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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주거정책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으로부터 야기된 청년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작동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어떨까? 청년주거정책은 누군가에게는 유의미한 도움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또다시 차별과 배제의 경험으로 남는다. 이번 회차에서는 선우씨와 함께 청년주거정책의 태생적 한계, 청년주거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미처 감지하지 못했을 편견을 들여다봤다.

내 나이가 몇 살이더라도 자기만의 방이 보장되길 원해 

선우씨는 앞으로도 면적, 단열, 방음 요소가 잘 갖춰진 '원룸'에서 '혼자' 살아가길 희망할까? 그는 미래에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 분리된 공간이 있길 바란다면서, 이를 고려하면 누군가와 같이 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그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민달팽이유니온 활동을 하며 다양한 청년을 만나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거비 마련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혹시 누군가와 동거한다 해도 최소한 각자의 방이 있길 바랐다. 때로는 방을 넘어 각자의 집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었다.

청년주거문제는 무엇인가? 청년주거정책은 누구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여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청년주거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는 이행기에 놓인 청년 개인이 구조적 불평등 문제로 인해 겪는 주거불안을 해소해주기 위한 안전망 구축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민달팽이유니온이 오랫동안 주거불평등에 따른 주거 빈곤 문제를 겪는 청년, 주거권 침해를 겪는 청년에게 주목해온 이유다. 이 기본값을 합의하고 난 다음 단계부터는 보다 다양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수 있다. 이 관점으로 현행 정책을 돌아보면 몇 가지 특이한 지점이 눈에 들어온다.

청년 써먹기에만 몰두하다 놓쳐버린 기본기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상대적 빈곤은 일반적으로 평균소득 하위 50%에 해당하는 전체를 말한다. 한국은 주거급여 제도를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주거비 지원 정책이라 정의하며, 청년주거급여의 경우 중위소득의 45% 이하 계층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주거복지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공공임대정책과 함께 양대 산맥을 이뤄야 할 주거급여제도의 지원 대상 규모가 아직까지도 OECD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덧붙여, 청년에게는 한 가지 허들이 더 있다. 만 30세 미만의 미혼 청년은 자신이 속한 가구가 수급가구가 아니면 급여를 신청조차 할 수 없다. 2021년에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 그나마 수급가구에 속해 있던 청년은 분리 독립을 입증하면 별도 주거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 거리에 있는지가 분리 독립으로 취급하는지가 매번 문제가 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예외 없이 원칙적으로 20대 청년도 주거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는 권고안을 발표한 바 있다.

많은 청년주거정책이 휘황찬란하게 새로 생겨나지만 정작 최전선에 위치한 주거급여 제도는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누적된 청년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지점이다. 연령에 따라 누군가의 주거권은 좀 더 가벼운 것으로 취급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현재 청년층이 겪는 주거문제는 그들의 생애를 따라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사회의 책임을 여전히 가족에게 또는 개인에게 떠넘기는 정책 기조를 유지한 채 화려한 청년주거정책만을 쏟아내는 모습에서 사회가 고수하는 청년에 대한 편견을 찾을 수 있다.

나는 임대차3법을 환영하는 세입자

선우씨는 앞으로도 세입자로 살아갈까? 그에게 '임대차3법은 악법이다, 폐지해야 한다, 임대인과 세입자 모두가 힘들다 ….' 등 2020년에 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단언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봤을 때 누군가는 임차인으로 살 가능성이 높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세입자 보호에 대해서 너무 임대인 입장으로만 기사를 쓰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며 그러한 논쟁들을 무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거(임대차3법)에 화낼 사람은 내가 아니고 임대인들이겠지? 나는 임대할 일은 없을 거 같으니까 넘어가자 좀."

선우씨에게 세입자 청년들에게, 또는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세입자 권리에 대해 이야기 했다.

