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1.09 12:58최종 업데이트 21.11.0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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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월 15일 광복절에 귀향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방현석 소설가의 '홍범도 실명소설 <저격>'을 주 2회(화요일, 금요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19

"이젠 비법을 알려줘야지."
하루 뒤에 나타난 박민규는 사격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재촉했다. 게슴츠레한 눈빛은 아직도 술이 덜 깬 것 같았다.
"기본자세와 힘 조절 방법은 벌써 다 알려드렸습니다."
"기본 방법 말고, 숨은 비법. 그걸 알려달라고."
포수의 기본은 가르칠 수 있다, 누구나 열심히 훈련하면 포수는 된다. 신포수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명포수는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격에 비법은 없습니다."
내 대답에 박민규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보아온 한량의 눈빛과는 다른 야비함이 번뜩이는 눈빛을 보고 나는 시선을 그의 손으로 옮겼다. 주먹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이 자식이. 오냐오냐 하니까..."
내 눈은 표나지 않게 그의 손과 발을 번갈아 살폈다. 발의 움직임은 없었다. 화가 나 있을 뿐 공격할 기미는 아니었다.
"아니지. 아우한테, 아니 동서 사이가 됐는데 내가 너한테 이러면 안 되지."
형으로 부르라고 한 건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동서라니, 이건 뭐지.
"......"
"내 손을 탄 여자에게 아우의 수청을 맡겼는데, 이러면 이 형님이 섭하지."

나는 비로소 동서가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전 안 자고 왔습니다."
박민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외주가의 여주인에게 지불한 돈이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천석꾼 집안의 아들로 알려진 그라고 돈이 아깝지 않을 리는 없었다.
"자식이, 괜찮아. 자고 왔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할 놈 없어."
그는 내가 주가에서 자고 온 것으로 단정지으려 했다.
"정말, 전 술만 먹고..."
그는 손바닥을 내밀며 내 말을 잘랐다.
"그건 됐고. 비법이나 알려줘."

백 발이 든 탄환 상자를 열었다. 장탄을 한 총을 그에게 쥐어주며 사격 방법을 설명했다.
"상체에 힘을 빼고 개머리판을 어깨에 가볍게, 견착합니다. 왼손으로는 총열을 살짝 받칩니다. 오른손 검지는 방아쇠 가운데와 하단 사이에 놓습니다. 호흡은..."
박민규는 불만에 찬 눈빛을 내게 보냈다.
"뻐꾹새냐? 어제도 뻐꾹, 오늘도 뻐꾹. 뻐꾹뻐꾹."
그러는 넌 바보냐? 어제도 하고, 오늘도 하는 걸 못하고. 흔들흔들. 나는 흔들리는 총열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총열이 흔들리지 않게 왼손의 힘을 뺍니다. 가늠자와 가늠쇠, 표적이 일직선이 되게 조준합니다. 표적에 있던 눈의 초점을 가늠쇠로 끌어당기며 숨을 들이쉽니다, 하나, 둘 셋. 이번에는 숨을 내쉬면서 하나, 둘, 방아쇠를 가볍게 당깁니다."
탕.

어이없게도 표적에는 아무 흔적이 없었다. 자세만 익히고 힘 조절을 어느 정도만 하면 표적지 안에는 집어넣을 수 있었다. 그에게는 명사수가 될 자질이 아예 없었다. 명사수의 자질은커녕 포수가 되려는 노력과 열정조차 없었다. 오로지 명사수로 으스대고 싶은 욕망만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다. 화를 내야 할 것은 나인데 박민규는 도리어 화를 내며 내 말을 듣지도 않고 열 발을 잇달아 쏘았다. 표적 안에 들어간 것은 겨우 다섯 발이었다.

"야, 비법을 알려달란 말이야!"
박민규는 성질을 부리며 총을 내던졌다. 나는 총을 주워들며 박민규를 노려보았다. 어떤 경우에도 포수가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정말 비법을 알고 싶으세요?"
박민규가 반색을 하며 나를 향해 목을 뺐다.
"진작 좀 그러지. 그 비법이 뭐야?"
나는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 눈길을 이기지 못한 그가 주변을 살피며 딴청을 부렸다. 나는 그의 눈길이 제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흔들리는 눈길로 나를 다시 쳐다보는 박민규에게 나는 또박또박 말했다.

