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26일, 서울 합정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첫회 서복경 대표의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모습. 8번의 강의를 마치고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6월26일, 서울 합정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첫회 서복경 대표의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 모습. 8번의 강의를 마치고 마무리할 시간이 왔다.
ⓒ 김대현

관련사진보기

 
피곤한 주중을 보내고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 그 중 꼬박 3시간을 배움에 쏟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낮잠을 자더라도 달콤할 그 시간을 털어 공부하는 대단한 업적을 최대 여덟 차례나 달성한 수강생들이 지난 16일 모였다. 서울시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가 후원하고 정치발전소가 진행하는 <우리 동네 공약만들기>의 마지막 시간은, 졸업식의 애틋함과 출정식의 비장함이 어우러진 특별한 분위기에서 꾸며졌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OOO입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토론하며 느낀 것들을 버무려, 자기 동네에서 동료 시민들께 전하는 3분 유세가 시작됐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때로는 나직하게 때로는 기세 좋게 전하는 메시지에 힘이 느껴졌다.

수강생들이 언젠가 동네 골목에서, 공원에서, 사거리에 댄 유세차 위에서 지금처럼 유세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출근길 시민을 응원하고 퇴근길 시민을 위로하는 그들의 말에 많은 이들이 귀를 기울여 주기를, '다 고만고만한 정치꾼들'로 손쉽게 무시당하지 않을 만한 실력을 그 날에도 유감없이 뽐내길 빌었다.

"정치는 시민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말... 그렇다면 
 
정치발전소 조성주 상임이사(대표).
 정치발전소 조성주 상임이사(대표).
ⓒ 정치발전소 홈페이지

관련사진보기


조성주 정치발전소 대표의 짧은 메시지가 이어졌다. 격려나 응원의 말은 알맞지 않은 것 같다며 운을 뗀 그는 "정치는 시민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했다. 명확하고, 서늘했다. 구원은 종교의 영역이지 정치의 영역이 아닌데 자꾸만 정치가 도그마에 빠져 이룰 수 없는 약속으로 시민을 현혹시킨다는 지적이었다.

'시민을 구원하겠노라'고 호도하는 정치인은 그래서 경계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치는 현실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고단한 과정 속에서 열리는 가능성에서 생명력을 얻어야 한다는 조성주 대표의 말은 단호했다. 이상주의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타당한 그의 말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그렇기에 좋은 정치인, 아니 최소한 나쁘지 않은 정치인이 되려면 하늘에 떠다니는 공허한 약속이 아니라, 손에 퉁겨지고 발에 차일지언정 땅에 발붙인 약속을 해야 한다. 정치는 신에 대한 믿음이 아닌 인간에 대한 신뢰로 지탱되기에. 정치인과 유권자가 주고받는 건 하늘나라 교리와 신앙심이 아닌, 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보겠다는 약속과 신뢰이니 말이다.

고마울 필요가 없는 사회... 연대 통해 모두를 위한 '한걸음' 내딛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수중에 수조 원의 재산이 있고 선한 의지로 이 돈을 쓰고자 한다면 많은 동료 시민의 삶을 즉시 개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오래 걸리고 합의하기도 어려운 제도를 만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아쉽게도 이런 상상은 두 가지 이유로 현실이 될 수 없거나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단 수조 원은커녕 몇 만 원을 빌려달라는 지인의 요청에도 선뜻 응하기 어려운 것이 나의 형편이자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소수 재력가의 선한 의지에 기대어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시민 간 연대를 돈에 의한 시혜와 수혜의 원리로 바꿔 놓는다.

개인의 선행은 미담을 낳지만, 법과 제도는 미담이나 훈훈함을 풍기지 않는다. 사회적 부를 재분배하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일은 한 번 제도화되면 이내 당연한 것이 되고 그 누구도 고마움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일상 속 민주주의의 흔한 풍경이어야 한다. 누군가는 늘 베풀고 누군가는 늘 고마워하는 세상은 민주적이지도 평등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두의 더 좋은 삶을 위한 제도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공약이란 공직 후보자의 공적 약속인 동시에, 너와 나 공히 받아들일 만한 사회적 계약이어야 한다.
 
8월28일 진행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중 갈등관리 관련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의 강연.
 8월28일 진행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 중 갈등관리 관련 오진아 소셜디자이너 두잉 대표의 강연.
ⓒ 소셜디자이너 두잉

관련사진보기

  
살기좋은 우리 동네, '공약'이라는 씨앗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런 소감을 나누며 헤어졌다.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은 정례화돼야 한다' '알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배우고 고민할 수 있었다' '다들 너무 고생 많았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동료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소감들이었다.

8강짜리 <공약만들기> 프로그램은 수강생들에게 당장 그럴듯한 공약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대신 좋은 공약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지를 고민하게끔 만들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사람부터, 동네 공약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탐구정신으로 찾아온 사람까지. 모양도 색깔도 다양한 이들이 <공약만들기> 프로그램에서 한 자리에 어우러졌듯, 동네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복닥거릴 것이다.

나는 희망한다. 누군가의 자부심이 되고 믿을 구석을 만들어 주는 공약이 더 많이 만들어지기를. 그 공약이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고 불편해?"라는 시민의 푸념에 대해 준비된 대답이기를. 뜬구름만 잡고 끝나는 속 빈 강정 공약이 아니라, 시민들 희망을 넉넉히 이룰 수 있는 약속이기를. 우리 동네를 바꾸는 공약은 우리 동네에서부터 빚어져야 하니까 말이다.

☞ '2021 동네공약 만들기' 이전 기사 모아보기
 
6월~10월까지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가 진행된다. 모집 포스터.
 6월~10월까지 정치사회서점 정치발전소에서 "정치-력: 우리동네 공약만들기"가 진행된다. 모집 포스터.
ⓒ 정치발전소

관련사진보기


태그:#공약만들기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당인 겸 청년마을활동가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그럴 수 있지"와 "오히려 좋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