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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코앞에 위기가 닥쳐있습니다. 전국 시군구 10곳 중 4곳이 소멸위험지역이라니, 과장된 말도 아닌 거죠. 단박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지방소멸' 앞에 기회를 발견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사라지는 '소멸'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재해석하고, 삶의 터전을 일굽니다. 희망제작소는 청년의 지역살이를 살펴보는 '로컬다이버' 인터뷰 시리즈를 전합니다.[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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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직접 만나보고 싶다!'

김신애 <무브노드> 대표와 화상으로 만나며 든 생각이다. 그는 다소 무거운 질문을 던졌을 때, 진지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다가 위트 넘치는 유머로 끝을 맺는다. 유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김 대표와 인터뷰하는 내내 '가벼움은 어디서 흘러나올까'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강원도 태백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품은 공간이 있다. 코워킹스페이스 <무브노드>. 고향 태백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은 김신애 대표를 지난 9일 화상으로 만났다. 
 
김신애 <무브노드> 대표
 김신애 <무브노드> 대표
ⓒ 무브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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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혹시 어제 뭐 하셨어요.
"태백에서 유명한 황재형 화백 님을 만나 뵙고 재미있는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 무슨 얘기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작가님의 전시(<회천: 回天>)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지역에서 사는 이야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 등등 나누었어요."

- 원래 태백에 살다가 다시 태백으로 돌아오셨죠. 그때 태백, 지금 태백을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청소년 시절의 태백은 '결핍', '부족'이 떠올라요. 원한 게 많았는데 채우지 못한 결핍이 있었달까. 지금의 태백은 '해소', 아니면 '사소함'?! 서울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뭐랄까. 진짜 하고 싶은 일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먹고 살 정도로는 벌고 나니까 나를 갈아먹는 돈 버는 행위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삶에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마 그 경험 덕분에 '사소함'에 집중하기를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서울 못지않게 열심히 돈 버는 일을 하고 있지만요."

- 비슷한 맥락으로 다른 인터뷰에서는 "(과거에) 태백을 버리고 싶었다"라고 표현했더라고요. 당시 태백을 떠나고 싶은 이유가 있었나요.
"어릴 때 태백에 사는 게 고통스러웠어요. 만화책 보고, 그림 그리길 좋아했는데 마땅한 정보가 없는 거예요. 그림 그리는 도구를 구하기도 어렵고. 연습장에 끄적거리기만 했죠. 좀 더 탐구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이 컸어요.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은데 필요한 것이 기술과 물질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없어서 싫었죠. 그리고 아버지도 광부셨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많은 분이었어요. 그것이 어릴 때 상처로 남았고 떠나고 싶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해요. 하지만 돌아와 지금은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 사건들이 생겼어요."
 
코워킹 스페이스 <무브노드>
 코워킹 스페이스 <무브노드>
ⓒ 무브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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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창작자들이 모여 얽히고설킨 공간, 무브노드

- 태백으로 돌아와서 코워킹스페이스를 열었어요. 왜 코워킹스페이스(독립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나누는 공간)였나요.
"사람들을 모으고 싶었어요. 우연히 서울에서 위기 청소년을 만났는데 그 친구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어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떠올렸고요. 그리고 제가 디자인하고 그림그릴 작업실이 필요했죠. 그렇다고 혼자 쓰는 작업실은 외롭고, 누군가 같이 하는 공간을 열자 싶었죠.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이 공간에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다'라고 했거든요. 돌아보면 실제로 진짜 신기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 주셨어요."

- <무브노드>에는 어떤 분들이 오세요?
"초반에는 문학, 시각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모였는데요. 현재 다양한 분들이 오세요. 지금은 심리 기반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친구, 설치 미술하는 친구, 길거리아트를 하는 분, 지역 식자재로 음식이나 차를 만드는 분, 이제 곧 다큐멘터리 영화 찍으시는 계운경 감독님도 이주 하실 예정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까 제가 모르는 세계의 시야가 확장되는 것이 좋아요."

- <무브노드>를 열기까지 순탄하지 않았을 텐데 어땠나요.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무브노드>를 준비하면서 일을 전혀 못하니까 통장이 바닥나는 순간이요. 그때<비플러스>(임팩트투자플랫폼) 대표 님이 크라우드펀딩 제안을 주셨어요. 이제 진짜 쥐어 짜도 돈이 없다 싶은 순간에 <비플러스> 펀딩 금액이 들어온 거예요. 덕분에 지금까지 망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네요.
"시기와 사람이 잘 맞물렸어요.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도 많이 도와주셨죠. 사실 그때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많이 부족했는데 기다려주시고 기회를 주셔서 조금씩 천천히 성장할 수 있었어요. 힘든 일은 많았지만 그때마다 해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시기 적절하게 등장했던 것 같아요."
 
놀며 일하는 공간 <무브노드>
 놀며 일하는 공간 <무브노드>
ⓒ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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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태백에서 창작자들이 모인 커뮤니티라고 하면 생소하잖아요.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하루는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데 옆에 앉아계신 분이 저희(<무브노드>) 얘길 하는 것 같더라고요. 동네에 새로운 곳이 생겼는데 이상한 것 같다고. 그래서 귀를 기울였죠. 그런데 "거기~ 무슨 사이비 단체 같더라니까!"라고 하시는 거예요. <무브노드> 로고도 그렇고, 범상치 않은 옷을 입은 청년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어르신들 사이에 '신생 종교단체'라는 루머가 떠돈 거죠. 그래서 제가 사장님께 '문화 활동하는 단체니까 잘 말씀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니까요."

