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3 07:32최종 업데이트 21.11.0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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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풍경 하나

'세금 일자리'
'단기 일자리'


경제신문이 흔히 정부 일자리 정책을 비판할 때 쓰는 단어들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대통령이 일자리 현황판까지 가져다 놓고 일자리를 챙기겠다고 했지만 막상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자리 숫자가 늘었다거나 코로나19 이전으로 회복했다고 발표해도 세금을 쏟아부어 단기 일자리를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공공 일자리 사업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그것이 '세금 일자리'이며 '단기 일자리'라는 비판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은퇴한 기초노령연금 수령층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청년들에겐 '잠깐 시간을 때우는 용돈벌이'일 뿐이며 이력 쌓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풍경 둘

"생산량을 엑셀로 수기 기입한다고?"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 지역인 부산·울산·창원지역의 제조업 밀집 지구에서 대학을 다니는 청년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들은 종종 방학에 공장에 취업해 등록금 벌이를 하는 한편 지방 제조업이 본인이 취업할 만한 곳인지 탐색한다. 그런데 그 공장에서 생산 실적을 엑셀로 일일이 수기 기입하고 있는 광경을 보고 놀라고 좌절했다고 한다.

그 청년들이 학교에서 배운 바로도 생산 실적은 공정이 진행되면서 PMS(생산관리시스템)라는 ICT 소프트웨어를 통해 자동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방 공장에서는 그 프로그램이 오류가 발생하면 고칠 인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소프트웨어를 회사 공정 실정에 맞춰 튜닝할 인력도 없다.

정부나 원청이 스마트 팩토리를 주문하면 ERP(전사자원관리시스템), PMS(생산관리시스템) 등 ICT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기는 하지만, 사람도 안 변하고 투자도 안 하고 투자할 돈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도 노가다', '사무직도 노가다'인 지방 중소기업의 현실을 본 청년들은 그런 곳에서 취업해 이력을 쌓겠다는 선택지를 포기하고 상경의 꿈을 꾸게 될 수밖에 없다.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21년 해운대구 청년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 게시판을 보고 있다. 2021.11.1 ⓒ 연합뉴스

 
중요한 것은 산업 정책

대한민국 중앙부처의 전체 청년 정책 과제 수와 예산은 각각 308개, 23.8조 원이다.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규모와 예산이 들어간다. 청년 정책의 유형을 살펴보면 크게 일자리, 주거, 교육, 복지·문화, 참여·권리 5가지다. 이중 일자리 분야의 정책 과제 수와 예산은 각각 115개(37.3%), 8.2조 원(34.5%) 규모다. 이렇듯 청년에 대한 정책 지원은 주로 일자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청년이 가고 싶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다. 청년 대책이 기업 정책과 밀접히 연관되는 이유다. 그런데도 정작 중요한 기업의 투자 촉진과 연구개발(R&D), 구조조정·M&A 등 경제·산업 정책은 청년 대책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이는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가 청년 정책을 수립할 때 경제·산업 정책을 포괄해 종합적·체계적으로 수립하지 않고, 각 부처가 개별적·산발적으로 수립한 정책들을 단순 취합하기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 늘리기와 일자리 부조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청년 정책 기본계획에 중장기 연구개발 투자전략 등 경제·산업정책의 비전을 포함해야 한다. 그렇다면 청년 고용의 질을 좌우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을 살펴보자.

그동안 우리나라 연구개발 활동은 국가 지원보다는 주로 민간 기업이 주도하였다. 2017년 국가 전체 연구개발비 약 78조 원 중 민간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2조 원(국가 전체 연구개발비의 79% 차지)이다. 민간 중에서도 글로벌 선도 기업인 대기업이, 그중에서도 상위 5대 기업이 주도하였다. 2017년 기업의 연구개발비를 기업 규모별로 살펴보면 대기업 64%, 중견기업 14%, 중소기업 22%의 순서로 나타났다.

또한 정부예산으로 지원하는 국가연구개발 사업에서도 중소기업이 실제로 집행하는 금액이 적다. 2019년 국가연구개발 예산 20.1조 원에서 중소기업 연구개발은 고작 3.2조 원(15.9%)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중소기업은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가 월등히 많지만 생산액과 부가가치는 대기업의 반토막 수준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청년들이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것이다. 부가가치와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에 다니다 보니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국 연구개발 투자 격차 ➡ 기술혁신(역량) 격차 ➡ 총요소생산성 격차 ➡ 노동생산성 격차 ➡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현상 ➡ 임금 및 근로조건 격차로 연결된다.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고리가 바로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국가연구개발 사업을 29.8조 원 규모로 편성했다. 정부는 막대한 연구개발 예산에서 중소기업 연구개발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
 

한 기술 회사의 연구개발(R&D) 부서 내 작업실 ⓒ mint images

 
기본소득과 담대한 결합

한순간에 중소기업의 일자리가 좋은 일자리가 되기는 어렵다. 이 간극을 좁히려면 청년기본소득과 결합한 과감한 청년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우수한 인재가 중소기업에 들어가 장기간 재직할 수 있도록 청년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소득지원(예: 청년기본소득,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기본생활 보장)과 근로 여건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 특히 기술혁명의 가속화로 복지국가 시스템의 취약함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가 청년들에게 고용과 소득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기 때문에 경기도 등 지방정부에서 시행하는 청년기본소득을 중앙부처가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결론은 중소기업을 청년들이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청년 일자리 대책의 킹핀(king pin)이 있다. 한 발짝만 더 들여다보면 답은 찾을 수 있다. 이젠 실행이 중요한 때다.

* 필자 소개 : 송수종은 한국고용정보원 청년정책허브센터에 재직 중이며 청년정책 연구개발 및 모니터링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앙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농산업교육과에서 산업인력개발학을 전공하며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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