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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사이언스>에 실린 전 세계 과학자 296명의 수산보조금 폐지 서한.
 지난 10월 29일 <사이언스>에 실린 전 세계 과학자 296명의 수산보조금 폐지 서한.
ⓒ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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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9일, 학술지 <사이언스>에 나쁜 수산보조금 금지를 요구하는 전 세계 과학자 296명의 서한이 발표되었다. 학자들은 오는 11월 30일 열리는 제12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앞두고 WTO 회원국 정부들에 해양생태계와 지속가능한 어업에 악영향을 끼치는 나쁜 수산보조금을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수산보조금은 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산업계에 지급되는,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보조금이다. 전 세계 국가들이 자국민과 기업에 지급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매년 거의 40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수산보조금으로 인해 어획 능력이 과도해지면서 남획으로 인한 해양생태계 파괴와 수산자원 고갈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상황에 이르자, 2000년 대 초반부터 전 세계가 수산보조금 폐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2015년 국제연합(UN)이 지속가능개발 목표(SDGs)로 2020년까지 나쁜 수산보조금을 금지할 것을 결의했고, 2017년 제11차 WTO 각료회의에서 2020년까지 수산보조금 협상의 타결을 선언했다. 그러나 협상은 시한을 넘겨 올해 11월 최종 협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WTO 협상에서는 세 가지 범주의 보조금을 금지하게 된다. 불법·비보고·비규제 어업에 지원되는 보조금, 남획된 수산자원을 어획하는데 지원되는 보조금, 그리고 남획과 어획능력의 과잉을 조장하는 보조금이다.

이에 속하는 가장 주요한 금지대상 보조금은 바로 유류보조금이다. 전 세계 수산보조금의 22%(2018년 기준)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남획을 조장하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국도 어업용 면세유를 공급하여, 매년 7천억 원씩 유류세를 감면하는 방식으로 유류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WTO 수산보조금 협상이 중요한 이유는 164개 회원국이 모두 참여하는 만큼, 협상이 타결되면 전 세계 수산업의 체질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정부들은 나쁜 수산보조금을 통해 대규모 기업형 어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왔다. 그런데 수산보조금이 전 세계적으로 폐지되면,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는 파괴적인 조업 방식과 많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수반하는 대규모 기업형 어업이 대폭 축소될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산타바바라 캠퍼스 연구진은 나쁜 수산보조금이 전면 폐지되면, 약 15년 내에 전 세계적으로 해양생물이 최대 12.5%가 증가하고, 태평양의 경우 최대 20%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수산보조금이 폐지되어 어획 비용이 일시적으로 증가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수산자원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같은 노력을 해도 더 많은 어획량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중국과 일본 등 막대한 나쁜 수산보조금을 지급(2018년 기준, 중국-58억 달러, 일본-20억 달러, 한국-15억 달러로 추정)하고 있는 나라들과 연근해 어장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WTO 협상 타결은 중국과 일본의 막대한 기업형 어업의 규모도 축소해 연근해 어장의 자원 회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46개국 296명의 과학자 "수산 보조금 폐지해야"
 
각국 정부가 수산업계에 지급하는 수산보조금이 남획의 원인이 되어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각국 정부가 수산업계에 지급하는 수산보조금이 남획의 원인이 되어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 Stop Funding Overf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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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한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저명한 자원경제학자 라시드 수마일라를 비롯해 총 6대륙 46개국 296명의 학자가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는 <사이언스>에 실린 글 중 가장 많은 공동 저자가 참여한 것으로 학계의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수산보조금 중에서도 유류보조금, 선박 건조 보조금, 수산물 가격지원 보조금 등의 지급을 반드시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원양어선에 지원되는 보조금을 금지할 것도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상업적 목적보다는 생존을 위한 어업에 종사하는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영세 어업인들에게는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허용하는 특별 차등 대우를 할 수 있음을 밝혔다.

국내외 해양보호단체들은 국제 연대단체인 Stop Funding Overfishing을 만들어 각국 정부에게 나쁜 수산보조금 폐지를 요구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공익법센터 어필,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재단이 함께 한국 정부에게 WTO 수산보조금 협상을 통해 나쁜 수산보조금을 금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홍석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원은 "WTO 협상이 반드시 타결되어 한국 수산업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기름을 너무 싸게 쓰고 있다"며 "유류세 감면액을 크게 줄여야 어획 강도가 줄어들고 수산자원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 연구원은 "해수부 수산어촌부문 예산의  20% 이상이 현 WTO 협정문 초안을 기준으로 금지 가능성이 있는 보조금에 쓰이고 있다"며, "생태 보전을 우선하는 획기적인 수산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협상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해양수산부는 7월 16일 자 보도자료를 통해 "수산자원 고갈을 예방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는 취지 하에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전부이다.

다만, 어업 관리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면, 나쁜 수산보조금이더라도 지급을 허용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도록 유럽, 대만, 일본과 함께 WTO에 제안서를 제출한 사실이 해외의 보고서 등을 통해 전해졌다. 이에 대해 이용기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이런 관리 조치가 실제로 남획을 막기 어렵고, 예외 조항이 늘어날수록 협정의 자원 회복 효과를 약화시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라고 밝히고 있다. 

단체들은 11월 중 WTO 한국 정부 대표단을 만나 의견을 제출하고 입장을 전달할 예정이며, 나쁜 수산보조금 금지를 요구하는 3천여 명의 시민 서명도 함께 전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태그:#수산보조금, #남획, #해양보호, #지속가능, #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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