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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나를 염려하고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남편이 나를 염려하고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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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때?"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어리둥절 잠시 의도를 짐작하는 사이, 남편은 말을 보충했다. 본인이 아픈 상황에서 마음의 짐을 진 내가 어떻게 지내냐는 말이었다. 살 만은 한지, 평정심은 잘 유지하는지, 마음의 변화는 없는지, 어려운 점은 없는지...

나의 상태를 물을 정도로 조금 기운은 차렸나 싶어 반가웠다. 아픈 내색을 잘 안 하는 사람이었고 구역과 구토에 대한 어려움도 잘 표현하지 않았다. 마음으로 통하고 마음으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헤아리고 하는 것이 어려웠지만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는 시점에 나의 상태를 묻는 질문, 나를 염려하고 있다는 생각에 울컥했다.

생각해 보니 좀 그런 날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 하루 종일 비가 대기 중에 퍼져 있어 맑은 정신도 몽롱하게 만드는 것 같은 공기. 어쩌다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남편의 먹거리를 찾아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혹시나 잘 먹을까 하는 기대로 한 보따리 지고 들어오는 길에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말이었다.

나는 안녕할까?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아야 했다.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억지로 기운을 끌어 모아 힘을 내고 있었고 날마다 혼자 긍정의 기운을 일깨우고 있었다. 나까지 기운 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하얀 거짓말, 굳이 말하자면 그 비슷한 것이었다. 잠시 고민하다 씩씩하게 잘하고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당신이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고 모범 답안이면서 진심을 말했다. 정말 그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았다.

억지로 먹는 것도 이틀 정도, 마지못해 먹는 것으로 힘이 날 수는 없었다. 기운이 없어 걷기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상황이었다. 몇 술 뜬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냄새 때문에 먹고 싶은 생각도 먹고 싶은 것도 전혀 없으니 더는 상도 차리지 말라고 황당한 주문을 했다. 내 상태를 묻던 전날의 감동이 채 사라지지도 않았고 어제의 마음씀을 여전히 곱씹고 있었는데, 오늘은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안녕하지 않았다, 나도 

퇴원하고 어느새 일주일이 지났다. 다시 사흘 후면 2차 항암치료를 위해 남편은 다시 입원해야 하는데, 구토와 멀미 증상은 오늘도 여전한 것 같았다. 아침식사 때는 괜찮은 것 같아 안심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기왕 차린 상까지야 억지로 먹어주었지만 내키지 않는 것 더는 할 수 없다는 단호한 표현이었다. 거르지 않은 행동과 표정이 더해져 당황하고야 말았다.

말짱한 얼굴로 도저히 자리를 지킬 수 없었고 습관처럼 장바구니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나도 지친다고 편히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힘들다고 투정 부릴 수 있다면, 누군가 나의 투정을 가만히 들어준다면,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 줄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무작정 길을 걸었다.

횡단보도에서 엄마와 아빠, 아이 셋이 길을 건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만 손을 번쩍 들고 건너고 있었다. 아이는, 길을 건너고 있으니 차는 멈춰 달라고,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지만 고사리 손은 양쪽의 부모에게 가려 보일락 말락 했다.

아이를 보며, 나도 혼자만 열심히 손을 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을뿐더러 다들 예민했다. 혼자 들고 있는 손이 무의미해 보였다. 누구도 애써 보아줄 마음이 없는 상황에서 위험하니, 안전하게 건너야 하니 조심하라고 혼자 용을 쓰는 것 같았다. 위험을 아는 사람은 마치 혼자뿐인 것처럼 끝없이 이어진 차도에서 계속 손을 든 모양새였다.

무작정 나선 발걸음, 스트레스를 풀어보겠다고 나왔어도 낯선 길은 무서웠고 늘 걷던 길로 접어들었다. 매일 남편과 같이 걸었던 익숙한 길이었다. 마음이 어지러우니 몸도 어지럽고 흔들리는 것 같아 걷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아무 곳에나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떠오르는 생각도 떨치지 않았고 꼬리를 이어가며 스스로를 괴롭혔다. 
 
급격히 추락하는 이 느낌을 떨칠 수는 없을까?
 급격히 추락하는 이 느낌을 떨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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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을 알고 수술, 항암으로 이어지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는 요즘이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나를 포함한 가족 모두가 우울증이라거나 불안감 등의 생각들이 마음에서 자리를 넓혀가는 것도 막을 수 없었다.

어느 정도의 영향은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주변에 남편의 병을 알리지 않았던 것도 병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이전과 같은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서운함이 밀려들고 위로받고 싶다는 것이 서글펐다.

돌봄이 스트레스가 되는 것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살아온 경험으로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이전과 같은 삶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아픈 남편에게 평정심을 되찾아줄 방법은? 이전처럼 가족이 함께 있는 자체로 집이 화사할 수는 없을까? 가족끼리 서로를 짠한 표정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 눈길이 싫었다. 급격히 추락하는 이 느낌을 떨칠 수는 없을까?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남편에게 나타나는 기분 저하, 의욕이 떨어지거나 만사를 귀찮아하는 것, 과다 수면이나 식욕 저하 등은 암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우울증이라고 적혀 있었다. 남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아직까지는 환자의 가족에게 필요하다는 돌봄과 자아 존중감이나 사회적 자본이라는 말까지 끌어오고 싶지는 않았다. 

행복도, 그렇다고 불행도 아닌 

우연히 메모장을 들여다보는데, 남편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기획했던 프로그램 마음 테라피 수업에서 강사는 수강생들에게 고마웠던 사람에게 편지를 써 보자고 했었고, 그때 쓴 편지의 내용이, 전하지 못한 글들이 적혀 있었다. 멀뚱멀뚱 모니터링만 할 수 없어서 수업에 참여하며 몇 자 적은 것이었다. 

본인이 몸이 불편한데도 내 몸의 상태를 먼저 살펴줘서 고맙다고, 피곤한 모습이 보일 때마다 쉬라고 얘기해 주고 식사 준비도 기꺼이 해준 것에 대해서,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지지해 준 것에 대해서도 고맙다고 적혀 있었다. 모든 손짓과 의미가 우리를 완성할 거라고 마무리되는 글이었다.

참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왔다.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특별한 상황,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서 앎은 의미 없었다. 앞으로도 나를 당황하게 할 일들이 많겠지만 적어도 오늘의 방황은 메모장이 효과를 발휘했다. 짤막한, 전하지 못한 편지가 마음을 환기시켜 주는 듯했다. 가끔 내가 쓴 편지를, 그때의 마음을 두고두고 열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로. 시간이 지나 이 시간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한 기억은 아니겠지만 불행했던 상처로 남기고 싶지는 않다. 다시 바쁘게 움직이고 내가 잘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울이 마음에서 조금 걷히는 것 같기도 했다.

태그:#암 투병, #우울증, #일상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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