"마음을 비우세요. 욕심을 버려야 팔과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겁니다."
나는 그가 내던졌던 총에 손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 탄환을 장전하고, 표적을 조준했다. 숨을 셋까지 들이마시지도 않았다. 하나, 둘. 내쉬는 숨을 하나에서 멈추며 가늠쇠 위에 오른 표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탄착점은 정확히 표적의 정중앙이었다. 영점을 잘 맞춰둔 총기였다.
"알겠습니까."
나는 첫발의 2배속으로 한 발을 더 쏘았다. 표적의 정중앙에 들어갔다.
"봤습니까. 나는 사격할 때, 사격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술집 여자만 어른거리는데 무엇이 총에 맞겠나, 그 말은 입안에서 삼켰다. 셋째 발은 4배속으로 표적의 정중앙에 박아넣었다. 나는 그에게 '저'라고 하지 않았다. 멍하게 나를 바라보는 박민규에게 총을 돌려주었다.
"사격은 배우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습득하는 겁니다."
나는 그에게 장탄을 해주지 않았다. 그는 총을 도로 내밀며 눈짓으로 장탄을 해달라고 명령했다.
"스스로 하십시오. 전쟁터에선 아무도 장탄을 대신해주지 못합니다."

나는 총을 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못 본 채 했다. 박민규는 씩씩거리며 장탄을 하고 총을 쏘았다. 열 발을 쏘았지만 이번에 표적에 들어간 것은 한 발이 더 준 네 발이었다. 아무 말도 않고 지켜보고만 있는 나를 노려보던 그가 다시 총을 집어 던졌다. 이번에는 총을 집어주지 않았다.
"총 안 집어!"
박민규는 소리를 질렀다.
"초관님 개인 화기입니다."
"그래서?"
"개인 화기는 개인이 챙겨야 하고, 개인 화기를 집어던지면 군령에 따라 영창에 가야 합니다."
"그래?"
몸을 숙여 내던진 총을 집어 들고 일어서던 박민규가 총열로 내 옆구리를 후려쳤다. 개머리판으로 돌려쳤으면 피할 틈이 있었을 텐데. 총열로 바로 후려칠 줄 몰랐던 나는 꼼짝 없이 당했다. 나는 주먹을 쥐고 놈을 노려보았다. 단 한 번의 손질로 놈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내 손을 붙든 것은 이성이 아니었다. 하극상, 군령의 그 규정이 내 손을 붙들었다. 박민규 같은 놈 때문에 내 인생을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20

기생집에 가 있어야 할 박민규가 밤중에 나타나 탄약고 문을 열게 했다.
"야, 이거 다섯 개 져다 주고 와."
야, 그는 이제 나를 조교관이나 만발이라 부르지 않았다. 아우라고 부르는 일은 더욱 없었다.
"어디에 말입니까?"
"서문의 개마객점."

개마객점은 신포수를 따라 가본 곳이었다. 평안도 일대의 포수들이 단골로 출입하는 개마객점에서는 총기와 탄환, 사냥도구들을 거래했다. 나는 귀를 의심하며 박민규를 바라봤다. 한심하고 나쁜 놈인 줄로만 알았는데 도적놈이기까지 했다. 탄환의 상당량이 사격장으로 넘어오기 전에 사라진다는 것은 나도 짐작하고 있었다. 항상 인수한 수량의 두 배를 대장에 올리고, 사격장에 오지도 않은 부대의 사격훈련을 일지에 올린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내 손으로 그런 짓을 한 적은 없었다.

"나를 대체 무엇으로 알고 이런 일을 시키십니까."
"네가 뭔데?"
내가 뭔가. 그는 내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을 던졌다.
"내가 뭔지는 모르지만 나라의 무장을 도적질하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도적질?"

그의 파들거리는 손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내 뺨을 향해 날아오는 그의 손바닥을 피했다. 두 번, 세 번, 헛손질을 한 박민규는 분을 참지 못하고 내게 달려들며 멱살을 잡았다. 나는 왼손으로 박민규의 가슴을 밀어냈다. 박민규가 오른손을 휘둘렀지만 팔길이가 모자라는 그가 나를 가격할 수는 없었다. 나는 주먹이 나가려고 할 때마다 군령을 떠올리며 참았다. 하극상, 그것은 군영에서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았다. 왼손으로 놈의 가슴을 민 채 오른손으로 내 멱살을 잡은 놈의 손아귀를 풀어 던져버렸다. 놈은 제풀에 중심을 잃고 나가떨어졌는데 하필 그 순간에 달려온 당직 무관인 이선엽이 놈의 꼬락서니를 보고 말았다. 엄살만 심한 4초관 이선엽은 대표적인 엉터리 무관이었지만 귀여운 구석도 있었는데 내가 한양에 다녀오는 동안 완전 쓰레기로 변한 자였다.

