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시민기자 글쓰기 그룹 '반려인의 세계'는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이번 주제는 '동물병원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반려인으로서 가장 두렵고 힘겨울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반려동물이 아플 때일 것이다. 사람과 달리 고통을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다, 아픈 상태를 숨기려 하는 반려동물의 건강 문제는 반려인들이 늘 애태우는 부분이다. 나도 반려견 은이의 피부에 뭐가 나거나, 변이 묽어지거나, 갑자기 눈물이 많아지기만 해도 이게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불편한 건지 알 수가 없어 신경이 곤두선다.

이럴 때 반려인들이 의지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곳이 동물병원이다. 하지만, 많은 반려인들은 동물병원을 방문할 때 불편감을 느낀다. 과다한 처치들, 천차만별인 진료비, 동물을 대하는 사무적인 태도 등을 경험하지 않은 반려인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초보 반려인이었던 시절 나는 SNS에서 소문난 동물병원, 새로 생겨 시설이 좋은 곳, 수의사 선생님이 여러 명 계시는 큰 병원 등 여러 군데를 전전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녀오면 더 불안해지곤 했고, 은이가 '물건' 취급을 당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동물병원을 만난 후 나는 달라졌다. 조금 더 침착하고 의연한 보호자가 되었고, 은이를 병원에 데려갈 때에도 덜 미안해졌다. 

6년째 다니고 있는 은이의 단골 동물병원은 매우 작은 병원이다. 야간진료도 없고, 휴일응급진료도 되지 않으며 수의사 선생님도 한 분뿐이시다. 그런데도 나는 앞서 다녔던 그 어떤 병원보다 이 병원을 신뢰한다.

이 작은 병원이 이토록 나와 은이에게 신뢰를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차이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려동물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 보호자의 불안까지 안아주고, 사소한 증상도 사소하지 않게 소통해주는 마음. 이 세 가지가 은이의 건강을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게 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사랑이 '진심'인 병원 
  
반려동물이 아플 때 반려인들은 쉽게 불안해지고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반려동물이 아플 때 반려인들은 쉽게 불안해지고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지인의 추천으로 이 병원에 처음 갔을 때를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대체로 반려동물과 함께 있어도 사람들은 보호자인 내게만 인사를 건네오곤 했다. 하지만 이 병원에 처음 등록을 하던 날 스태프들은 나는 물론 은이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네가 은이구나. 예쁘게 생겼네"라고 인사를 건네주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진료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곳에서 불안해하는 은이에게 원장님은 "처음이라 조금 불안하지?"라며 은이에게 말을 건넸다. 은이를 대하는 눈빛과 손길이 꼼꼼하면서도 따스했다. 나는 그날 동물병원을 다녀오고 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경험을 했다.

그렇게 이곳은 은이의 단골 동물병원이 되었다. 초콜릿을 과다섭취하고, 닭뼈를 삼켜 큰 위기를 겪었을 때도 은이는 이곳에서 따뜻한 진료를 받았다. 특히, 초콜릿을 먹었던 날 은이는 밤새 지켜봐야 할 상황이었다.

그날 원장님은 은이를 자신의 집에 데려가셨다. 병원에도 입원실이 있지만, 밤새 관찰이 필요한 아이들은 집에서 돌보신다고 했다. 원장님은 거실에서 은이와 함께 주무셨다고 했다. 병원보다 따뜻한 가정집 케어를 받아서일까. 은이는 밤새 컨디션을 많이 회복했고, 다음 날 나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이 병원에 갈 때마다 동물을 향한 의료진들의 마음이 진심임을 느낀다. 살살 달래며 "불편하지? 빨리 끝낼게"라고 말을 건네주는 원장님의 진심을 은이도 아는지 병원에선 착한 아이가 된다. 

반려인의 불안을 다스려주는 곳

반려인들이 느끼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반려동물이 아플 때 이를 알아차려 줘야 한다는 점일 테다.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반려동물의 병을 발견해내는 책임은 오롯이 반려인에게 있다.

