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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집 옷을 입고 월동한 체리세이지 핫립세이지
 볏집 옷을 입고 월동한 체리세이지 핫립세이지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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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5억 년 전에 지구에 식물이 생겨나 생명의 기초를 마련해준 이후 한참만인 20만 년 전에서야 호모사피엔스가 출연했다. 호모사피엔스는 10만 년이 지나 언어를 사용하게 되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현재까지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40억 년의 진화 과정에서 지구에 있는 생물 중 인간이 유일하게 받은 선물은 마음, 감정, 느낌 등과 같은 자아의식이다. 인간이 시간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면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된 반면, 자연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되어 그로 인해 불안이라는 저주도 함께 소유하게 됐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기억이라는 과거 경험에 기반을 둔 상상력을 이용해 문화적 진보를 일으켰다. 그 보답으로 우리는 지금의 문명을 누리고 있으나,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방출된 존재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쓰는 문자를 이용해 과거를 기록하고 수학, 과학 등의 학문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더욱 확실하게 확인해줄 뿐이다. 유일하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물들만 자연적 진화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인간이 지구상에서 혼자만의 길을 걷고 있음을 이론적으로 학습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소외되었다는 현실을 인식했을 것이다. 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동·식물을 의인화하거나 인간과의 공통점을 찾으려 하는 흔히 볼 수 있는 노력을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고통 속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애써 찾은 동질감에 감동하면서 결국 인간의 의식에 대해 고찰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간혹 이러한 것이 지나치게 표현돼 우리의 추측이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해야 할 것이 현실에서도 실제하는 것처럼 정의돼 이성적인 판단을 위축시키는 역효과를 주기도 한다.

다만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공감으로 인한 이해를 통해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이에게 심리적 안도감을 주기도 하니 마냥 부적정이지만은 않다.

자연이 주는 힘
 
씨앗을 뿌려 성장한 천일홍
 씨앗을 뿌려 성장한 천일홍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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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로 아이들의 동화, 속담, 그림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최근에는 반려식물이 새로운 대중적 장르로 포함되고 있다. 반려식물이란 관상용부터 인테리어, 요리 등을 위해 식물을 가꾸고 기르며 교감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동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반려식물에 관한 관심이 늘면서, 몇 년 전 시작된 다육식물 열풍부터 대파 대란으로 인한 간단한 농산물 키우기까지 그 종류와 범위가 매우 넓고 다양해지고 있다.

마른 수건으로 난 잎을 하나하나 닦아주시던, 무척 비싸 보이는 분재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는 할아버지만의 소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10여 년 전 고운 말로 키운 양파와 나쁜 말로 키운 양파에 대한 실험을 TV에서 보고 아이들과 직접 실험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예측과 달리 실패로 끝나면서 실망감을 주었다. 최근엔 마당을 갖게 되면서 식물을 키우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됐다. 그런 시도에 보답하는 식물들은 요즘 필자에게 다양한 긍정적 감정을 주고 있다.

척박한 땅에 심어 1년 동안 자라지 않던 산딸기나무를 볕이 좋은 곳에 옮겨 심고, 이듬해 여름에 하루에 한주먹만큼 따먹던 산딸기로 고마움을 느꼈다. 씨를 심어 모종을 만들고 화단에 옮겨 심어 아름다운 꽃을 피워준 백일홍, 과꽃, 접시꽃은 생명의 신비함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필자 키만큼 자란 아보카도
 필자 키만큼 자란 아보카도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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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씨앗에서 나무가 자랄까 의구심을 품으며 심었던 배롱나무 씨앗은 1년 새 두 뼘 정도 자라 자연의 신비함과 함께 뿌듯함을 주었다. 월동이 될까 싶어 볏짚 옷을 입혀준 체리세이지와 하얀 꽃의 핫립세이지 무리가 작년 대단한 추위를 이겨내고 빨간 꽃을 피운 걸 보며 이쁘다고 좋아하는 남편의 말에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이웃집에서 얻어온 알뿌리에서 싹이 나와 꽃을 피운 백합은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올 때 멀리서부터 오는 그 향기 때문에 괜스레 즐거워진다. 담장 대신 심어 놓은 화살나무 잎이 가을에 물드는 모습과 계수나무 잎에서 나는 단내는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실감 나게 해준다. 인터넷을 보고, 먹고 남은 씨앗을 심은 아보카도는 내 키보다 크게 자라 십여 년 전 양파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해주었다.

<용인시민신문> 필자 마당을 소개하는데 뭐 이리 거창하게 시작하느냐고 물어본다면, 씨와 모종을 심으며 미래의 예쁜 꽃을 생각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황량했던 마당 모습을 보는 것이 자연으로부터 소외감을 잊고 싶은 인간의 감정일지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싶다. 필자 또한 진화의 산물이기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반려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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