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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군산은 오래된 이야기가 숨어 있는 명소들이 많다. 결혼 후 군산에서 살아온 세월이 54년째다. 짧지 않은 날들이다. 지금까지는 삶의 흐름에 맞기고 앞만 보고 살았다. 이제 삶의 방향을 바꾸어 보려한다.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군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내 삶은 글을 쓰면서 달라졌다. 일상의 시선도, 자연과 사물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탐구력도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글을 쓰면서 온 변화다. 

배지영 작가의 책 <도슨트 군산>이란 책을 읽고 이영춘 가옥을 가보고 싶었다. 요즈음 날씨는 가을을 말해 주듯 햇살도 포슬포슬하고 하늘은 맑다. 정말 어디로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날이다. 이영춘 가옥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가까운 곳이다. 평소에 관심이 없어 찾아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지난 10월 30일, 이곳을 방문했다. 

이영춘 가옥은 예전 개정병원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다. 개정병원은 군산에서 꽤 큰 병원이었다. 환자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환자로 병원을 다니던 일은 있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이영춘 박사 가옥은 관심도 가져 본 적이 없다. 사는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말이 맞는 말이다.
 
수령이 몇 년인지 알 수 없는 은행나무, 노란 단풍이 들어 가을 정취를 자아낸다.
 수령이 몇 년인지 알 수 없는 은행나무, 노란 단풍이 들어 가을 정취를 자아낸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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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춘 박사 가옥 앞에, 모습도 당당히 우뚝 서 있는 은행나무를 보고 놀랐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처럼 우람하고 큰 은행나무를 본 적이 없다. 커다란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크기에 사람은 작아지고 압도하게 된다. 몇 년이나 되었기에 이처럼 큰 나무인가? 그 세월을 가늠하기 어려운 나무가 집 앞에서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다. 가을이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거대해 보였다. 

집 마당을 쓸고 계시는 노인 어른을 만났다. "여기 구경 왔는데 집안에 들어가 보아도 되는지요?" 하고 물어보니 "그럼요" 하고 흔쾌히 대답을 하신다. 떨어진 낙엽을 대나무 비로 쓸어 빗자루 흔적이 남아 있는 마당을 오랜만에 보니 친근해진다.

이영춘 가옥은 살림집이 아니었다. 이 가옥은 일제 강점기 구마모토 리헤이가 봄과 가을 등 두세 차례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 거처로 이용하여 별장 구실을 하였다. 건축 당시 조선 총독부 관저와 비슷한 건축비를 들여 만든 초호화 건물이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가옥은 "외부 형태에 있어서는 유럽의 형식을 따르며 평면구조는 일식의 중복도형을 바탕으로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의 온돌방이 결합된" 양식이다. 또한,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농장주들에 의한 토지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 보건 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이용했다는 의료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현재 내부는 이영춘 박사 기념 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일본인 구마모토 헤리가 지은 집이다. 봄 가을 두세 차례 농장을 방문할 대별장으로 사용하던 집이다.
 일본인 구마모토 헤리가 지은 집이다. 봄 가을 두세 차례 농장을 방문할 대별장으로 사용하던 집이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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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을 지을 때 백두산에서 가져온 낙엽송으로 통나무 집을 짓듯이 2m 정도 목재를 쌓았다고 한다. 또 따뜻한 느낌을 연출한 후 흙벽돌과 황토와 흰색 회를 섞어 마무리하고 지붕은 자연석 청석 돌판으로 덮었다. 안정감 있는 아름다운 모양이다. 이 건물은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드라마 촬영지라 사람들 눈에 익숙한 곳이다.

이영춘 박사는 이북 평남에서 태어났다. 그 후 독학 공부하여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고 공부를 한 뒤 33세 젊은 나이에 군산 구마모토 농장 농장 자혜 진료 소장으로 부임하게 된 이영춘 박사는 일본인 농장에서 근무를 하면서 식민지 약탈로 피폐해 가는 동족들의 아픔을 직접 치료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무료 진료를 하고 농촌 위생연구소를 설립했다.

국민들의 결핵, 매독, 기생충, 3대 민족의 독으로 생각하고 퇴치 운동에 적극 힘을 쏟았다. 이밖에도 간호사 양성 교육의 필요성에 간호대학 설립하고 간호사 양성에도 큰 기여를 한 분이다. 평생을 농촌의료 봉사에 몸 바친 한국의 슈바이처나 다름없는 훌륭한 분이다. 국내 최초로 의료 조합을 구성하여 실시하기도 했다. 군산의 예전 개정병원도 설립한 분이 이영춘 박사다. 

개인의 영화보다 오로지 사람의 병을 고치고자, 특히 거룩한 정신을 가지고 의료 봉사를 하다가 생을 마치신 이영춘 박사의 삶을 전시해 놓은 글을 읽었다. 숙연한 마음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그분의 삶의 체취가 남아있는 듯 마음이 먹먹해진다. 

아직도 책장에는 그분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들이 책장에 가득 꽂혀있다. 이영춘 가옥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로 지정되어 문화 해설사도 상주하고 있다. 해방이 지난 후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였기에 이영춘 가옥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영춘 박사의 호 '쌍천'은 두 가닥의 샘물, 즉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샘물과 영혼을 치유하는 샘물이라는 뜻이라 한다. 

문화 해설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맞이해 준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하나도 없고 고즈넉하다.  남편과 나는 벤치에 앉아 노란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가을의 정취에 젖는다. 사방이 조용해서 더욱 사색하고 마음을 돌아보기 좋은 가을날이다. 이영춘 박사의 일상과 그분의 숭고한 삶을 돌아보며 마음으로 경의를 보낸다. 

군산 지역에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쌍천 이영춘 박사, 혼신을 다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시고 떠나신 이영춘 박사 가옥을 돌아보며, 고귀한 숨결이 느껴지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새기며 돌아선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감히 생각을 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이영춘 가옥, #가을 날 남편과 여행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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