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위기 상황에도 손흥민은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나 나라를 구했다. 그를 왜 한국 축구의 독보적인 에이스라고 말하는지 분명하게 입증한 게임이었다. 시리아의 벼락같은 동점골에 벤투호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흔들렸지만 주장 손흥민이 믿기 힘든 극장 결승골을 멋지게 차 넣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7일(목) 오후 8시 안산 와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A조 시리아와의 홈 게임을 2-1로 극적으로 이겨 한숨을 돌리고 이란과의 첫 어웨이 게임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손흥민에게 집중된 상대 수비, 벤투호의 대응은?

예상했던 것처럼 시리아의 수비는 손흥민에게 틈을 내주지 않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시리아의 밀집 수비에 막혀 우리 선수들은 전반전에 유효 슛 기록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전반 종료 직전 시리아 골문을 향해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었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했다.

벤투호는 상대 수비가 손흥민에 집중할 것을 예측하고 '황희찬-황인범-송민규'를 적극 활용하는 대응 전술을 준비했다. 그래서 황인범의 공 배급 실력과 송민규의 창의적인 공간 만들기를 믿었던 것이다. 또한 손흥민이 상대 수비수들을 끌고다닌 덕분에 황희찬에게 실질적인 슛 기회가 비교적 많이 생겼다.

하지만 전반전 두 차례의 골대 불운(10분 송민규 헤더 슛, 45+1분 황희찬 오른발 슛)도 모자라 황의조에게 찾아온 결정적인 선취골 기회까지 날아가 버렸다. 43분에 황인범의 기막힌 스루 패스를 받아 황의조가 상대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와 1:1로 맞서는 기회를 잡았지만 점점 좁아지는 간격을 피하는 드리블을 시도하다가 마지막 터치가 길었던 것이다.

이처럼 전반전에 만든 몇 차례의 좋은 기회는 바람잡이 역할을 자처한 '손흥민'과 동료를 더 빛나게 하는 '황인범, 송민규'의 합작품이었던 것이다.

'황인범'의 시원한 왼발과 '손흥민'의 감각적인 왼발

후반전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멋진 첫 골이 시리아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48분, 황희찬의 짧은 연결을 받은 간판 미드필더 황인범이 시리아 미드필더를 속임 동작으로 따돌리고는 왼발 중거리슛을 정확하게 차 넣은 것이다. 시리아 골키퍼 이브라힘 알마가 자기 왼쪽으로 날아올랐지만 도저히 손을 쓸 수 없었던 무회전 골이었다. 

이렇게 어그러지기 시작한 게임의 균형은 더 흥미진진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시리아도 수비만 하러 날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키다리 골잡이 오마르 알 소마를 중심으로 한국 골문을 충분히 위협했고, 세컨드 스트라이커 역할을 맡은 오마르 하르빈의 반 박자 빠른 슛(53분)도 아찔하게 날아와 김승규가 오른쪽으로 몸 날려 가까스로 쳐냈다.

아무리 1골이지만 시리아도 승점 없이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수비쪽 공간이 벌어졌고 자연스럽게 손흥민을 둘러싼 봉인도 풀리기 시작했다. 67분에 손흥민이 골문 정면에서 방향을 바꾸며 왼발로 찬 슛이 구석으로 날아들었지만 이브라힘 알마가 자기 오른쪽으로 몸 날려 막아냈다.

손흥민은 76분에도 황인범의 훌륭한 스루 패스를 받아 오른발로 추가골을 노렸지만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그리고 시리아 벤치에서는 79분에 중대 결단을 내려 센터백 알 아마드 사드를 빼고 공격수 알라 알 달리를 들여보냈다. 과감한 공격을 펼쳐 동점골을 뽑아내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시리아의 이 의지가 통한 듯 84분에 극적인 동점골이 터져나왔다. 오른쪽 측면 크로스가 날카롭게 한국 골문 앞으로 넘어왔고, 우리 수비에 맞고 뒤로 흐른 공을 오마르 하르빈이 잡아서 놀라운 오른발 터닝 슛을 꽂아넣은 것이다. 골키퍼 김승규가 점프했지만 골문 왼쪽 톱 코너로 빨려들어가는 공을 걷어내기에는 모자랐다.

이로 인하여 벤투호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이후 4~5분 가량은 우리 선수들이 가시밭길을 걷는 듯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따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숙제인가를 실감한 시간이었다.

이 난세에 손흥민이라는 영웅이 버텨주었다. 89분에 오른쪽 측면에서 얻은 프리킥 세트 피스 기회를 기막히게 살려낸 것이다. 홍철이 왼발로 감아올린 프리킥을 듬직한 센터백 김민재가 이마로 떨어뜨려 주었고 반대쪽에서 이 공을 기다린 손흥민이 왼발 인사이드 킥을 정확하게 차 넣은 것이다. 과정부터 결과까지 쉬워보여도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극장 결승골이었다.

시리아 입장에서는 5분 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그들에게 기적이나 다름없는 순간을 즐겼지만 축구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뼈아프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88분까지 비교적 잘 막아냈던 손흥민을 그 순간 따라잡는 수비수가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이처럼 축구는 90분 게임이라 해도 어느 한 순간에 요동치는 물결로 큰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명장면이었다.

손흥민 덕분에 벤투호는 한숨을 돌렸지만 이어지는 일정 속에서 우리가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더 골 결정력을 가다듬어야 하고 그보다 앞서 상대 수비수들이 손흥민을 집중 견제할 때 꺼낼 수 있는 전술 카드를 여러 장 들고 나서야 한다.

비록 뛴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조규성이 들어갔을 때 다른 공격 전술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 높이만 생각하고 띄워주는 단조로운 크로스만 생각한다면 지금 B조에서 일본이 겪고 있는 아찔한 상황(1승 2패, 4위)과 비슷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 선수들은 오는 12일(화) 오후 10시 30분 테헤란에 있는 아자디 스타디움으로 찾아가 3게임 전승 및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는 강팀 이란과 만나게 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 A조 결과(7일 오후 8시, 안산 와 스타디움)

한국 2-1 시리아 [득점 : 황인범(48분,도움-황희찬), 손흥민(89분,도움-김민재) / 오마르 하르빈(84분)]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 황의조(69분↔이동준)
MF : 황희찬, 정우영, 황인범(86분↔조규성), 송민규(56분↔이재성)
DF : 홍철, 김영권, 김민재, 이용
GK : 김승규

★ 아랍에미리트 0-1 이란 [득점 : 메흐디 타레미(70분,도움-사르다르 아즈문)]
- 알 와슬 스타디움(두바이)

★ 이라크 0-0 레바논
- 칼리파 국립경기장(도하)

A조 현재 순위
1 이란 9점 3승 5득점 0실점 +5
2 한국 7점 2승 1무 3득점 1실점 +2

3 아랍에미리트 2점 2무 1패 1득점 2실점 -1
4 레바논 2점 2무 1패 0득점 1실점 -1
5 이라크 2점 2무 1패 0득점 3실점 -3
6 시리아 1점 1무 2패 2득점 4실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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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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