이에 반려인들은 반려동물의 몸에 작은 변화만 생겨도 쉽게 불안해지고 죄책감을 갖는다. 반려인들의 이런 마음은 종종 동물병원들이 과잉검사나 과잉진료를 권하는 빌미가 되곤 한다. 나는 좋은 동물병원이라면 이럴 때 보호자의 불안을 이용하는 대신, 그 불안을 다스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 은이는 만 9살이 되면서 몸에 검은 반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눈 주변에 검은 점이 생겼는데 처음 이 점을 발견했을 때 나는 '흑색종'이라는 병이 떠올랐다. 인터넷에 '흑색종'이라고 검색을 하니 무서운 설명들만 있었고, 나는 너무너무 불안했다. 여행 중 이 점을 발견했는데 도무지 여행을 즐길 수가 없었다. 빨리 진료를 받아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곧바로 동물병원에 갔다. 원장님께 그동안 얼마나 불안했는지를 털어놓았다. 원장님은 은이의 눈 주변을 꼼꼼히 관찰했다. 그러더니 흑색종의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 은이의 검은 반점은 단순 색소침착일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하셨다.

나는 그래도 반신반의하며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세침검사'나 '조직검사'가 필요하지 않냐고 물었다. 대체로 이쯤되면 보호자의 불안감소를 위해서라도 검사를 시행하는 동물병원이 많을 테다. 하지만 원장님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점일 확률이 훨씬 큰데 아이 고생시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일단 지켜보세요. 저도 오실 때마다 관찰할게요. 저희 집 아이들도 나이 들어가면서 저런 점이 많이 생겼어요."

원장님의 반려견들도 점이 있다는 말에 나는 안심이 됐고, 은이의 스트레스까지 배려해주는 모습에 더욱 믿음이 갔다. 처음 점을 발견하고 9개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병원에 갈 때마다 원장님께 점의 상태를 봐달라고 한다. 내가 똑같은 질문을 계속해도 원장님은 전혀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나를 다시 안심시켜 주신다. 지난달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무 점인 걸요? 아이라인이 좀 굵어졌다 여기시면 될 것 같아요."
  
반려인들의 불안을 낮춰주고 동물을 편안하게 해주는 동물병원도 있다.
 반려인들의 불안을 낮춰주고 동물을 편안하게 해주는 동물병원도 있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사소한 증상이라도 소통이 가능한 곳 

반려인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질문 중 하나는 '지금 이런 상태인데 병원에 가야 할까요?'이다. 그만큼 반려동물과 병원에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람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경험상 병원에 가야 할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몸에서 일어난 일은 어떤 조짐인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무작정 병원을 방문하지만, 애써서 간 게 무색할 만큼 별 것 아닌 것일 때도 많고, 그에 비해 병원비가 턱없이 비싸다 느낄 때도 많다. 때문에 반려인들은 병원에 가는 것 자체를 고민할 때가 많다.

나는 이럴 때 병원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걸면 원장님과 직접 통화가 가능하고, 간단한 상담을 할 수 있다. 원장님이 진료중이라 통화가 어려울 때는 괜찮은 시간에 반드시 전화를 주신다. '오늘 아침 응가가 토끼똥이에요' '몸에 뾰루지 같은 게 났어요' 등 사소한 것을 물어도 전혀 사소하지 않게 들어주신다.

피부나 입안 등 보이는 곳에 증상이 있을 때는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고도 하신다. 그러면 확인 후 당장 치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그냥 지켜봐도 되는지를 구분해 주신다. 내가 어떤 약들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보시고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알려주시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기에 가능한 일일테다.

때로는 너무 자주 물어봐서 원장님께 죄송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자꾸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이런 메시지가 돌아온다.

"은이는 복이 많아요. 이렇게 세심하게 살펴주는 가족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적고 보니 나와 은이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동물을 진심으로 대하며, 보호자인 나의 불안을 다스려주고,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동물 병원을 만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행운'이라 여기는 내 마음이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진다. 모든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자신들이 다니는 병원을 신뢰할 수 있다면, 나와 은이의 경험이 더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게 될테니 말이다. 

나와 은이의 '행운'이 '당연한 것'이 될 수 있기를, 그래서 모든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마음 편하게 동물병원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serenity153)에도 실립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고민과 반려동물로 인해 달라지는 반려인들의 삶을 다루는 콘텐츠.
태그:#반려동물, #동물병원, #반려인, #반려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