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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2022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은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등 상당히 많은 권한을 지방의회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기초의회의 이런 권한에 대해 시민들의 반발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권한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겁니다. 일례로 대구 달서구의회에서 개정된 조례가 무력화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4월 28일 달서구의회 본회의에서 김태형 의원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집행부(달서구)가 제출하고 오늘 본회의 심사 안건으로 올라온 (웃는얼굴)아트센터 민간위탁 동의안 내용을 보고, 본 의원은 실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달 전 여기 본회의장에서 의결을 했고 집행부도 인정을 했던 바로 그 아트센터 개정 조례를 집행부가 인정을 못 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체 무슨 말일까요?

'공개모집으로 선정하라' 조례 개정했지만...
 
대구 달서구의회
 대구 달서구의회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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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얼굴아트센터는 대구 달서구에서 민간에 위탁해 운영하는 문화시설입니다. 올 1월 14일 달서구의회는 공고문을 통해 '달서구 웃는얼굴아트센터 운영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현행 조례는 웃는얼굴아트센터와 생활문화센터의 민간위탁 공개모집 절차를 생략하고 달서문화재단에만 위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모 절차를 밟도록 명시한 '대구 달서구 사무의 민간위탁 조례'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처럼 한 곳에만 위탁을 맡기는 방식이 위·수탁 관련 상위 법령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에 시정해야 한다는 게 위의 개정 조례안의 내용입니다. 달서문화재단도 전문성을 보유한 여타 법인·단체 또는 개인과의 공개경쟁 모집 절차를 거친 후, 수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한 것입니다.

개정 조례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내용은 '공개모집 절차를 생략하고 재단법인 달서 문화재단에 아트센터와 생활문화센터의 관리를 위탁할 수 있다'를 삭제한 것입니다.

이 개정 조례안은 같은 달 27일 달서구의회 복지문화위원회에 상정됐습니다. 달서구청장이 임명한 전문위원은 개정안 조문에 대해 '특별히 논란이 될 만한 소지는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검토의견을 냈습니다.

① 법제처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행정재산 관리 위탁 시 특정 단체 우대 규정'은 폐지함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
② 달서문화재단이 수탁자로 선정된 후 지금까지 의회에 대해 (재)위탁동의(보고)를 받은 사실이 없음. 이는 현행 달서구 민간위탁 조례 규정을 위배.
③ 재단과 집행부가 체결한 위·수탁 협약서를 보면 "위탁기간은 수탁자의 해산 또는 위탁자와 수탁자 상호간에 따라 협약 해지 의사 표시가 없는 한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본다"로 하여 '위탁기간은 5년 이내로 하되, 위탁기간을 갱신할 경우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제 21조에 따른다'고 한 현 조례 규정을 위배.


해석을 하면 조례는 개정해야 마땅하고, 현행 위·수탁 계약도 잘못된 게 많다는 지적입니다.

이날 의회에서 집행부는 '조례가 개정되면 절차에 따라 공개모집하겠다'고 했습니다.

박정환 복지문화위원회 부위원장 : "그러면 올해는 다시 이 조례 개정에 따라서 공개모집을 할 계획이신가요?"
김지수 달서구청 복지문화국장 : "당초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야 됩니다. 근원적으로."
박정환 복지문화위원회 부위원장 : "알겠습니다. 아무쪼록 개정된 만큼 저희 위원들의 취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하셔서 투명하고 정정당당하게 위탁할 수 있는 좋은 기관이 선정되기를 바랍니다."

이후 이 조례는 상임위원회를 통과, 2월 3일 본회의를 거쳐 개정됐습니다.

하지만 이 조례는 불과 2개월 뒤인 4월 완전히 무력화됐습니다. 4월 21일 달서구청은 웃는얼굴아트센터와 달서생활문화센터의 민간위탁 계약기간이 2021년 6월 30일 만료 예정임에 따라 달서문화재단과 수의계약하겠다는 민간위탁동의안을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이 민간위탁동의안에 대한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를 통해 '현행 조례 위반'을 우려했습니다. 공개경쟁을 배제한다는 건 지난 2월 집행부도 수용해 시행 중인 현 운영 조례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입니다.

또한 집행부 스스로 조례를 위반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수의계약 할 수 있다는 동의안을 집행부가 제출하려면 동의안 제출보다는 아트센터 조례를 재개정(수의계약 할 수 있다)해 현행 조례를 위반하는 현 상황을 먼저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2개월만에 무력화된 조례, 왜
 
대구 달서구 웃는얼굴아트센터
 대구 달서구 웃는얼굴아트센터
ⓒ 웃는얼굴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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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희 달서구청 문화체육관광과장은 민간위탁동의안으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답변합니다. '민간위탁 2020년도 공유재산 업무편람'에 2015년도 행정안전부 회계제도과 질의답변이 있는데, 수의계약으로 행정재산을 관리·위탁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는 것입니다.

구청 측은 '고문변호사에게도 구두로 질의했는데 별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연이어 행정안전부 사무관 통화를 했는데 지금도 같은 입장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도 전했습니다.

이후 달서구의회 복지문화위원회는 민간위탁동의안(수의계약)에 무기명 투표를 진행했고, 찬성 4표, 반대 3표로 동의안이 가결됐습니다. 그리고 4월 28일 본회의에서 상당한 논란을 겪으며 그대로 통과됐습니다.

사실 추측해보면 공개모집을 하더라도 출자·출연기관인 달서문화재단이 위탁받을 것은 분명해 보이는 일입니다. 어떤 단체가 구에서 위탁하는 사업인데 구의 출자·출연기관과 경쟁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당연히 수의계약을 하는 것과 공개모집을 하는 것은 운영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일입니다.

달서구청은 절차가 그냥 귀찮았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수의계약하는 것이 집행부에 이롭다고 판단한 것일까요? 달서구청은 이런 절차를 '심각한 행정력 낭비'라고 표현합니다.

무엇보다 달서구의회는 의회에서 만든 조례를 지키지 않겠다는 집행부의 의지를 무기명 투표로 승인해줌으로써 의회의 존립근거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했습니다. 조례를 만들고 지키게 하는 게 지방의회의 일이 아닐까요?

한편, 달서구청에 '이런 식으로 해도 된다'고 답변한 행정안전부 사무관이 누구인지 물으니, 이름은 모른다고 하고 전화번호를 4개 받았습니다.

구청이 받았다는 고문변호사 답변서도 입수해 살펴봤습니다. 구청의 질의 내용은 '공유재산 및 물품 관리법 시행령에 의거,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수의계약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한 재단에 관리 위탁이 가능한지 여부'였습니다. 답변서 어디에도 개정된 조례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히려 '본 답변은 귀청에서 보내주신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됐으며 사안의 기본적 사실 관계에 변동이 있거나 오류가 있는 경우 답변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띕니다.

달서구청은 행정안전부에 '조례를 개정했는데, 수의계약해도 됩니까'라고 물었을까요, 아니면 '출자·출연기관에 수의계약해도 됩니까'라고 질의했을까요?

답은 달서구청만 알 것 같습니다.

태그:#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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