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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가을비가 내렸다. 고구마를 캐려고 넝쿨 다 걷어낸 고구마밭이 밤새 걱정이었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면 밭이 젖어 비가 그쳐도 사나흘은 고구마를 캘 수 없을 것이다.

"비가 계속 오네."

창 밖으로 똑똑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가 밤새 이어지고 있었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 이런저런 걱정에 뒤척이는데 아내도 잠에서 깨었는지 낮게 중얼거렸다.

"그러게. 고구마 캐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네."
"그거야 며칠 더 말리면 되지. 그런 일로 잠도 안 자?"
"걱정이 되니까 그러지. 비 그치면 추워진다는데."


걱정은 비단 고구마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렇게 며칠씩 가을비가 내리면 모든 가을걷이가 뒤로 밀리면서 일정이 꼬여 버린다. 들깨도 다 베어두었으니 곧 털어야 하고, 팥과 콩도 거의 익어가고 있어서 하루하루 일거리를 정해둔 상태였다.

게다가 올해는 옆집 예삐네와 봉점 아지매 고추밭 고춧대를 뽑아주기로 했고, 영남아지매 고춧대도 뽑아야 할 판이다. 고춧대 뽑는 일은 나이 많은 여자 농부들이 하기엔 힘에 벅찬 일이다.

"내년부턴 고구마 농사 그만하지. 힘들잖아."
"그럴까 해. 우리 먹을 만큼만 심을까 생각해."


아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나도 풀이 죽었다. 사실 고구마 농사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퇴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밭이랑 한두 번 긁어주면 넝쿨이 우거져 제초도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이게 남는 농사인지 밑지는 농사인지

그런데도 고구마 농사를 포기할까 생각한 이유는 고구마를 캐기도 어렵고, 캘 사람도 구할 수 없어서였다. 거기에 더해 고구마를 팔기도 어려울 뿐더러 이게 남는 농사인지 밑지는 농사인지 계산이 서지 않는 점도 있었다.

"주문은 많이 들어왔어?"

아내가 모로 돌아누웠다.

"제법 들어왔어. 그래도 그거로는 모자라. 올해도 고구마 많이 남겠네."
"몇 상자 주문했어?"
"육십 상자쯤 돼. 백 상자는 들어와야 하는데."


사실 해마다 고구마를 사려는 사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고구마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고구마가 다이어트에 좋은 간식이라는 말이 나돌던 해는 우리 먹을 것도 남기지 못했었다.

해마다 주문이 줄어드는 형국이라 몇 년째 고구마 값을 올리지도 못했다. 그사이 농자재 값도 인건비도 다 올랐지만 우리 고구마 값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산돼지도 들어오지 않았고, 날씨도 좋아 고구마는 풍작인 듯 보였다. 이 정도 농사면 400평 밭에서 상품으로 가치 있는 고구마를 백 상자는 거뜬히 캘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내일 모레면 우리 서하 생일이네."
"그러게. 뭘 하나 선물로 사줘야지? 뭐를 줘?"
"솜사탕 만드는 기계가 있던데."


퍼뜩 며칠 전 다녀 간 그 민박 손님이 떠올랐다. 저녁밥을 먹은 뒤 그 가족은 조그만 플라스틱 통을 가운데 놓고 마루에 모여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아내가 기웃거리자 솜사탕 만드는 기계라고 자랑했다. 신기했다. 그 플라스틱 통 가운데 설탕을 넣고 조금 기다리면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하얀 솜털이 나와 막대기에 쌓이면서 솜사탕이 만들어지는 거였다. 그걸 본 서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저런 것이 있나 싶은 표정이었다.

"보름이에게 하나 장만해 보라고 하지.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될 걸? 그 기계."
"보름이도 생각하고 있더라고. 오만 원쯤 한다던데."
"고구마 두 상자 값도 안 되네. 뭐. 그걸로 주문하지."

 
고구마밭에서
 고구마밭에서
ⓒ 김석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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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놓고 돌아눕는데 문득 고구마 농사 결산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해졌다. 고구마 두 상자면 손녀 생일 선물을 구해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지만 올해 고구마 농사로 얼마나 벌어 살림살이에 보탤 수 있을지 따져보고 싶었다.

고구마 농사를 계속할까 말까 결정을 내리려면 그래도 수지를 셈해봐야겠다 싶어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고구마는 개울 건너 두부박샌댁 밭 200평, 언덕바지 복분자 나무 걷어낸 밭 200평에 심었다. 이 산골에서 고구마 400평이면 적은 농사는 아니었다.

먼저 트랙터 불러 밭갈이에 비닐 멀칭을 했으니 그 비용이 25만 원이었다. 유기농자재 유박을 4포 뿌렸는데 그게 4만 원, 고구마 모종을 46만 원어치 구했다. 고구마 심을 때 영남아지매와 두부박샌댁이 하루 종일 일했으니 인건비 16만 원이 나갔다. 고구마를 캐려면 또 인건비 40만 원은 나갈 것이고, 거기에 쉴참과 점심 밥값을 더하면 어림잡아 10만 원은 들어가겠지. 그래 저래 지출 비용은 140만 원을 넘겼다.

올해도 예년처럼 고구마 10kg 한 상자를 3만 5천 원에 주문을 받았다. 총 80상자를 판다고 계산하면 280만 원, 지출 비용을 제하면 남는 것은 140만 원인 셈이다. 한숨이 나왔다. 감자 농사, 고추 농사도 이렇게 따져보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콩 농사 들깨 농사도 오십 보 백 보겠지. 우리들 농부의 농사 결산보고서는 대개 이럴 거였다.

'열심히 살아라'가 덕담일 수 없는 세상

이 나라 어디쯤에 '대장동'이라는 지명이 있다고 한다. 그 땅을 개발하고 투자한 회사에서 5년 남짓 일한 청년이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았다고 한다. 1호부터 7호까지의 등기 임원이 있고 그들이 챙긴 불로소득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대장동'이 '대장동'에만 있겠는가. 이 나라 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곳은 온통 '대장동'일 것이다. 산골마을 마을회관 신축 현장도 대장동이요, 고갯마루 휴양림 조성사업 현장도 대장동이요, 읍내 변두리 언덕바지에 짓고 있는 저 아파트 공사 현장도 대장동이다.

크고 작음, 많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어딜 가나 부정과 부패가 꿈틀거린다. '열심히 살아라'는 말은 이미 덕담일 수 없는 세상이다. 50억 원의 불로소득을 눈도 깜짝 않고 집어삼키는 저 괴물들의 나라. 법조·언론·정치·자본이 똘똘 뭉쳐 현장을 만들고 빨대를 꽂는 나라. 법은 가진 자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우리들 피와 땀을 뜯어먹지.

우리는 고구마 두 상자 팔아 5만 원쯤 하는 솜사탕 기계를 손녀 생일선물로 장만해 주면서 매사에 고맙고 감사해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 억울하지만, 또 그렇게 살아서 행복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단디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산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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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다 경남 함양군 지리산 기슭으로 귀농하여 농부가 되었다.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틈틈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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