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축구계가 월드컵 개최주기 변경이라는 화두를 놓고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개최 주기를 2년으로 단축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FIFA는 지난 5월부터 월드컵 격년개최의 타당성에 대한 내부검토와 설문조사에 착수한 것을 시작으로, 21일에는 홈페이지를 통해 현재 2023~2024년까지 완성되어있는 남녀축구 A매치 일정 이후 '뉴노멀(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기 위하여 FIFA의 모든 협회, 클럽, 리그, 대륙연맹들과 협의에 나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는 30일 회원국을 대상으로 온라인 화상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이번 FIFA가 추진하는 월드컵 격년 개최의 정당성을 공론화하기 위한 절차로 분석하고 있다.

FIFA 월드컵은 1930년 시작된 이래 4년마다 한 번 개최되는 세계 최고의 축구 국가대항전으로 자리잡았다. 단일 종목 스포츠 행사 중에서는 최대 규모와 인기를 자랑하는 이벤트이기도 하다. 평소에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축구에 큰 인기가 없는 나라도 월드컵은 본다는 이야기가 나올만큼 그 인지도와 영향력은 막대하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18 월드컵 러시아의 모든 경기 총 누적 시청자 수는 약 35억 7200만 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넘었다.

세계적인 대형 스포츠 이벤트는 대부분 4년 주기로 개최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월드컵만이 아니라 동·하계 올림픽-유럽축구선수권-아시안게임 등도 모두 4년 주기로 돌아온다. FIFA는 지난 100년 가까이 유지되어온 월드컵의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것은 잉글랜드 아스널의 전 감독이자 현재 FIFA의 글로벌 축구 발전 책임자로 활약하고 있는 아르센 벵거의 구상이었다. 벵거는 지난 5월부터 개혁안을 제시하며 월드컵의 개최 주기를 기존 4년이 아닌 2년으로 단축하자는 주장을 내놓았다.

벵거가 제시한 방안을 정리하면 '월드컵은 2년 주기로 짝수 해마다 개최된다', '시즌 중 A매치는 1년에 1~2번만 치러진다', '메이저대회 종료 이후에는 선수들에게 최소 25일의 휴식기간을 보장한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국가대표 대회와 클럽 대회 간의 명확한 분리, 그리고 불필요한 경기수를 줄이자는 것이다.

UEFA 유로 대회를 포함한 대륙선수권대회는 홀수 해에 개최하여 월드컵과의 중복을 방지한다. 선수들은 불필요한 A매치 수시 차출이나 과도한 경기수를 줄이고, 약 한달 정도의 기간에 메이저대회 예선일정을 몰아서 치르게 되면 경기의 질도 높일 수 있고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도 수월해진다는 주장이다.

벵거는 지난 24일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해야할 필요가 있고, 난 그 도박에 뛰어들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벵거는 현재의 방만해진 축구계 시스템에 대하여 "지금 축구 일정들은 명확하거나, 간결하고 현대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선수들을 괴롭히는 것은 반복되는 이동과 시차다. 월드컵 예선 기간을 줄인다면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구단이 온전히 시즌에 집중할 수 있고 선수들 역시 시즌 내내 출전할 수 있다. 경기 수는 늘지 않고 휴식 기간이 늘어난다. 격년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콘셉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FIFA와 벵거의 구상은 전 세계 축구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2년 주기를 반대하는 주요 명분은 역시 월드컵의 권위와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세페린 UEFA 회장은 최근 유럽프로축구클럽협회(ECA) 총회에서 "보석의 가치는 희귀성에 있다. 월드컵이 2년마다 열리면 권위가 약해진다"고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일부 국가들은 FIFA가 월드컵 격년제를 강행할 경우 보이콧 가능성까지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본질은 경제적인 이해관계를 둘러싼 구성원들의 입장 차이에 가깝다. FIFA가 카타르에 월드컵 개최권을 안겨주거나 월드컵 본선참가국을 확대한 정책 등은 그동안 유럽과 남미가 주도해왔던 축구계에서 월드컵을 활용하여 중국과 중동같은 새로운 시장을 끌어들이려는 포석이었다.

월드컵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격년제로 치르면 FIFA의 수익성과 영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실제로 월드컵 격년제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를 비롯한 아시아축구연맹(AFC)은 FIFA의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재 세계 축구의 주류이자 축구 강국들이 몰려있는 유럽축구연맹(UEFA)과 남미축구연맹(CONMEBOL) 등은 반대 입장이 뚜렷하다.

산업적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축구계 구조상 월드컵 개최주기 변경은 연쇄적으로 다른 리그나 대회 일정까지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FIFA의 구상대로라면 각 리그와 연맹의 상황에 맞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자칫 축구 시장 구조 자체를 뒤흔드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벵거는 선수들의 건강과 경기력의 질 향상을 내세웠지만 이미 월드컵 외에도 클럽대항전-대륙선수권-올림픽 축구 등 많은 대형 이벤트가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거의 매년 메이저대회를 치르게 된다면 선수들의 피로도는 더 가중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FIFA가 구성원들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2년제를 추진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이들은 불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2년 주기 반대론자인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이나 카를로 안첼로티 레알 마드리드 감독이 "결국 돈벌이 문제"라며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친 이유다.

월드컵 2년 주기 개최는 팬들의 시각에서도 확실히 일장일단이 공존하는 방안이다. 한국축구 입장에서도 2년 주기 개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섣불리 속단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2년 주기 개최론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문제로 재단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월드컵 개최주기는 오랜 역사와 경험을 거쳐 합의된 전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거의 100년 전에 만들어져서 달라진 세상에 맞게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존재한다. 세계 축구계가 이 문제에 대하여 각자 어떤 논리와 대안을 제시할지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월드컵2년주기 아르센벵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