"세입자인 게 죄는 아닌데, 돈 냈으면 돈 낸 만큼 당당하게 요구할 것을 요구하고, 잘못된 것에는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고, 연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임대차3법이 바뀌었지만, 법이 개정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입자 권리 증진이 바로 이뤄지진 않는다. 법 하나 바뀐다고 수십 년 동안 고착화됐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바로 중단될 리 없다. 세입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세입자로 처음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일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100년이 넘었다는 베를린 세입자 협회, 바로 그 공동체가 베를린 부동산기업들의 24만 채 주택에 대한 사회화에 대한 국민 투표를 이끌어냈다는 이야기를 곱씹으며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직시한다. 세입자라는 이유로, 부모를 비롯한 원가족으로부터 자산을 부여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상적으로 주거권을 박탈당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우리의 일상이 변하기 위해서는 분명 더 많은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때로 제도 자체의 변화를 만들 것이고, 세입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 연대를 통해 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기성세대 논리와 다른, 새로운 공동체가 필요해

다양한 주거 문제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산재해있다고 해서 우리가 집에서 살아가는 것을 중단할 순 없다. 그곳이 어디든 우리는 살아간다. 주택이거나 주택이 아닌 공간, 심지어 비적정 주거공간에서도 우리는 쉬고, 먹고, 잠에 들고, 어떤 활동을 한다. 심신회복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들기도 한다. 모두에게는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선우씨는 그러한 공간을 공동체 주택에서 실현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다. 그는 책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테라스나 옥상이 있으면 좋겠어, 비혼주의자이지만 좋은 공간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어, 좀 더 쾌적한 1인 주거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 등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누구에게나 보다 안전한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하며, '비슷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취향을 공유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들이 더 많은 사람이 접근 가능하도록 확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1인 가구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고려해 설계된 집을 만나본 적 있는가? 선우씨는 본인이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는 아직 본적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 지어진 집들은 거주하게 될 사람의 가구 형태와 전혀 관련 없는, 완전한 정상가족 기준으로 설계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실제로 나중에 돈을 많이 벌게 되어도 같이 살게 될 사람과 각자 원룸이나 투룸에 사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도는 아직 이러한 삶의 양식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다. 행복주택에 입주하면 최대 6년을 거주할 수 있지만, 중간에 결혼해 신혼부부가 되면 10년까지도 거주할 수 있다는 점, 청년월세지원정책은 생애 단 1번만 지원 가능하다는 지점에서 한계선이 보인다. 청년세대가 겪는 주거문제를 한시적인 것으로 여기고, 1인 거주 형태 또한 일시적인 것으로 규정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정책의 한계선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도움이 될 수 있기도 하지만, 몇 가지 우려를 낳기도 한다. 청년은 언젠가 1인 가구 생활을 졸업하고 결혼과 출산을 이행하는 단계로 넘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자칫 다양한 가족구성을 간과한 채 청년주거정책과 저출산대책을 동일시하는 착시현상을 만들기도 하니 반드시 유의해야 한다. 또한, 1인 가구는 14제곱미터 또는 고시원 또는 랜덤으로 방을 배정해주는 쉐어하우스에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은 자칫 개인이 가진 주거권 자체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낳기도 하니 이 역시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

선우씨와 함께 청년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일상을 나누고, 우리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 하고 싶은 장면을 돌아봤다. 자산과 소득이 적거나 혼자서 살아도 여타 사회적 자원을 포기 하지 않을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위한 주거공간과 공동체를 누릴 수 있다면, 이는 한국 사회의 최저주거선을 높이는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지 않고 사회가 책임지는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 기성세대가 정상성을 부여해왔던 생애주기별 주거정책을 새롭게 전환하는 것, 늘 등한시 되었던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 민달팽이유니온은 선우 씨와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정리한 위 논의지점을 비롯해 많은 청년 당사자들과 다양한 사회적 논의들을 이야기 나누며, 청년을 둘러싼 주거 문제를 당사자의 목소리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태그:#1인가구, #청년주거, #청년, #청년정책, #임대차3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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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권 보장 지금 당장!'을 외치며 청년 세입자 대상의 교육, 상담, 현장대응 그리고 제도개선을 위한 실천행동을 함께 합니다. 무법지대와 다름없는 주택임대차시장에서 세입자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관행에 2013년부터 함께 대응해왔고, 보증금 먹튀 대응 센터 운영 및 법안 발의 등 세입자 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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