 부분 지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소위 반만년의 한반도 역사에서 외세의 침략이 이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반도는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동시에 20세기 가장 강력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제정치에서 소련의 붕괴 이후 그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의 부상을 고려하면 일견 타당한 반론입니다.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국가들은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서방 미디어를 통해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도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국제규범의 관점에서 보면 정상국가로 규정하기 어려운 북한의 존재를 감안하면 한반도의 평화는 요원하다는 입장입니다. 현 국제정치에서 대부분의 국가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국제규범은 '민주주의, 법치, 그리고 인권'입니다. 특히, 소련으로 대변되는 공산주의의 몰락은 이 같은 국제규범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에 유엔(UN)에 가입한 국가들의 경우, 민주주의, 법치, 그리고 인권이라는 가치를 정면으로 배치하면서 국가를 통치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규범의 관점에서 북한을 보면 정상국가로 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1970~80년대 남한과 북한은 모두 독재정권이었기 때문에 동일선상에서 비판받아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남한은 지속적인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으로 민주적 통치가 자리를 잡고 있다면, 북한은 3대 세습이라는 초라한 현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3대 세습 하에서 법치와 인권이 설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동일한 공화정 체제를 가진 두 국가 사이에서 영구적 평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1795년 칸트(I. Kant)의 '영구평화론'의 관점에서 전혀 다른 체제를 가진 남한과 북한의 갈등은 당연해 보입니다.

셋째, 현실적으로 남한과 북한은 한국전쟁을 경험했고, 그 전쟁의 결과가 현재 정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입니다. 남북한의 군사적 현실은 엄연히 전쟁 중입니다.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휴전됐을 뿐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모든 남성은 필수적으로 군대를 가야 하고, 우리의 일상을 제한하는 군사분계선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국민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면 현 대한민국의 법체계상 국가보안법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정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법 체계 상의 오류가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휴전이라는 현실로 인해 많은 시민들은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하거나 노력하는 개인을 향해 법 체계의 내재적 오류 또는 한계보다는 휴전이라는 현실을 적용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대안은 있는가

위에 제시한 반론들에 동조되는 분들에게 저는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냥 갈등을 안고 사시겠습니까?' 이유와 논리는 다르지만 위 3가지 반론들에 내재된 공통점은 주어진 현실을 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결과론적 논의라는 점입니다. 결과론적 논의의 한계는 분석은 용이하지만, 현실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방법론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만약 평화보다 갈등을 원하신다면 더 이상 논의는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만약 갈등보다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국가중심주의적 또는 결과론적 논의에 매몰되어 현실의 갈등을 해결하는 하는 관점이 아니라 현실의 갈등을 고착화하는 관점에 무비판적으로 동요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대안은 '유럽연합'(European Union)입니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때, 가장 많이 제시되는 사례가 독일 통일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통일은 다양한 수단(means) 가운데 하나일 수는 있지만, 통일 자체가 목적(end)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일한 목적은 '평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통일이라는 수단을 통해 평화라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저는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역사적, 국제정치적, 남북한 인식의 맥락을 고려할 때, 두 국가가 하나가 되는 통일보다는 유럽연합이 지난 70여 년 동안 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적 실험을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지만, 유럽과 한반도는 비슷한 시기에 가장 참혹한 전쟁을 경험했습니다. 유럽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2차 세계대전을, 한반도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을 경험했습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는 약 2500만 명, 민간인 희생자는 약 3천만 명에 달하며, 한국전쟁의 경우 약 300만 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은 무의미합니다. 당시 전쟁이 있었던 유럽과 한반도는 초토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전쟁 이후의 두 지역의 변화입니다. 유럽은 전쟁이 끝난 지 5년 만에 프랑스 외무장관이었던 슈만에 의해 '슈만 플랜'(Schuman Plan)이 발표됩니다. 이 플랜은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석탄과 철강을 공동으로 관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것으로, 이 계획이 훗날 유럽연합의 시초가 되는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로 이어집니다. 70년이 지난 현재 유럽은 회원국이 27개국에 이르며, 단일 시장(Single Market)을 형성했습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결과라면, 더 중요한 정치적 함의는 국가들 사이의 갈등을 통합(integration)으로 해결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독일과 프랑스 사이는 물론 과거 수천 년 총구를 겨누었던 유럽연합 회원국 사이에서의 전쟁은 상상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난 2012년 유럽연합은 유럽 지역에서 평화, 화해,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을 향상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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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한반도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한반도에 사는 주인인 우리는 어쩔 수 없다는 패배적, 냉전주의적, 국가 중심주의적, 군사안보적 관점에 매몰되어 상상력이 배재된 인식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두 번의 세계전쟁으로 인해 국제정치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현실 속에서 유럽은 국가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초국가중심주의적 정치적 실험을 하며 역내 평화정착에 성공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1950년 이후 동일한 시기 유럽과 한반도는 '평화의 관점에서' 어떻게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지 비교하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사는 객관적일 수 있어도,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주관성을 줄이고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역사적 맥락과 제 3자적 관점(국제정치적 시각)에서 접근하도록 하겠습니다.

태그:#한반도갈등, #한반도평화, #유럽연합, #통일,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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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박민중입니다. 생일은 3.1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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