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0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인권단체들이 연 제2신안염전노예사건 경찰청 직접 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 당사자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인권단체들이 연 제2신안염전노예사건 경찰청 직접 수사 촉구 기자회견에서 피해 당사자가 발언하고 있다.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관련사진보기


2014년부터 올해 5월까지 약 7년 동안 경계선 지능의 한 장애인이 전남 신안군의 염전에 감금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00명 넘는 장애인들이 수년에 걸쳐 노동력을 착취당한 것이 세상에 알려진 2014년 이후 같은 섬에서 비슷한 유형의 장애인 학대사건이 또 발생했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경악했다.

인권단체들은 지역경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며 지난 10월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가 직접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경찰청은 전라남도경찰청에 수사전담팀을 편성하고 국가수사본부에서 집중지휘하겠다며 인권단체의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인권단체가 지역경찰이 아닌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의 수사를 요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강원 인권정책국장은 2014년 당시 피해 장애인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판결문에서 확인된 지역경찰의 비리와 무능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국가배상 판결문을 통해 확인된 지역경찰관들의 모습들은 어떠할까? 법원은 4명의 피해 장애인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에 놓여 있던 피해 장애인들을 구출해내지 못한 지역경찰관들의 모습은 제각각 달랐으나, 모두 한결같이 불량스러웠다.
 
신의파출소 경찰공무원 최○○는 원고 박○○가 이른 새벽시간에 파출소로 찾아와 '염주에게 폭행을 당하였으며, 신의도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음에도, 염주 박△△에게 연락을 하여 원고 박○○가 있는 파출소 또는 방범사무실로 오라고 한 후 자신은 운동을 이유로 파출소를 비워두어 박△△과 원고 박○○를 독대하게 하였는바...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5가합571351 손해배상(국) 판결문 중 일부 

폭행 등 인권침해를 당해 염전을 탈출한 피해 장애인을 보호해야 할 경찰관이 염주를 파출소로 오도록 하여 둘이 만나게 하고 다시 염전으로 돌아가게 했다는 건 그 당시 지역경찰과 염주 사이의 유착관계가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권침해에 눈 감은 경찰
 
완도경찰서 경찰공무원은 2011. 6. 22., 광주 지방고용노동청 목포지청 근로감독관은 2011. 7. 19. 원고 김○○과 김△△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소환한 다음 같은 장소에서 조사하였고, 특히 원고 김○○을 조사하면서 신뢰관계인을 동석시키지 않았다.
- 서울고등법원 2017나 2061141 손해배상(국)판결문 중 일부

형사소송법 제221조와 제163조의 2에는 사법경찰관은 정신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피해자를 조사할 때에는 피해자와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을 동석하도록 하고 범죄수사규칙 제201조에는 경찰관이 조사 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도록 규정한다.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는 수사가 공정했을 리 없다. 내사종결로 수사는 흐지부지 마무리되었고, 2011년 피해 장애인은 경찰 조사 이후에도 다시 학대 현장인 염전으로 되돌아가 3년을 더 착취당해야 했다. 
 
원고 김○○은 2009년 또는 2010년경 스스로 신의파출소를 방문하였다. 당시 신의파출소 경찰공무원은 신원조회를 통해 '원고 김○○에 대하여 실종신고가 접수 되었음'을 확인한 후 그의 어머니 박○○에게 연락하였다. 당시 원고 김○○은 종전 사업주한테서 임금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박○○가 신의면에 들어올 때까지 약 5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자, 신의 파출소 경찰공무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염주 박△△에게 원고 김○○의 보호를 부탁하였다. 박△△가 해당 기간에 임금을 주지 않고 원고 김○○에게 염전 일을 시켰던 점은 앞서 본 바와 같다

신의면에 들어온 박○○는 신의파출소 경찰공무원의 소개로 박△△를 만난 다음 그에게 원고 김○○의 보호를 부탁하였다. 박○○는 박△△에게 '원고 김○○에게 염전 일을 시키더라도, 자신(박○○)은 임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이에 따라 박△△는 원고 김○○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염전 일을 시켰다.
- 서울고등법원 2017나 2061141 손해배상(국)판결문 중 일부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피고 대한민국은 장애인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한다. 부모가 실종 장애인의 인수와 보호를 포기하였을 경우에도 동일할 것이다.

재판부는 신의파출소 경찰공무원의 조치에 대해 '정신장애인이 왜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는지, 이들이 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접을 포기하면서까지 일가친척 없는 외딴섬에서 강제노동의 길을 선택하는지'에 관한 진지한 고민이 결여된 결과라고 일갈했다.
 
원고 최○○이 신의면 보건소에서 간단히 처치를 받은 다음 헬기장으로 이동하기까지의 경과에 관하여 "자신(박○○)은 보건소장에게 '부엌에서 서로 다투다가 칼로 실수했다'라고 얘기했고, 이후 헬기장에서 경찰공무원에게도 '부엌에서 서로 다투다가 칼로 실수했다'라고 얘기했다"라고 증언하였다. 제반 증거에 비추어 보면, 박○○의 증언 내용을 허위로 볼 수 없다...

이 사건 당시 경찰공무원으로서는 즉시 범죄 발생 여부를 조사한 다음 원고 최○○을 구호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원고 최○○은 이후 약 4년 동안 박○○에 의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 서울고등법원 2017나 2061141 손해배상(국)판결문 중 일부

범죄수사규칙 제29조는 "경찰관은 범죄로 인한 피해신고가 있는 경우에는 관할구역 여부를 불문하고 이를 접수하여야 한다", 제39조는 "경찰관은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수사에 착수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신의파출소 경찰공무원은 살해미수 혐의자인 가해 염주를 입건조차 하지 않는 등 인권침해에 눈 감았다. 

전남경찰청에 대한 인권단체의 이유 있는 불신
 
2019년 10월 10일 전남 무안군 전남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남현 전남경찰청장이 "지역 경찰들이 염전 상황을 일부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서 "오랜 기간 비인간적으로 억울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한 분들께 늦게나마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2019년 10월 10일 전남 무안군 전남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남현 전남경찰청장이 "지역 경찰들이 염전 상황을 일부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서 "오랜 기간 비인간적으로 억울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한 분들께 늦게나마 사과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국가배상 판결문을 통해 확인된 지역경찰의 모습을 볼 때 전라남도경찰청에 제2신안염전노예사건 수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인권단체의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라남도경찰청은 잃어버린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국가배상 패소 판결이 확정된 직후인 2019년 10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김남현 전라남도경찰청장은 "지역 경찰들이 염전 상황을 일부 알았음에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면서 오랜 기간 비인간적으로 억울하게 노동력을 착취당한 분들께 늦게나마 사과했고, 국민이 위험에 빠졌을 때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재발방지는 경찰관들의 마음을 다잡는다고 되는 건 아니다. 더 이상 이런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범죄예방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라남도경찰청은 이미 내놓았지만 실패한 대책을 껍데기만 바꿔 내놓는 수준이 아니라, 뼈를 깎는 노력으로 완전 새로운 범죄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길만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정규 변호사는 2014년 신안군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소송대리인으로 활동했고 2021년 제2염전노예사건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제2염전노예사건, #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 #장애인노동력착취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