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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40대'는 40대가 된 X세대 시민기자 그룹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난,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40대로 가고 싶어."

오래전, 엄마가 한 말이다. 나는 엄마의 그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는 십대도 아니고, 젊고 어여쁜 20대도 아니고 40대라니. 엄마는 그저, "나중에 너도 알게 돼. 40대가 꽤 좋은 나이야"라며 빙그레 웃으셨다.

엄마가 말했던 그 좋은 나이, 40대를 내가 지금 살고 있다. 40대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라서일까. 아직도 그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70대가 된 나의 엄마에게, 40대는 어떤 의미였는지를. 그리고 엄마가 되돌가고 싶었던 바로 그 나이, 40대를 살아가는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지.

오랫만에 엄마와 긴 통화를 했다. 엄마의 지난 세월과 훌쩍 지나가버린 40대의 이야기를 묻는 나의 질문에 엄마는 조금 어색해하시면서도 즐거워하셨다. 엄마의 이야기에 나는 많이 웃었고, 조금은 마음이 뭉클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가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의 따뜻하면서도 간절한 메시지가 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엄마와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엄마를 대신해 '40대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적어본다.

엄마의 40대는 너희들이 전부였어
 
 1944년생 엄마의 오래전 어느날.
  1944년생 엄마의 오래전 어느날.
ⓒ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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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물었지? 엄마의 40대는 어땠냐고. 그런데 참 엊그제 같은 날들인데 별로 기억나는 게 많지 않더라. 엄마도 그게 참 신기했어. 시간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느껴져서, 지나온 삶이 영화 한 편 정도로 압축이 될 것 같은데, 그 영화에 어떤 장면을 넣을 수 있을까. 떠올려보니 그렇게 대단한 장면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40대의 나는 세 남매 모두가 십대, 사춘기를 겪고 있을 때였어. 그때는 사회적 분위기도 그랬지만, 나 역시 내 아이들을 나보다 나은 삶을 갖게 해주겠다는 생각밖에 못했던 것 같아. 엄마가 아는 거라고는 어떻게든 공부 잘 시키는 일, 그것뿐이었어.

너희들 잘 먹이고 입히고, 남부끄럽지 않게 학업에 지원해주는 것. 그게 내 삶에서 최우선의 목표였어. 엄마가 어릴 땐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엄마는 학교 다니는 일조차도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시대를 살았거든. 그래서 가방 메고 학교 열심히 다니는 너희들의 뒷모습만 보아도 마음이 든든했던 것 같아.

엄마도 지금의 네 나이엔 많은 일들이 있었어. 아픈 기억도 있고, 너무 행복한 일들도 많았고, 때로는 절망하기도 했지. 너희를 잘 키우고 싶은데 아빠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힘들었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밖에 나가 일하면서도 공부하는 너희들 챙기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 참 애썼던 것 같아.

몸이 아파 몇 차례 입원도 하고 수술도 했었지. 그 와중에 뒤늦게 사춘기가 온 네가 잘해오던 공부를 손놓고 방황할 땐 어찌나 마음이 새카맣게 타들어가던지... 그 모든 일들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잘 지나왔다. 우리 다 참 애썼다... 그렇게 담담하게 생각하게 돼. 살면서 겪는 대부분의 일들은 그렇게 시간 속에 묻히고 기쁨도 희미해지고 아픈 상처는 아물기 때문인가 봐.

엄마가 다시 4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너희들에 대한 내 기대와 바람, 관심은 똑같을 것 같아. 그렇지만 단 하나 아쉬운 건,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내 꿈을 이루려는 생각을 못했어. 하루하루 너무 열심히 사느라 그랬겠지만... 그건 좀 아쉬워.

