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 논란으로 한국 배구계에서 모든 활동이 중단된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 자매가 결국 그리스로 진출하게 됐다. 대한배구협회가 국제이적동의서(ITC) 승인을 거부했음에도 지난 29일 국제배구연맹(FIVB)이 직권으로 ITC를 발급하기로 결정하며 쌍둥이의 해외진출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로써 쌍둥이는 그리스 프로구단 PAOK 테살로니키 소속으로 뛰게 된다.

FIVB는 자매가 받아야 할 징계의 범위는 한국 내부에 국한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또한 자매의 이적은 항소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며 향후 어떤 이의제기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만 대한배구협회 역시 FIVB의 유권해석이나 자매의 그리스행 확정과 상관없이 배구협회 또한 이적 수수료를 받지 않고 이적 자체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영, 이다영은 지난 2월 피해자들의 폭로로 학창 시절 학폭 가해자였음이 드러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소속팀이었던 흥국생명은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고,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두 선수는 SNS에 자필 사과문을 올리고 배구 코트에서 모습을 감추며 자숙의 시간에 들어갔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흥국생명은 쌍둥이의 공백을 절감하며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흥국생명은 2021-2022시즌을 앞두고 쌍둥이 자매의 선수 등록을 추진했지만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다음 시즌도 국내에서 뛸 수 없게 됐다. 자매는 시간이 흐르면서 SNS에 올렸던 사과문마저 삭제했고 이후 법무법인을 통해 오히려 학폭피해자를 고소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자매는 공중파 인터뷰에 출연하여 학폭 가해 사실이 실제보다 과장되었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주장했지만 여론은 오히려 더 싸늘해졌다.

궁지에 몰린 쌍둥이 자매는 해외 진출로 돌파구를 모색했다. 해외 에이전시와 계약하면서 그리스에서 자매의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스는 유럽에서도 상위권의 리그로 평가받지는 않으며, 소속구단이 자매에게 제시한 몸값도 국내에서 받던 몸값의 10분의 1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배구협회의 이적 불가 방침과 대중의 비판 여론을 무시하며 FIVB까지 이용하여 해외진출을 강행하는데 성공했다.

악수에 악수 거듭

당장은 쌍둥이가 원하는 대로 판정승을 거둔 것 같아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때 이번 결정은 오히려 자충수에 가깝다. 자매의 행동은 사실상 한국 배구와는 모든 인연을 끊고 팬들에게도 영원히 등을 돌리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쌍둥이를 둘러싼 논란은 배구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전방위적인 '학폭 미투' 운동으로까지 번지는 발화점이 됐다. 이로 인하여 학창 시절 쌍둥이 때문에 고통을 받았던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소속팀-대표팀-배구계-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들이 버젓이 남아있는데 쌍둥이는 아직 어떤 반성도 용서도 구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들이 빠져나갈 길만 찾다가 결국 해외진출을 도피처로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쌍둥이 자매는 학폭 논란이 터질때부터 악수(惡手)에 악수를 거듭해왔다. 학폭 폭로가 시작된 계기는 쌍둥이 자매가 소속팀에서 불화설에 휘말렸을 당시 SNS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 것이었다. 이것이 진짜 피해자들의 분노를 자극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이후 폭로가 이어지자 SNS에 뒤늦게 사과문을 올리긴 했지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거나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죄한 것은 아니다. 자숙이라는 핑계로 잠적해 버렸다. 훗날 공중파 인터뷰에서 쌍둥이 자매는 오히려 소속팀 흥국생명이 자신들의 해명을 가로막고 일방적인 사과를 강요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쌍둥이는 피해자들과 대화하고 용서를 구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응하지 않아서 어쩔수 없이 법적인 수단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철저하게 이기적인 가해자 중심적 사고에 불과했다. 대중들에게는 애초에 자매가 진심으로 사과와 반성을 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회의적인 반응만 굳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쌍둥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등돌인 여론은 이미 최악이었고, 국내에서 선수로서 재기 여부도 사실상 불투명한 데다 피해자들과의 공방까지 장기화되면서 답이 보이지않는 상황에 막막했을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쌍둥이 본인들이다.

설사 아무리 시간이 걸리고 과정이 어렵더라도 피해자와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진심으로 속죄와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자매는 자신들에게 당장 유리한 길, 최대한 쉬운 길만을 찾으려다가 끝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FIVB는 명색이 국제배구계를 주관하는 단체이면서도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논란을 일으킨 선수들을 비호하기 위하여 한국 사회와 한국배구계를 무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자매의 이적을 추진한 그리스 PAOK 구단과 해외 에이전시는 규정의 빈틈을 악용한 꼼수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헐값으로 데려오기 위하여 잘못된 전례를 만들었다. ITC 발급과 그리스 이적이 공식적으로 성사되었다고 해서 이들의 행태가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이 사건은 앞으로 학폭 논란에 대처하는 스포츠계와 한국 사회의 대응에 있어서도 많은 숙제를 남겼다. 대한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 박탈 이외에 자매에게 실효성있는 징계나 후속 대처를 내놓지 못하면서 결국 FIVB를 통한 해외 진출이라는 우회로를 열어주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또한 정부는 최근 스포츠 학교폭력에 대한 징계 수위와 소급적용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처럼 과거에 학폭을 저지른 선수들에게는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회적 경각심 측면이나 제도적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이다영 이재영 학교폭력 FIVB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