- <무브노드>를 연 지 4년 차가 되어가는데요. 기억에 남은 순간을 꼽아볼까요.
"오픈했을 때요. 80명 정도 오셨는데요. 그날 너무 바빴지만, 옥상에서 막걸리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길 했던 게 동력이 된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서울에서 위기 청소년을 만났을 때요. 그 친구가 태백에 놀러 왔다 갔는데, 어떤 가능성을 봤나 봐요. 이곳에 와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 했고 다시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정말 열심히 일하면서 사는데 그게 기억에 남아요."

로컬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법, 중요한 건 '전문성'

- 도시나 지역이나 '먹고사니즘'은 쉽지 않죠. 로컬 창작자로서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요.
"'전문성'이요. 지역에선 경쟁자가 없으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거든요. 서울보다 성장 속도가 확실히 느린 것 같고. 주변 분들이 '좋다', '괜찮다'라고 해주시는 게 좋긴 한데 어떤 측면에서는 '멈춰있다'라는 느낌도 들거든요. 어느 지역에서든 살아남으려면 '자신만의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데 전문성은 멈춰 있는 게 아니잖아요. 지속적으로 나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성장해야 하는 것 같아요."

- 이야길 듣다 보면 지역 커뮤니티 창작자의 자립을 위한 과정이 부드러움과 엄격함이 동시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저는 주체적으로 일하는 것이 좋아요. 그렇게 하려면 각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또 각자가 전문적이어야 하고요."
 
화광아파트 모습
 화광아파트 모습
ⓒ 무브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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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지역이 품은 기억, 사람의 숨결을 느끼다

- 지역소멸 위기 속에 지역을 살리는 것만큼 사라지는 지역을 기억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합니다. 1970년대 지어진 광산촌 화광아파트 프로젝트를 하셨잖아요.
"태백이 고향이었지만 원래 중심가에 살았거든요. 지금 <무브노드>는 태백 중심가에서 약간 외진 곳이고요. 중심가는 큐브형 건물이 많은데 이곳은 슬레이트 지붕인 집도 있고, 광부들의 사택을 개조한 집도 있어요. 화광아파트도 마찬가지인데, 5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어느 날 보니까 마치 인간 같더라고요. 온갖 경험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과연 잘 살아냈을까 궁금하고. 곧 죽는데(철거), 이 친구는 어떤 기억을 품고 있나 싶었어요. 사람들과 만나며 남긴 경험도 궁금했고요."

- 인상적이네요. 그래서 화광아파트가 남긴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프로젝트 시작할 때만 해도 '저 공간에 사는 사람은 돈도 없고, 불행하지 않았을까'라고 숨겨진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일종의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던 거죠. 막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화광아파트에 산 분들을 만났는데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분들이고, 무엇보다 화광아파트를 너무 사랑하시는 분들이 살고 계셨어요. 그때 '아, 내가 교만했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2018년에 진행된 <느린시간 걷는생각>
 2018년에 진행된 <느린시간 걷는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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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대표님의 지역살이를 훑어보면요. 14년 만에 태백으로 다시 돌아오신 거잖아요. '지역소멸'을 체감하나요.
"저는 '끝', '마지막' 이런 걸 좋아해요. 끝이 있어야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태백으로 돌아와서 보니까 도시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곧 광산도 문을 닫는다고 하고요. 태백으로 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눈에 띄게 많은데요. 태백이 좀 더 잘 되면 좋겠다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우리 누구나 소멸하잖아요. 억지로 붙잡는 게 과연 괜찮은 걸까 하는 물음도 생기고. 아직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황이죠."

- 질문을 뒤집어서 태백이기 때문에 '어떤 가능성'도 발견하고 있지 않나요.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많다는 거요. 제가 저한테 준 시간이자, 태백이 내게 건넨 시간이죠. 이유인즉 사람을 쉬이 만날 수 없기 때문이죠(웃음). 아, 그리고 저는 제 눈앞에 산이 떡 하니 있는 게 어색하지 않거든요. 오시는 분들은 "산이 너무 가까워"라며 놀라요.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서인지, 환경적으로 고립된 상태 때문인지 결과적으로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 같아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태백에서의 삶의 궤적,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
"음. 지역에 살면서 경제 공동체인 동시에 생활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는데요. 단순히 돈만 버는 관계로만 존재하기 어렵더라고요. 경제와 생활을 함께 영위하는 사람들과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해요. 대개 서울에서는 일로만 만나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도 그럴 수 있잖아요. 태백에서는 가까이 사니까 그런 관계는 존재할 수 없어요. 결론적으로 이 작은 사회에서 서로 먹고사는 과정을 바라봐주고, '내가 나로서 사는 게 무엇일까'를 사람들과 계속 공유하는 지점까지 도달하고 싶네요. <무브노드> 이름처럼 서로가 이동하면서 만나는 지점에 대해 공유하고 변화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지역소멸, #로컬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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