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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들이 뚜루루 뚜루루 소리를 내지르며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다.
 흑두루미들이 뚜루루 뚜루루 소리를 내지르며 내려앉을 준비를 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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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 낙동강 해평습지에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뚜루루 뚜루루' 하는 소리를 기다리게 된다. 하늘에서 이 반가운 소리가 들리면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바로 겨울진객인 흑두루미다.

흑두루미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으로 국가에서 보호하고 있는 법정 보호종이다. 이 흑두루미 수천 마리는 매년 10월 22일 전후로 해평습지를 찾아왔다. 더 엄밀히 말하면 4대강 사업 후엔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합수부 강정습지에 찾아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해평습지나 강정습지에서도 흑두루미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지난 3일 해평습지와 강정습지를 찾았지만 올해도 흑두루미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흑두루미는 낙동강 해평습지를 찾지 않은 것이다. 흑두루미는 일본 이즈미에서 월동을 하는데 중간 기착지로 낙동강 해평습지를 찾았었다. 4대강 사업 전에는 해평습지를 찾았으나 4대강 사업 후 모래톱이 사라지자 인근의 감천 합수부 강정습지를 찾아왔던 것이다.

이제 흑두루미들은 감천 합수부마저 외면하고 더 이상 낙동강을 찾지 않는다. 사실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4대강 사업이 철새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예견은 이 사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나왔다. 4대강 사업은 낙동강에서 모래톱을 앗아갔고, 넓고 안정적인 모래톱이 있어야 도래했던 흑두루미들에게 더 이상 찾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나마 감천 합수부에 역행침식에 의한 모래톱이 다시 쌓여 흑두루미들이 해평습지를 대신해 강정습지에 도래해왔다. 그러나 흑두루미들은 이곳도 안정적인 도래 터로 여기질 못한 것 같다. 이곳 역시 이전의 해평습지를 대체할 만한 적당한 도래 터가 되지 못한 것이다.

낙동강에서 흑두루미를 내몬 4대강 사업
 
낙동강 감천 합수부의 모래톱. 4대강사업 후 이곳에 흑두루미들이 도래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흑두루미들은 오지 않았다.
 낙동강 감천 합수부의 모래톱. 4대강사업 후 이곳에 흑두루미들이 도래했다. 그러나 작년에 이어 올해도 흑두루미들은 오지 않았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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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두루미는 시베리아 등지에서 일본 이즈미로 가는 코스를 두 갈래로 나누어 간다. 그 하나가 낙동강 루트고 나머지 하나가 천수만 즉 서해안 루트다. 흑두루미가 해평습지를 찾지 않는다는 것은 낙동강 루트를 포기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낙동강 루트를 포기하고 천수만 루트로 이동할 수밖에 없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서해안 쪽으로 모든 흑두루미가 모일 수밖에 없고 서해안 천수만에서의 먹이 경쟁 등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게 된다. 흑두루미들에겐 더 안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낙동강 루트는 흑두루미들에겐 유전자에 각인이 된 루트다. 지난한 세월 흑두루미들은 낙동강 루트를 따라 이동해왔는데 그동안 유전자에 각인된 이동 루트를 변경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물새네트워크의 이기섭 박사는 이렇게 진단했다.

"낙동강 루트를 따라 흑두루미들이 지나는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낙동강에 내리지 않고 곧장 일본 이즈미로 날아가는 것 같다. 낙동강(해평습지)이 더 이상 이들이 쉬었다 갈만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흑두루미들은 사주섬(모래섬)이 있어야 그곳에서 안전하게 쉬었다 갈 수가 있다. 모래톱이 있다고 해도 가까이 사람의 접근이 쉬워졌고 풀이 우거져 삵이나 포식자의 접근이 용이해져 흑두루미가 안전하게 쉴 수가 없다. 과거처럼 접근이 쉽지 않은 넓은 모래섬이 있어야 흑두루미들이 안전하게 쉬었다 갈 수 있을 것이다."


해평습지는 4대강 사업으로 모래톱이 모두 사라졌고, 강정습지의 모래톱도 안정적인 도래 터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흑두루미들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기섭 박사의 진단이다.
       
이처럼 4대강 사업은 낙동강에서 겨울진객 흑두루미들을 내몰았다. 더 이상 낙동강에서 흑두루미를 만날 수 없게 됐다. 지난 수천 년을 이어온 흑두루미들의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흑두루미 입장에서는 경천동지 할 일이자 누대로 이어져오던 그들의 질서가 교란당한 것이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칠곡보 수문을 열자
 
해평습지에 4대강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2010년 겨울 해평습지의 모습. 해평습지를 찾은 많은 겨울철새들이 해평습지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해평습지에 4대강 공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인 2010년 겨울 해평습지의 모습. 해평습지를 찾은 많은 겨울철새들이 해평습지 모래톱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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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답은 낙동강 재자연화에서 찾을 수 있다. 낙동강을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넓은 모래톱을 복원시키는 것이다. 그를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칠곡보의 수문을 여는 것이다.
      
칠곡보의 수문을 열어 낙동강의 수위가 내려가 그동안 강물에 잠겨 있던 모래톱을 다시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이다. 칠곡보의 관리수위는 해발 25.5미터다. 수자원공사에 확인한 바로 칠곡보의 수위를 19.1미터까지 내려도 취수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적어도 5미터 정도는 수위를 내릴 수 있다.

그러면 그동안 잠겨 있던 모래톱이 드러나면서 해평습지가 이전의 모습과 가깝게 복원될 수 있을 것이고, 그리 되면 흑두루미가 도래할 조건이 된다. 넓은 개활지로서의 모래톱이 해평습지에 나타나고 그 위를 흑두루미가 도래하는 해평습지의 '오래된 미래'를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환경부에서 이달부터 칠곡보의 수문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그러나 그 개방 폭이 1미터 내외로 크지 않을 것이란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그래서 환경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싶다. 칠곡보의 수문을 5미터 정도 내리자고. 그래서 해평습지의 옛 모습을 복원하자고 말이다.

5미터를 내려도 취수에 지장이 없고, 지금은 농사철도 아니라 양수에도 문제가 없으니만큼 지금이 적기다. 칠곡보 수문을 열자. 적어도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겨울진객 흑두루미가 도래하는 시기만이라도 그렇게 수위를 조절해보자.

해 질 녘 뚜루루 뚜루루 흑두루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해평습지의 모습을 다시 그려본다. 그것은 해평습지의 '오래된 미래'이자 낙동강의 '오래된 미래'일 것이다. 내년부터는 흑두루미 소리가 고요한 해평습지를 깨우면서 우아하게 내려앉는 모습을 다시 보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낙동강, #4대강사업, #흑두루미, #해평습지, #감천 합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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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깎이지 않아야 하고, 강은 흘러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공존의 모색합니다. 생태주의 인문교양 잡지 녹색평론을 거쳐 '앞산꼭지'와 '낙동강을 생각하는 대구 사람들'을 거쳐 현재는 대구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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