"이런 개같이 천한 놈이 감히 무관을 쳐!"
범이 없으면 여우가 범 노릇 한다고 박민규 따위들만 득실거리는 평양군영에서 이선엽은 무관행세를 하며 거들먹거리고, 병졸들을 괴롭혔다.
"정태신이, 박한이가 오냐오냐 해주니까, 그동안 눈에 뵈는 게 없었지. 이 자식아."
이선엽은 정태신 파총에게 박한 초관과 비교당했던 분풀이를 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두 놈에게 그날 밤 자근자근 밟혔다. 그 하루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하극상으로 몰린 나는 군영 영창에 갇힌 채 열흘을 꼬박 박민규와 이선엽에게 맞았다.

"뭐 이런 육시랄 놈이 다 있어."
엉망이 되어 영창에서 나온 나를 본 달음이는 나보다 더 분을 참지 못했다.
"그냥, 이렇게 당하고 말 거야?"
남창일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태연한 것은 나였다. 더 군대에 남아 있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모은 돈으로 농토를 사서 머슴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은 민란을 진압하면서 깨끗이 버렸다. 십 년을 모으면 산골의 박토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답이 있다고 해도 보호해줄 벼슬아치 혈족이 없는 농민은 수십 가지 세금을 견뎌낼 길이 없었다.

"그냥 이렇게 당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나는 씩씩거리는 남창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대 누웠다.
"복수해야지."
"그래도 그게 무관이야."
"무관이면 다야. 내 친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줘야지."
죽을 끓여다 주고 나간 달음이와 남창일이 정말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끙끙 앓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새벽녘에 달음이가 나를 깨웠다.

"박민규가 죽었어."
"무슨 헛소리야."
"정말이야."
밤새 술을 마시고 새벽녘이 되어서 고주망태가 되어 군영으로 돌아오던 박민규의 뒷목을 칼등으로 내려친 것은 남창일이었다.
"기절만 시키려고 했는데 죽어버렸어."

선무당이 사람을 잡은 것이었다. 백무현의 뒤를 잇는다며 쌍검술을 한참 익히던 남창일이 뒷목의 급소 세 치 아래를 겨누었는데 술이 덜 깬 박민규가 비틀거리면서 급소를 가격해버린 모양이었다. 기생집 근처에 숨어서 밤새 망을 보다가 복면을 하고 매복 중이던 남창일에게 달려가 박민규가 돌아오는 길목을 알린 것은 달음이었다.

"도망가야겠지?"
남창일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자수하는 게 나을까?"
달음이는 다리를 후들후들 떨었다.
사건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둘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난들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방법이 없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신포수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신포수가 했을 선택이 나의 선택이었다. 오래 생각할 시간도, 오래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

"걱정마. 내가 책임진다."
"어떻게?"
나는 내가 군영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사고는 우리가 쳤는데 네가 왜?"
"나 때문에 생긴 일이어서 내가 책임지는 거 아니야."
저격수에게 방아쇠를 당겨야 할 순간은 언제나 단 한 번뿐이다. 격발의 순간을 놓친 저격수에게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박민규 그 비열한 놈은 내가 진작 죽였어야 했어. 민란현장에서 죽여버렸으면 불쌍한 농군들 수백 명은 목숨을 건졌을 거야. 이번에도 너희들보다 내가 먼저 죽였어야 했어, 아니 내가 죽인 거야."
녀석들은 그럴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은 가족이 있잖아. 난 나 하나만 책임지면 돼."

자기들 덕에 세끼를 먹고 지낼 가족들이 눈에 밟힌 둘은 말문을 닫았다. 어느새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너희들은 빨리 자리로 가서 자고 있어."
"넌?"
"난, 가야지."
달음이가 먼저 눈물을 쏟았다.
"미안해."
남창일은 목젖을 울컥이며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미안하긴. 네 친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줬잖아. 그래도 창일이 너, 쌍검 연습은 좀 더 해야겠다."
나는 두 녀석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들이 내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어떻게 하고 떠날 것인지를 알려주고, 만약의 경우에 그들이 조사를 받으면 어떻게 말을 맞춰야 하는지도 일러주었다.
"너희들이 어제저녁에 내게 죽을 가져다준 건 사람들이 다 알아. 그때 내가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아서 너희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고 돌아갔고, 그 다음은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나는 부대를 떠나기 전에 이선엽을 찾아가겠다고 했다.
"혼자서 괜찮겠어?"
남창일이 걱정을 했다.
"니들 친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니들이 보여줬으니까, 나도 내 친구들을 괴롭히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려주고 떠나야지. 이선엽이 밟혔다고 하면 군영의 병졸들이 다 좋아할 거 아냐."
머뭇거리는 달음이와 남창일의 등을 떠밀며 나는 다시 웃어 보였다.

"범아. 무사해야 돼."
달음이의 볼 위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친구야, 잊지 않을 께. 너도 나 잊지마."
남창일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삼켰다.
"그래. 친구야."
등을 떠밀려 억지로 발걸음을 떼던 달음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살아 있으면 언젠가 만나겠지."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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