그래서 모든 여건이 풍족하고 자유로운 40대가 다시 된다면, 내가 배우고 싶은 것, 공부하고 싶은 걸 아낌없이 나에게 투자할 거야. 그렇게 공부한 다음엔 무얼 할 거냐고? 무슨 꿈을 꿀 거냐고? 글쎄... 내 꿈이 무엇일까. 나,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 그래서 떠오르지가 않네. 꿈이 없다고 하니 좀 이상하니?

그땐 정말, 내 꿈을 꿀 겨를도 없이 살았어. 하루하루 너무 열심히, 치열하게만 산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만 살았는데, 특별하게 무언가를 이룬 것도 없이 평범하게만 살았던 것 같아. 그게 아쉬울 때도 있었지. 그래도 엄마가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산 것만큼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잖아? 그건 너희들이 잘 자라주었기 때문이야. 항상 엄마보다 나은 삶을 살아달라는 마음으로 키웠는데... 그 이상으로 잘 살고 있어서 너무 예쁘고 고마워.

그래서 엄마는, 너희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이런 선택을 해라' 뭐 그런 조언의 말을 해줄 게 특별히 없단다. 지금 그대로도 너희 각자가 모두 충분히 잘 해내고 있고, 살아보니 그렇게 대단한 진리도, 정답도 없는 것 같기 때문이야.

나의 딸, 너무 애쓰지 마

네가 전에 물었잖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고. 그런데 굳이 젊고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지 않아. 에너지 넘치고 젊고 건강한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그만큼 너무 많이 애쓰고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40대는 정말 좋은 나이야. 삶도 어느 정도 살았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 몇 가지는 이미 다 해놓은 상태이고, 조금 안정적인 궤도를 향해 가는 시기이기도 하잖아.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익숙해진 결혼 생활, 꽤 자라서 손이 많이 안 가는 아이들... 그러니 조금 한숨 돌리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나이잖니.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서 돌아보잖아? 40대가 진짜 예쁘고, 건강한 나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나이 들고나서 예전 사진을 들추어보면 40대의 내 얼굴이 제일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20대의 젊음도, 30대의 패기도 물론 좋은 나이지. 하지만 그때의 사진 속 나는 젊고 싱그러운 표정 뒤에 무언가 미숙하고 불완전한 느낌이 있어. '참 어렸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 그래서 그 미숙한 나이를 지난 40대가 조금 더 근사한 것 같아.

엄마는 예전엔, 정말... 늙고, 힘없어지고, 나이드는 게 싫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나이를 들어버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이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젊을 땐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야 했고, 다른 사람들과 내 삶을 비교하고, 더 나아지려고 어떻게든 애써야만 했지. 그런 것들이 어쩌면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해.

그냥 요즘은 참 많은 것들이 평온하기만 해. 또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감사하게 되고 그렇단다. 아빠와 둘이 하루하루 잘 지내는 것, 하루 세 끼 밥 차려먹고 별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 얼마나 감사하니. 이젠 노년의 내 삶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

4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지? 그렇지만 나의 딸, 너무 애쓰지 마. 지금으로도 충분하니까.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았음에 감사하고, 네 주변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 하면 돼. 미안해 하고 후회할 일은 줄이고 네 마음과 감정을 아끼지 말고 표현해.

아마 지금부터는 새로 만날 사람보다는 떠나보내고 헤어지는 사람도 하나 둘 많아질 거야. 네가 언젠가 이별을 해야 하는 모든 인연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없이 대하렴. 너는 다정한 사람이니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엄마로서 내 딸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무엇보다 너 자신을 위해서 살아줘. 무언가를 결정하고 선택해야 할 때, 너무 희생하고 양보하려고 하진 마. 엄마는 내 딸이 스스로의 삶에 당당하기만을 바랐으니까. 엄마가 언젠가 너에게 말했지?

"너는 내가 가진 좋은 점을 많이 갖고 태어난 아이야. 그러니까, 너는 뭐든 잘 해낼 거야."

엄마의 그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 그거면 돼.

40대가 된 X세대입니다.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흔들리고, 애쓰며 사는 지금 40대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낀40대, #엄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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