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대표팀이 7일 오후 8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레바논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2차전을 치른다. 한국은 지난 2일 이라크와 홈 1차전에서 득점 없이 비겼기에 레바논전에서 승점 3점이 더 절실해졌다.

지난 이라크전이 끝난후 한국축구대표팀의 주장 손흥민과 딕 아드보카트 이라크 감독의 '침대축구(시간 지연 행위)'를 둘러싼 장외 설전이 큰 화제가 됐다. 손흥민은 이라크전을 마치고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 결과를 상당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저희가 잘못해서 골을 못 넣은 것이지만 이런 식의 플레이로는 축구에 발전이 없다"고 밝혔다. 이라크가 노골적인 시간지연 행위를 했다고 비판하는 발언이었다. 평소 언행에 신중하고 신사적인 손흥민이 대놓고 상대를 저격하는 발언을 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에 대해 아드보카트 감독은 "손흥민의 발언은 근거가 없다"고 즉각 응수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과의 경기전에도 "우리는 프로다. 시간낭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라크가 침대축구를 할 것이라는 지적을 부인한 바 있다.

하지만 손흥민은 지난 5일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제 생각은 변함이 없다. 이라크 선수들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축구 보는 입장에서는 시간을 끄는 것이 재미가 있을까"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부인에 대해서는 "저와 혹시 다른 경기를 본 것 같다"고 일갈했다. 손흥민의 침대축구 비판은 아시아 각 외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되며 큰 관심을 모았다.

다만 손흥민의 발언 취지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음에도, 의외로 일각에서는 조금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첫 번째는 과연 이라크 선수들이 한국전에서 그 정도로 심각한 시간지연플레이를 했는지, 그것이 승부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사실 팬들 사이에서도 이라크의 침대축구는 이전의 중동팀들에 비하면 그리 노골적인 수준은 아니었다는 반응도 많다. 다만 손흥민이나 황의조 등 직접 현장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분명히 피부로 느낄 정도의 시간지연플레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만큼 외부에서 보는 시각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두 번째는 침대축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는가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아쉬움이다. 손흥민도 무승부에 대한 결과를 침대축구에만 돌리는 핑계처럼 비칠까봐 조심스러워 했다. 손흥민은 이라크전에서 고작 슈팅 1개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벤투 감독은 이라크전 내내 빌드업 축구에만 집착했으나 패스의 정교함과 템포가 부족했다. 이라크의 밀집수비에 대처할만한 다양한 전술변화나 공격루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만일 침대축구가 없었더라면 반드시 이겼을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한국축구가 다음 상대인 레바논을 비롯하여 최종예선 내내 모두 중동팀들만을 상대해야한다. 특히 레바논은 진정한 침대 축구로 더욱 악명 높다. 한국은 레바논과 지난 2차예선에 이어 또다시 한조가 됐다. 지난 6월 홈에서 열린 2차예선 최종전에서는 레바논에 2-1 역전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레바논에 불의의 선제골을 허용한 이후 역전에 성공하기 전까지 수차례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시간을 끄는 행위로 골탕을 먹은바 있다. 화가 난 파울루 벤투 한국 대표팀 감독은 벤치에서 물병을 걷어차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레바논은 아랍에미리트(UAE)와 월드컵 최종예선 원정 1차전에서 0-0으로 비겼다. 역시 볼 점유율과 슈팅 숫자에서는 크게 밀렸으나 집요하고 거친 수비로 끝내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레바논은 이미 최근 한국을 여러 차례 상대해본 경험이 있는데다, 이라크가 한국전에서 시간지연플레이로 어느 정도 재미를 본 것도 확인했다. 상황에 따라 한국이 리드를 잡지못한다면 일찌감치 또다시 침대축구를 시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한 한국에 이번에도 확실한 공략법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중동 원정 경기는 더욱 험난해질 수 있다.

이러한 침대축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동팀들의 특징과 한국축구의 현실을 모두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동의 문화에서 침대 축구는 비매너 플레이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의 일부로 여겨진다. 선진축구에서도 경기중 파울을 적당히 활용하여 경기 흐름을 끊거나 트래쉬토크로 상대를 자극하는 장면이 있는 것처럼, 그저 승리를 따내기 위한 수단의 하나일뿐이라는 사고방식이다. 한국은 객관적인 전력상 아시아의 강팀이고, 상대적 약팀들이 룰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빈틈을 파고드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침대 축구를 막을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애초에 그럴 상황이 나올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 뿐이다. 초반부터 파상 공세를 펼쳐 선제골을 넣는 게 최선이다. 시간지연플레이는 한국이 비기거나 지고 있을 때만 등장한다. 지난 레바논전에서도 한국 선수들과 스치기만 해도 그라운드에 드러눕던 선수들이 한국이 역전에 성공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도 필요하다면 과감한 중거리슈팅이나 롱볼을 이용한 뻥축구 전략을 구사하더라도 실리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 심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심판은 경기장에서 침대축구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침대축구가 만연하는 데는 주로 심판의 경기운영의 문제와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그라운드에 드러눕기, 골킥-프리킥-스로인 상황에서부터 의도적인 시간지연 행위에 대해서는 심판의 직접 의지를 가지고 엄격한 제재가 이뤄져야할 필요가 있다. 선수들도 경고를 받지 않는 선에서 논리정연하게 어필하면서 유리한 판정 흐름과 추기 시간 등을 이끌어내며 심판을 경기의 일부로 활용해야 한다.

침대축구는 어쩌면 최종예선 내내 한국축구를 괴롭히는 화두가 될 수 있다. 축구의 특성상 시간 지연 행위를 100%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할 수 있는 플레이에 집중하면서 최대한 유리한 방향으로 경기 흐름을 통제하기 위하여 노력할 수밖에 없다. 침대축구가 우리에게 통하지 않다는 것을 먼저 실력으로 상대에게 증명해야만 침대축구를 완전히 사라지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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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축구 한국레바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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