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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사망한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 고 나세균씨.
 지난 5일 사망한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 고 나세균씨.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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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아는 세상이, 돈만 아는 수협과 서울시가 나세균을 죽였다."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 강연화씨)

지난 6년간 수협중앙회(이하 수협)의 노량진 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을 반대하며 싸워 온 여수수산 사장 고 나세균씨가 지난 5일 세상을 등졌다. 향년 54세. 

지난 4일 새벽 구(舊) 노량진 수산시장 인근 농성장을 지켰던 그는 귀가 후 신체 통증을 느껴 이날 저녁 응급실에 입원했다. 그러나 입원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은 5일 새벽 숨졌다. 사인은 식도정맥류다. 

"오늘 야간 근무는 못 설 것 같다." 당시 응급실을 향하던 나씨가 다른 동료 상인에게 급히 전화로 한 말이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나씨는 6년 간 함께 투쟁한 동료들과 제대로 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노량진 시장 현대화사업 추진... 명도집행, 그리고 단전·단수 
 
고 나세균씨 서울시청 시민분향소에 게시된 그의 과거 사진
 고 나세균씨 서울시청 시민분향소에 게시된 그의 과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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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나씨는 1995년 노량진수산시장의 판매직 직원으로 입사하면서 수산시장에 발을 들였다. 2010년부턴 수산시장에 '여천수산'이란 이름의 활어회 가게를 운영했다. 나씨는 회를 팔면서도 꾸준히 수협의 현대화사업 추진 과정이 불합리하다고 목소리 냈고, 2016년부터 적극적으로 반대 투쟁에 참여했다. 

사망 직전까지 반대투쟁에 함께 했던 나씨는 듬직한 동료로 정평이 나 있었다. 상인 강연화씨(55)는 "생김새처럼 품성도 정말 우직한 동지였다. (다른 상인들에게) 어머니, 어머니 하면서 친근하게 굴다가도 사람들이 힘들어 보이면 자신이 제일 앞장서서 싸웠다"며 "내가 덩치가 작으니, 용역 깡패들 폭력이 한창일 땐 앞에서 버티고 있어 주기도 했는데 참 힘이 났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람을 잘 챙겼다. 상인들이 나이 든 노인이니 힘들어하면 안마도 해주고, 옆에 누가 지나가면 그냥 안 보내고 장난치고 위로하던 따뜻한 사람이었다"며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지 해결되나' 말하곤 했는데 말이 씨가 된 것 같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2016년 신식 노량진 수산시장이 설립되면서 현대화사업 반대 투쟁은 그 수위가 높아졌다. 수협 직원과 수협이 고용한 용역 직원들과의 대립이 심해지면서다. 

서울시와 수협은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은 시장 종사자들 상우회 80%와 중도매인조합 74%의 찬성을 얻어 추진됐고, 상인들이 지원책과 입주 기회를 줬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종건 '옥바라지선교센터' 사무국장은 8일 나씨의 분향소에서 열린 예배에서 "그들은 '이 거지 같은 X들아' 하며 축구공처럼 우리 재산을 발로 차고 전기·수도를 끊고 물고기와 바닷물을 바닥에 쏟아내는 폭력을 저질렀고, 나세균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집 문밖을 나서 현장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결국 2019년 8월 구 노량진수산시장 부지 내 모든 점포가 철거됐다. 그러나 상인 80여 명은 반대 투쟁을 계속 이어 나갔다. 이들은 노량진역 인근에 농성장과 노점상을 차려 '현대화사업 재평가'와 '구 노량진시장 부지 내 영업'을 요구했다. 인근 육교엔 텐트촌을 차려 투쟁하는 상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나세균씨는 2019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비상대책 총연합회 청년국장을 맡기도 했다. 그렇게 2년 넘게 노량진역 농성장, 텐트촌, 자택을 오가며 수협과 서울시를 상대로 싸우다 결국 숨을 거뒀다. 
 
지난 2019년 6월 27일 서울 동작구 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법원 집행인력과 수협 측 직원들이 수산물 판매장 내 점포를 대상으로 7차 명도집행을 하고 있다.
 지난 2019년 6월 27일 서울 동작구 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법원 집행인력과 수협 측 직원들이 수산물 판매장 내 점포를 대상으로 7차 명도집행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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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점포 부술 때 억장 무너져" 

그와 25년 지기인 상인 유상호씨(54)는 "내 점포나 나 사장 점포나 20년도 더 된 점포를 용역들이 다 부숴버리는 걸 보는데 말 그대로 억장이 무너졌다"며 "나 사장이 용역한테 두들겨 맞으면 우리들 몰래 병원도 다녀오곤 했다. 겉으로 티가 안났지만 내면은 많이 썩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함께살자 노량진수산시장 시민대책위원회'와  상인들은 나씨가 사망한 날부터 서울시청 입구에서 매일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어 "나씨는 2018년부터 2년 가까이 매일 진행된 당시 수협직원들의 폭력과 명도집행 때 용역의 폭행으로 병원치료를 받고,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호소했다"며 "죽음의 책임자 서울시와 수협을 규탄하며, 고인의 염원이었던 잘못된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사업을 바로 잡고 상인들이 구시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싸우하겠다"고 밝혔다. 

발인은 9일 오전 8시 엄수됐다. 시민대책위는 나씨를 구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운구해 노제를 지냈다. 이후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서울시청으로 이동해 마지막 영결식을 진행했다. 그의 장례는 지난 5일부터 오일장으로 치러졌다.
 
고 나세균씨 서울시청 시민분향소에 게시된 그의 과거 사진.
 고 나세균씨 서울시청 시민분향소에 게시된 그의 과거 사진.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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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노량진 수산시장, #나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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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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