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5 18:51최종 업데이트 21.10.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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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6만5천t급) 항공모함 전단. 31일부터 동해에서 우리 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한다. 2021.8.31 ⓒ 퀸 엘리자베스 항모 트위터

 
브렉시트를 단행해 동쪽인 유럽에서 발을 뗀 영국이 지금은 훨씬 동쪽에서 활약하고 있다. 인도양과 태평양이 영국의 새로운 무대가 되고 있다. 인도 시각으로 21일부터 27일까지 인도양에서 영국 육·해·공군이 인도군과 연합군사훈련을 전개한다.

인도 일간지 <인디언 익스프레스>(indianexpress)의 현지 시각 22일 자 기사 제목인 '인도·영국, 사상 최초의 3군 합동군사훈련 개시(India, UK begin first-ever joint tri-services exercise)'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국이 과거 식민지인 인도와 함께 이런 훈련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도 시각으로 21일 밤 발행된 <이코노믹 타임스>(The Economic Times) 기사 '인도-영국 합동훈련: F-35B 5세대 전투기, 뭄바이 인근 아라비아해에서 이륙(India-UK joint exercise:F-35B fifth generation fighter aircraft takes off in Arabian Sea near Mumbai)'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훈련에는 미군도 참가했다.

위 기사는 F-35B 전투기가 한때 봄베이로 불렸던 인도 서해안 뭄바이의 인근 해역에서 퀸엘리자베스호로부터 이륙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영국 항공모함과 통합된 미합중국 F-35 전투기가 인도 공군과 함께 훈련에 참가하고 있다"며 "인도 조종사들은 매우 유능하고 전문적"이라는 미군 관계자의 칭찬을 소개했다.

2017년 8월 16일 시험 항해를 끝내고 모항인 영국 포츠머스항 해군기지에 입항한 퀸엘리자베스호는 전성기 영국 해군의 부활을 상징한다. 이 항모에 들어간 돈만 해도 30억 파운드, 한국 돈으로 약 4조 5000억 원이다.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해군의 부활을 꿈꾸는 퀸엘리자베스호의 활동 무대에선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다. 인도 시각으로 21일 밤에 아라비아해에 있었던 퀸엘리자베스호는 동아시아에도 수시로 출현한다. 일례로 지난 8월 24일에는 오키나와 남쪽 해상에서 네덜란드·미국 군대와 연합훈련을 했고, 이번 달 4일에는 남중국해에 진입해 중국을 긴장시켰다.

글로벌 브리튼 전략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에 영국 정부가 퀸엘리자베스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자국의 새로운 목표와도 관련이 있다. 유럽연합을 떠나는 대신에 전 세계를 무대로 세계 강국의 이미지를 되찾겠다는 '글로벌 브리튼' 전략이 그것이다.

지난 3월 16일 새로운 세계전략을 표명하고자 영국 내각이 발표한 '경쟁적 시대의 글로벌 브리튼: 안보·국방 및 개발과 외교정책의 통합적 검토(Global Britain in a Competitive Age: the Integrated Review of Security, Defence, Development and Foreign Policy)'라는 정책 보고서에서도 영국의 새로운 도전을 읽을 수 있다.

이 보고서 서문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유럽연합을 떠난 영국은 우리 역사의 새로운 장을 향해 출발했습니다"라며 "우리는 세계를 향해 열리게 될 것"이라고 한 뒤 "향후 수년간 행동의 능력과 속도는 우리가 우리 시민들을 위해 번영과 안보를 강화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세계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통해 번영은 물론이고 안보까지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해 활동 무대를 넓히는 영국의 모습을 이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1968년에 영국은 수에즈 운하 이동(以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그해 1월 18일 자 <중앙일보> '세계의 영국에서 구주(歐洲)의 영국으로'는 노동당 출신의 헤럴드 윌슨 총리가 해외 군사비 및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감축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번 긴축재정계획은 작년 11월에 단행된 파운드화의 평가절하에 이어 영국의 경제위기를 구하기 위한 또 하나의 대결단"이라고 한 뒤 이렇게 보도했다.
 
이미 보도된 일련의 계획 가운데서 세계의 주목을 가장 많이 끄는 것은 1971년 말까지 수에즈운하 이동에 주둔하고 있는 영국군을 철수시키겠다는 것이다. 현재 수에즈운하 이동에 주둔하고 있는 영군 수는 페르샤만 지역에 6천 명, 싱가포르 및 말레이시아에 3만 2천 명, 홍콩에 약 1만 명 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홍콩에 있는 군대만은 철수 계획에서 제외한다고 윌슨 수상은 밝혔다.
 
