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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반려동물은 내게 OOO이다'입니다.[편집자말]
나의 직업은 상담심리사다. 마음이 고통스럽거나 심리적 성장을 원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상담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다. 인간중심상담의 창시자 칼 로저스는 상담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태도로 '공감적 이해',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진정성(혹은 일치성)' 세 가지를 제시했다. 이는 모든 상담의 전제가 되는 것으로 이 세 가지가 진심에서 우러나지 못하면 어떤 상담도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상담자로 살아오면서 나는 이 세 가지를 늘 훈련해왔고, 상담실은 물론 일상에서도 실천하고자 애를 쓴다. 하지만 이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상담 경력이 15년 차에 이른 지금도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불쑥불쑥 내 안의 갈등이나 욕망들이 밀려와 이를 실천하는 것을 방해하곤 한다. 그럴 때 나는 사례집을 읽으며 마음을 다지곤 했다.

그런데 반려견 은이와 함께 살면서부터 한 가지 다른 처방이 생겼다. 바로 은이를 관찰하거나 은이의 모습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함께 한 지난 6년 6개월간 내가 지켜본 은이는 상담자의 필수태도 3가지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탁월한 상담가였다.

[상담자의 필수태도①] 공감적 이해

공감적 이해는 마치 상대방이 된 것처럼 그 사람의 감정에 함께 머물되, 감정에 매몰되지는 않는 태도다. 상대방의 감정을 민감하게 알아차리고, 공감적으로 이해한 후 그 마음을 전달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공감적으로 이해된 감정을 돌려받을 때 우리는 위로받았다고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보다 잘 수용할 수 있게 된다.

남편이 직장에서 엄청난 실수를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웬만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남편이 집에 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공감을 전달할 수 있을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평소에 잘 안 하던 행동이라 어색할 것만 같았다. 그저 남편과 조금 떨어져 앉아 그를 바라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은이가 등장했다. 은이는 남편에게 다가오더니 무릎으로 파고들었다. 그러더니 남편이 얼굴을 감싸고 있는 팔을 부드럽게 핥기 시작했다. 마치 '아빠 마음 내가 다 알아요'라고 공감해주는 듯 했다. 은이의 행동에 나도 용기가 났다. 나는 남편에게 다가가 등을 두드리며 포옹해주었다. 우리 셋은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나누었다. 잠시 후 남편은 눈물을 그쳤고, 샤워를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은이가 와서 핥아주는데 정말 위로가 되더라. 진짜 신기하고 대견한 녀석이야."

이날 은이가 보여준 태도는 '공감적 이해'였다. 말 한마디 없이 이렇게 큰 공감과 위로를 전하는 은이는 탁월한 상담자였다.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 탁월한 상담자를 옆에 두고 있는 것과 같다.
 반려견과 함께 산다는 것은 탁월한 상담자를 옆에 두고 있는 것과 같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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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의 필수태도②]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은 상대방에 대해 어떤 평가나 판단도 하지 않고, 상대방이 느끼는 바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는 태도다. 어떤 감정이나 생각, 행동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가치 있는 것이라 여겨줄 때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다.

주말 밤. 아이의 방에서 짜증스런 한탄이 들려왔다. 나는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오늘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어!"라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아이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다 해내야지만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지만, 그날 아이는 원하는 것을 해내지 못했고, 그런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나는 이런 아이의 성향과 지금의 짜증스런 마음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잘 해내려고 했는데 다 못해서 속상하구나"라며 아이의 감정을 수용해주는 태도가 절실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는 바를 실천할 수 없었다. '저렇게 자신을 몰아붙여서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고 결국 나는 아이에게 존중 대신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면 어떡하냐"며 잔소리를 하고 말았다. 당연히도 아이의 분노는 더 커져만 갔다.

그때 은이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은이는 방문 사이로 빼꼼히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아이 곁에 몸을 밀착하고 앉았다. 딱 아이의 손이 닿는 위치였다. 아이를 지긋이 바라보는 은이의 눈빛은 '많이 속상하구나'라고 말해주는 듯 했다.

아이는 은이를 쓰다듬었고, 이내 눈물을 그쳤다. 그렇게 아이는 마음을 진정시켰고, 우리는 대화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었다. 모두가 은이의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덕분이었다. 은이는 걱정이 앞서 아이의 감정을 존중할 수 없었던 나보다 훨씬 나았다.
 
[상담자의 필수태도③] 진정성


진정성(혹은 일치성)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부인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즉,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알아차리고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는 걸 뜻한다. 이는 앞서 이야기한 '공감적 이해'와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표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며칠 전 부부 싸움을 할 때였다. 사소한 일이었지만, 우리는 감정이 격해졌고, 마침내 언성이 높아졌다. 은이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더니 '깽깽' 거리며 짖어댔다. 싸우는 모습을 보고 느낀 불안감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었다. 마치 '엄마 아빠 싸우는 것 싫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은이의 짖는 소리에 소리를 질러대던 우리는 침대에 앉아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은이는 침대에 뛰어올라 나와 남편 사이에 배를 드러내며 누웠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번갈아 가며 툭툭 건드렸다.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라는 표시였다. 우리의 언성이 낮아지자 기분이 좋다는 뜻 같았다. 우리는 은이의 사인을 거부할 수 없었고 함께 은이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마음이 점점 더 차분해졌고 곧바로 화해의 길로 들어갔다.

나는 이날 우리 부부가 화해하는 데 은이의 몫이 컸다고 생각한다. 은이는 우리를 지켜보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싸울 땐 불편하고 불안하다고, 화해를 했을 땐 기쁘다고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감정과 행동을 일치시키고 적절하게 개방한 진정성 있는 태도였다. 은이의 이런 태도는 우리의 다툼이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했고, 언성을 높이기보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했다.
  
바라보기만 해도 옥시토신을 분비시켜주는 나의 반려견 은이
 바라보기만 해도 옥시토신을 분비시켜주는 나의 반려견 은이
ⓒ 송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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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은이는 로저스가 말한 '공감적 이해',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 '진정성'을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탁월한 상담자다. 은이는 우리 각자의 마음이 힘들 때, 혹은 서로가 갈등 상황에 있을 때 능숙한 상담자의 태도로 우리를 대한다. 덕분에 은이와 함께 하면서 우리 가족은 훨씬 편안해졌다.

그런데 나는 얼마 전 책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반려견과 눈을 맞추거나 쓰다듬을 때 사람에게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옥시토신은 사랑을 솟게 하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이 나온다는 것은 은이의 상담자 같은 태도의 효과가 신체적으로 유의미하다는 의미다. 은이는 약물치료의 몫까지도 해주고 있는 셈이었다.

로저스는 앞의 세 가지 태도가 일상으로 확대되어 사람들이 서로를 이런 태도로 대할 때 보다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이 진실임을 은이와 함께 하면서 체험할 수 있었다. 진정성 있는 태도로 공감과 존중을 실천하는 반려견과 함께 하는 것은 어쩌면 평화를 만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은이가 가져온 변화는 정말 놀랍기만 하다. 그러니 이런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은이야. 내 삶 속에 들어와줘서 정말 고마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태그:#반려견, #교감, #상담, #옥시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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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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