이 보도가 나오기 23년 전인 1945년까지만 해도 세계인들이 생각하는 최강국은 영국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그해 이전의 영국은 과거보다는 약해졌고 미국보다 경제적으로 뒤처져 있기는 했어도, 정치적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세계 최강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랬던 영국이 인도양과 태평양에서 물러가는 상황을 두고 당시의 세계는 위 기사 제목처럼 '세계의 영국이 유럽의 영국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위 기사에 따르면 미국 신문들은 '영국은 이제 유럽의 도시국가로 전락했다'고 혹평하기까지 했다.

지금의 영국 국력은 1968년보다 결코 강하지 않다. 오늘날의 영국이 단독의 힘으로 아시아로 회귀하지 못하고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편승하는 데서도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그런 영국이 글로벌 브리튼을 외치며 동진해 오고 있으니, 제국주의 시절의 대영제국이 몰려올 때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본에도 편승하는 영국

그런데 그 다른 느낌을 근거로 영국의 동진에 대해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영국이 미국에만 편승하는 게 아니라 일본에도 편승하는 방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퀸엘리자베스호가 포츠머스항에 입항하던 날 당시 총리였던 테레사 메이는 이 항모에 올라 영국이 향후 수년간 세계를 무대로 새로운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며 "우리는 완전한 글로벌 파워로 계속 있기로 결단했다. 우리는 세계 속의 우방국이나 동맹국과 협력하며 활동하게 된다"고 역설했다.

이 연설 뒤 테레사 메이가 날아간 곳은 일본 열도다. 2017년 8월 31일 아베 신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그는 안전보장 공동선언을 발표했고 이를 계기로 영일관계는 동맹관계로 발전했다. 일본의 힘을 빌려 아시아 및 인도태평양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려는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왼쪽)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2017년 8월 31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3월 16일 자 <뉴스위크> 일본어판은 이런 상황을 신영일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해가며 집중 조명했다. '영국은 일본을 가장 중시, 신일영동맹 구축으로 - 시동 걸리는 글로벌 브리튼(英国は日本を最も重視し、新・日英同盟 構築へ──始動するグローバル・ブリテン)'은 영국 정부의 글로벌 브리튼 전략 발표를 보도하면서 "전통적인 세계 국가로 회귀한다는 영국이 외교·안전보장의 새로운 방침을 발표한다"고 한 뒤 "그 핵심이 되는 것은 인도태평양지역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를 동맹관계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전했다.

1902년 1월 30일과 1905년 8월 12일, 영국과 일본은 제1차 및 제2차 영일동맹을 체결했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이를 체결했지만, 일본은 두 차례 협약을 통해 한국에 대한 특수 권익을 보장받았다. 이에 힘입어 일본은 1904년 2월 8일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다.

특히 제1차 영일동맹은 한반도 역학 구도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고종이 러시아 공관으로 몸을 옮긴 1896년 2월 11일 아관파천 이후로 조선에서는 러시아와 일본이 경쟁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세력균형을 이용해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이 구도를 깬 것이 러시아가 독일의 위협을 받을 때 체결된 1898년 러일협약이다. 일본은 '만주에 관한 권익은 러시아가 갖고, 조선에 관한 권익은 일본이 갖는다'는 합의를 끌어냄으로써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발을 떼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의 다급한 사정을 십분 활용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주 권익을 러시아에 양보하는 듯이 했던 일본은 제1차 영일동맹을 통해 만주를 포함한 중국에 대한 영국의 특수 권익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일으켜 만주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만약 러시아의 영향력이 만주에 계속 남아 있었다면 일본이 단독으로 대한제국을 병합하기는 쉽지 않았다. 영국이 영일동맹을 통해 일본을 응원하지 않았다면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힘들고 한국 병합을 시도하기도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일동맹은 미·일 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만큼이나 한국의 운명에 악영향을 끼친 사건이었다.

100여 년 전의 영일동맹과 지금의 신영일동맹이 똑같은 효과를 발휘하리라고 전망하기는 힘들다. 지금의 영국은 그때만큼 강하지 않고 지금의 일본도 그때만큼 강하지 않다. 지금의 한민족 역시 그때처럼 약하지 않다.

하지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신영일동맹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국제적으로 더욱 합리화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이 인도태평양전략에 편승해 자위대와 외국군의 연합훈련을 마음 놓고 전개하듯이, 신영일동맹 역시 그런 명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영국도 중국의 위협을 명분으로 인도태평양 활동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영국과 함께하는 자위대를 비판할 명분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글로벌 브리튼 전략과 이에 입각한 신영일동맹은 일본 극우세력에 '행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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